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의 유일한 외국인 사령탑인 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감독이 한국무대에서 2년차 시즌을 맞이한다. SK와의 계약 마지막 시즌이기도 하다. 힐만 감독은 지난 2017시즌 첫 해 75승 1무 68패로 5위를 기록하며 SK를 2년만에 가을야구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비록 가을야구에서 다소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찍 마감한 것은 옥의 티였지만, 구단 사상 첫 외국인 감독 체제와 에이스 김광현의 공백에 대한 우려를 극복하고 치열한 5강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하기 충분했다.

SK로서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홈런군단'이라는 확고한 팀컬러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는 2017년에만 무려 234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KBO 역대 한 시즌 최다 팀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홈런왕 2연패에 성공한 최정(46개)를 필두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타자만 9명,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4명에 이를 만큼 홈런은 확실한 SK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장타력 위주의 팀컬러 변화는 힐만 감독이 부임하기 전 이미 전임감독과 프런트 체제에서부터 연속성 있게 추진되어온 정책이었지만 힐만 감독의 영향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힐만 감독은 특유의 '젠틀맨 리더십'과 '믿음의 야구'를 바탕으로 선수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스킨십을 표방하며 그동안 다소 경직되었던 SK의 팀문화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쳐보일 수 있도록 독려하는 분위기는, 또 다른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추억을 연상시켰다.

'권위적 문화' 없애고 선수와 소통한 힐만 감독

 3월 3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수원 kt wiz의 경기. 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감독이 경기에 앞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 행사에서 손뼉치고 있다.

2017년 3월 3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수원 kt wiz의 경기. 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감독이 경기에 앞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 행사에서 손뼉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직 외국인 감독의 역사기 짧은 한국야구에서 성공사례는 많지 않다. 힐만 감독은 엄밀히 말하면 KBO 역사상 4번째 외국인 감독이다. KBO 최초의 외국인 감독은 도위창이라는 한국명으로 친숙하지만 실제로는 순수 일본인이었던 도이 쇼스케 전 롯데 감독대행이다. 하지만 그는 정식 감독이 아닌 대행이었고, 1990년 시즌 막바지에 잠시 팀을 맡아 고작 24경기를 지휘한 것이 전부다.

2014년에는 두산이 역시 일본 국적의 송일수(이시야마 가즈히데) 감독을 선임한 적이 있지만  성적부진으로 고작 1년 만에 경질됐다. 한국야구에서 힐만 감독 이전까지 정식 외국인 감독으로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는 인물은 사실상 로이스터 감독 한 명뿐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2007년 당시 구단 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던 롯데의 지휘봉을 잡으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더욱 보수적인 한국야구 정서에서 외국인 감독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도 존재했던 데다, 롯데의 팀사정상 외국인 감독 한명 온다고 분위기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노 피어(No Fear)'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 선수들의 가장 큰 문제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판단했다.투수가 장타를 맞더라도 자신있게 정면승부하고, 타자가 삼진을 먹더라도 자신의 스윙을 휘두르며, 주자는 도루에 실패하더라도 과감하게 뛰어야 한다.

감독의 눈치만 보고 실패할까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않은 야구로는 발전이 없다. 그게 로이스터의 신념이었고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던 롯데를 바꾼 원동력이었다. 기존 KBO의 권위주의적인 덕아웃 문화와 달리, 독과 선수가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 받고 친밀한 스킨십을 마다하지 않으며 수평적인 소통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은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야구에 전파한 변화였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단점도 나타났다. 한국과 아시아야구의 특징이라고 할수 있는 세밀한 작전야구와 위기 상황에서의 임기응변 능력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고집이 지나쳐 국내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듣지않는 경우도 많았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이 재임한 3년 내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한 번도 다음 시리즈로는 올라가지 못했다. 2008년에는 1승도 못 한 채 가을 야구를 끝냈고, 2009년에는 1승 후 3연패, 2010년에는 2승 후 3연패로 탈락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덕분에 가을야구에 익숙한 팀으로 환골탈태했지만 동시에 우승까지는 갈 수 없다는 한계도 절감했다. 그래도 로이스터 감독은 오랫동안 일본야구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한국야구에서 '메이저리그식 리더십'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여전히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힐만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메이저리그식 리더십을 다시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과연 로이스터 감독의 한계까지 힐만 감독이 넘을 수 있느냐는 것도 올시즌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메이저리그식 리더십' 통한다고 증명한 첫 사례

힐만 감독은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하며 세계 최초로 한미일 프로야구 1군 감독을 모두 섭렵하는 독특한 이력에서 보듯, 외국인 감독임에도 한국야구와 문화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와 적응력을 보여줬다. 선수들과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이나 자율적인 덕아웃 분위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 로이스터 감독의 장점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감독 출신' 염경엽 단장 및 SK 프런트와의 관계 역시 시즌 내내 별다른 잡음 없이 안정된 협업 체제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막강한 홈런타선과 안정된 선발야구에도 불구하고 내내 약점으로 꼽혔던 불펜진과 투수 운용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장점으로 꼽히던 타선도 엄청난 홈런쇼에 가려졌지만 내실을 보면 팀타율(.271)과 도루(53개) 꼴찌, 출루율 8위(.341) 등으로 공격 패턴의 불균형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의 허무한 패배는 이미 정규시즌에서 누적된 SK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난 경기이기도 했다. 일발 장타에만 의존하는 경기력으로는 상대의 에이스급 투수들이 총출동하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단기전에서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힐만 감독은 빅리그와 일본 시절부터 OPS(출루율+장타율)를 중시하는 유형의 지도자로 꼽혔다. 힐만 2년차를 맞이하는 SK 타선의 중요한 현안도 홈런 숫자만이 아니라 타격 정확도와 출루율의 균형을 이루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마운드에서는 확실한 마무리 부재라는 약점도 극복해야 할 숙제다.

SK의 또 다른 강점으로 꼽히는 선발진은 김광현의 복귀라는 변수가 있다. 올시즌 눈에 띄는 외부 영입이 없는 SK로서는 김광현의 건강한 복귀만으로 대형 FA 한명을 공짜로 영입한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다만 큰 부상 이후 돌아오는 만큼 구단 측에서 이닝과 투구수를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활용도는 제한적이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SK 트레이 힐만 감독이 올 시즌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

지난 2017년 3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SK 트레이 힐만 감독이 올 시즌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 ⓒ 연합뉴스


힐만 감독은 아무래도 외국인 감독이고 한국무대에서의 첫 시즌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팬들 역시 2017년은 적응기로 보고 평가에 관대했던 측면이 많았다.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감독들은 말할 것도 없고 통합우승을 이끈 기아의 김기태 감독마저도 시즌 내내 극성팬들의 엄청난 비판 여론에 시달린 것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힐만 감독은 비교적 순탄하게 KBO에서의 첫 시즌을 마쳤다고 할만 하다.

당초 힐만 감독이 로이스터 감독보다 더 기대를 모았던 부분은 일본에서의 우승 경력을 통하여 아시아 야구의 스타일과 포스트시즌 경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SK에서의 후반기나 첫 포스트시즌은 물음표를 극복하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2년차는 이제 본격적으로 힐만 야구의 색깔과 완성도에 대하여 좀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시점이다. 힐만 감독은 과연 로이스터를 뛰어 넘어 한국야구에서 외국인 감독의 성공신화를 새롭게 고쳐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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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힐만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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