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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엄마의 일’이라는 구닥다리 공식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 ‘육아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악의 저출산 사회, 2018년 대한민국에서 육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육아빠와 워킹맘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또한 새로운 ‘아빠 노릇’을 고민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편집자말]
부부는 서로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때론 방향만 같고 행동은 다를 때 갈등은 일어난다.
 부부는 서로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때론 방향만 같고 행동은 다를 때 갈등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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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해. 남편, 남의 편이라고도 하지. 남자친구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가끔은 남의 편이 되어버리는 남자.

회사 선배에게 남편이 미워질 때가 언제냐고 물었어. "매일"이라고 대답하더라고. 그냥 같이 웃었어.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라는 거 다 아니까. 똑같은 질문을 후배에게 물어봤어.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한 번도 미웠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하면서 쑥스럽게 웃더라고. 선배와 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 그럴 수도 있구나. 후배는 아직 결혼한 지 오래 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야 했지.

물론 결혼 기간이 모든 걸 대변하는 건 아닐 거야. 다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해보니 워킹맘이 되면서 남편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힘들게 하는 주변 인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후배의 남편이 집안일을 얼마나 잘 도와주는지, 육아를 잘 도와주는지 알고 있었거든.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솔직히 부럽더라.

옛날에 여자들이 남자의 능력을 비교 삼아서 부러워했다면 요즘은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를 얼마나 더 잘 도와주느냐를 비교 삼아 부러워하게 되는 것 같아. 사회가 많이 변해서 예전엔 남편의 사회적 위치가 여자의 위치를 대변했다면 요즘엔 여자들 스스로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니까 남편의 사회적 지위보다 집안일에서의 평등에 관해 관심이 많아.

불행의 시작은 '비교'라고 하지. 비교하지 말라고, 그 남자와 내 남자는 다르다고 말이야. 그런데,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비교가 되는 걸 어쩌겠어.

남편이 미워질 때

사실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집안일과 육아일 뿐, 그 이면에는 이 남자가 '나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일 거야. 적어도 아내라는 사람을 배려한다면 집안일도 당연히 도와줘야 할 것 같고, 육아도 잘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이 남자.

특히나 결혼 전까지 부지런한 부모님 밑에서 집안일의 모든 걸 해결해왔었다면 결혼 이후 많은 걸 조율해야 해. 결혼 전에 엄마가 해주던 것이 결혼 이후엔 당연히 아내의 몫이 되니까. 물론 요즘 남자들 시키면 잘 도와줘. 남편은 늘 나에게 말해.

"미리 말하지 그랬어."

미리 말해야 하는 집안 일. 집안일이 몇 년에 한번 일어나는 이벤트도 아닌데 미리 말해야 하는 걸까? 이런 남편의 말은 나의 화를 더욱 돋우곤 했어. 나는 또 쏘아붙이지.

"집안 일을 일일이 미리 말해야 알아? 자기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아이를 볼 때는 몇 시에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지, 기저귀는 언제쯤 갈아줘야 하는지 일일이 말하는 것도 피곤해지더라고. 이런 나에게 남편의 반응은 이랬어.

"미리 말을 해주면 되잖아."

일일이 말해주면 그게 내가 돌보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뭔가 맡기면 스스로 왜 못하는지 이해를 못했어. 나는 또 쏘아붙이지.

"아이가 우는데 왜 우는지 알고 싶지 않아? 기저귀가 젖지 않았는지 보고 싶지 않아? 배고플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또 있어. 복직을 앞두고 복직을 할지 말지, 어린이집은 어디로 정할지,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데도 답이 없을 때 남편에게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왔어.

"너 맘이 편한 대로 해."

하, 엄마의 치열한 고민 앞에서 남편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랄까. 이 사람을 내가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선택을 한 것이 맞는가, 후회가 밀려오더라.

남편을 든든한 지원군으로 만드는 방법

워킹맘을 위한 책이나 글들을 보면 남편을 지원군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있어. 그 중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집안일을 해주면 무조건 칭찬해주기, 못해도 칭찬해주기, 여우같이 남편에게 애교부리면서 부탁하기 등이야. 그런데, 난 그런 방법 안 먹히더라. 남편도 알더라고.

'아내가 날 부려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구나!'

요즘 정보라는 것이 넘쳐나잖아. 남자들도 다 알아. 알면서 속아주는 척, 따라주는 척 하는 거지. 애도 아닌데 못해도 칭찬을 해줘야 움직인다는 그런 방법들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

우리 남편한테는 안 먹히기도 했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내 성격이었어. 애교는 빵점이며, 여우 같은 성격도 되지 못하고, 칭찬은 더더욱 잘 못해. 그러니 어울리지도 않은 여우짓을 해봤자 곰이 재주 부리는 것 같지 않았겠어? 난 잘 안 되더라. 그래서 내 스타일에 맞지 않은 방식은 버리기로 했어. 나는 내 스타일대로 했지.

어떤 방식이냐고? 일처럼 하는 거야. 투쟁하거나 협상하거나. 스스로 알아서 하는 배려 따위 바라지 말고, 회사 사람이다 생각하고 협상을 하는 거지.

"오늘은 내가 일이 좀 있어. 애들 좀 부탁해."
"오늘은 집안 일이 많네. 내가 설거지 할 테니 당신은 청소 좀 해줘."

'부탁해'라던가 '해줘'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남편이 집안일의 보조자라는 것을 전제라고 하는 것이긴 해. 그리고 내가 하고 나서 남는 일을 남편에게 시키는 방식이었지. 사실 여러 번 싸워서 지쳐서 협상으로 돌아서긴 한 건데, 나로선 최선이었어. 그런데 어쩌겠어. 우리 세대에서는 여기까지만 해도 성공이라고 봐. 다음 세대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협상도 못하겠으면 다른 방법도 있어. 그건 '돈'을 쓰는 거야.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사람을 구하고, 반찬을 배달시키고, 외식을 많이 하는 거지. 남편과 신경전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고 일과 가정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차라리 돈을 쓰는 게 낫다고 봐.

서로가 스트레스 덜 받고,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타협점을 끊임없이 찾아야 해. 가정의 평화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엄청난 노력의 대가가 평범한 가정이더라고.

남자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아빠로 숙성하는 시간

남자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아빠로 숙성하는 시간
 남자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아빠로 숙성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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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부부 싸움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크고, 시간이 우리를 가르치더라. 사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니 여자에서 아내로 엄마로의 변신도 참 쉽지 않은데, 남자에서 남편으로 아빠로의 변신도 참 쉽지 않았겠다 싶어.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아빠로서 자리잡으려 애쓰는 남편이 보이더라고.

사실 또 하나의 반전은 언젠가 남편과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남편이 미워질 때가 있듯이 남편도 내가 미워질 때가 있었더라고. 그때 나는 '아니, 어떻게 나한테 불만이 있을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어. 남편은 당연히 나에게 불만이 없을 줄 알았거든.

내가 뭐 잘나서 불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야. 회사와 집안일, 육아 사이를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데 뭐가 불만이지? 싶었던 거지. 남편에게 들어보니 나의 말투, 집안 어지르는 습관, 아이들 닦달하기 등이 불만이었더라고. 바빠서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 그게 불만이었더라고. 누구나 자기 앞의 일이 가장 바쁘고 힘든 법이니까. 남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내가 일이 있을 때, 바쁠 때 가장 아이 맡기기 가장 편한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남편이야.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거든. 지금 당장 불만이어도, 남편을 대신할 만한 사람은 주위에 없어.

결국 남편과 협상하고 타협하고, 조율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가만히 살펴보면 어떤 면에서는 남편이 나보다 나은 점도 많아. 잘 찾아봐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야.

다행인 건 여러 번 이야기하는 집안일은 어느 순간 알아서 하더라고. 청소,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 아이들 육아 등등 점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남편도 익숙해지는 게 보이더라. 뭐든 시간이 필요한 법인가 봐. 숙성의 시간 말이야.

오늘, 누군가의 남편과 내 남편이 비교되고, 남편이 미워 보인다면 '부부 숙성의 시간이 다가왔구나'라고 생각해보자. 결혼 생활 알잖아? 다 거기서 거기서 거기라는 거. 부부의 사정은 부부들만 아는 거니까.

소금 치고, 설탕 치고, 각종 사연과 감정 꾹꾹 눌러 담고, 숙성의 시간을 거쳐 때론 구수하고, 때론 달콤한, 그런 남편과 아내가 되길. 응원할게.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주간애미, #워킹맘, #육아, #육아분담, #육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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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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