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겨울밤, 벌써 50일 넘게 국회 앞에 누운 두 사람이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한종선씨다. 수년 전 꽤나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이미 다 해결된 거 아니냐고 묻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듣는 게 상처라고 했다. 그들이 또다시 국회를 찾은 사연을 연속해 싣는다. [편집자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씨가 국회 앞 농성 텐트 속에 웅크려 자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씨가 국회 앞 농성 텐트 속에 웅크려 자고 있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지난 기사] "춥지 않냐고 묻지마라!" 그들이 악에 받친 이유

기자 : 추운데 당장 필요하신 거 없어요?
한종선 : "특별법."

한종선(42)씨는 단호했다.

"핫팩도 많고 생수도 넉넉해요. 필요한 건 법 통과지. 안 그럼 국회 앞에 왜 있겠어요. 여야가 싸울 쟁점 법안도 아닌데 왜 통과를 못 한다는 건지, 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생존자인 한씨는 지난 2017년 11월 7일부터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60일 넘게 천막 농성 중이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내무부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법'(형제복지원 특별법)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 개정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각종 언론 보도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 2014년 3월 24일 발의됐지만 19대 국회에서 공전만 거듭하다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2016년 7월 6일 재차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잠들어있다. 벌써 4년 째다.

"국가 재정에 많은 부담이..."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논의된 지난 2017년 1월 10일자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논의된 지난 2017년 1월 10일자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국회 사람들이 와서 하는 말이, 뭐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서 어렵다카데예."

한씨와 함께 농성 중인 또 다른 피해생존자 최승우(49)씨는 "이런 식이면 형제복지원처럼 대량으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은 어디에 따져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실제 지난 2017년 1월 10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행정및인사법 심사 소위원회에선 정부 측의 이런 설명이 있었다.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 : "다른 유사 과거사에 대한 파급효과나 형평 측면, 지금 대구 희망원이라든가 대전 성지원 사건, 장항 수심원 사건 등 여러 가지가 논의되고 있고 또 더군다나 국가 재정에 많은 부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별 각론보다 원론적으로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정부로서는 이것을 입법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좀 부담이 된다는 점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중략) 우선 일차적으로는 재원 부담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행자부도 굉장히 어려운 점이 많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행안위 회의록 중)

형제복지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가 차원의 배·보상이 이뤄질 경우 유사 사건들에 대한 처리도 함께 요구될 것을 예상하면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논리였다. 이 같은 인식에 당장 쓴소리가 튀어나왔다.

"저는 행자부 차관님 말씀을 듣다보면 행자부 차관님이신지 기재부(기획재정부) 차관님이신지 헷갈립니다. (중략) 아무리 재정이 들어가도 국가에서 해야 될 일은 밝혀야지요. 그런 거 아닙니까? 국민 한 사람이 억울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1억, 2억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억울함을 해소해 주려는 게 국가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정부 공무원이 가져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위 회의록 중

"예산이 많이 든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공식적인 기록만으로도 500명이 넘게 죽고 그 이후에 상처받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될 수도 있는데도 진상규명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30년이 지난 데에 대한 책임을 더 고민해야죠." -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위 회의록 중

20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건 1년 전이던 이날 회의가 마지막이었다. 해당 행안위 소위 위원들이 개별적인 특별법 대신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포괄할 수 있는 과거사법 개정안 처리 논의에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과거사법은 반민주·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의문사 사건 등의 진실을 조사하기 위한 법으로, 개정안은 2010년 활동이 중단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과거사위원회)의 운영을 재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진전 없는 법안들..."형제복지원? 들어는 봤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의 국회 앞 농성장.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의 국회 앞 농성장.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법안 처리가 지지부진한 건 과거사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 열린 법안 소위인 2017년 11월 29일 행안위 소위에서도 과거사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별다른 진전 없이 단 10분만에 끝났다. "소위에서 계속 심사"한다는 결론이었지만 아직까지 다음 법안 소위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과거사법 개정안 역시 형제복지원 특별법과 마찬가지로 지난 19대 국회 내내 표류하다 끝내 파기된 바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되고, 피해 당사자들의 끈질긴 요구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관련 법안 통과가 어려운 건 왜일까.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 쪽에서는 대체로 자유한국당의 "보이지 않는 어깃장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행안위 소속으로 과거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소병훈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 내용을 보면 아무도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렵지만 일단 자유한국당은 기본적으로 과거사법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이전 정권들과 관련된 사안이어서인지 행안위 소속 위원들도 자신들 선이 아니라 당 지도부에서 결정할 문제라고도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소 의원은 이어 "그동안 정권 교체가 됐고, 새 정부는 지난 정부들과 달리 문제 해결 의지를 갖고 있으니 논의가 조금씩 발전되지 않겠나"라고 조심스레 전망하기도 했다.

19대·20대 국회에서 연이어 형제복지원 특별법과 과거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진선미 의원 측 관계자도 "19대 국회 때는 박근혜 정부에서 법안을 심하게 반대해서 무산됐고, 새 정부 들어와서는 자유한국당이 대놓고 반대하진 않지만 흔쾌해할 리는 없을 것"이라며 "(한국당 입장에선) 과거사 조사 재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들이 전두환·박정희 정권 등 구 여권 집권기 전반에 걸친 일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당장 자유한국당 측은 이 같은 책임론에 정면 반박했다. 행안위 간사인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당 책임론에 대해 "그렇게 말하고 싶은 이유가 있나 보다"라며 "어느 범위까지 진실규명이 필요하고 다시 한 번 국가가 나서서 조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야간 시각 차가 있어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홍 의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들어는 봤다"라면서 "새해가 됐으니 2월 임시국회부터는 (과거사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있지 않겠나"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지연된 상처

국회 앞 농성장 속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
 국회 앞 농성장 속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국회 안에서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동안 한씨와 최씨의 국회 앞 농성도 길어지고 있다. "이번엔 무조건 법 통과될 때까지"라면서 자리를 깐 그들이었다. 가을에 시작한 시위는 어느덧 한겨울을 지나고 있다. 한씨가 거듭 강조하던 말이 있다.

"사람들 관심이 커질 때는 뭐라도 막 금방 될 것 같아요. 국회에서 나서서 법안도 만들겠다고 하고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도 하고. 근데 아주 조금만 지나봐요. 이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다른 얘기하잖아요. 근데 사람들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야, 너네들 그만 좀 해. 언제까지 이럴 건데?' 이래요.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상처를 알겠어요?"

그럼에도 한씨는 "밉지만, 미워 죽겠지만" 국회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피해자에 대한 치유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어쨌든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데 희망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밤, 그들은 오늘도 국회를 쳐다보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의 국회 앞 농성장.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의 국회 앞 농성장.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의 국회 앞 농성장.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49), 한종선(42)씨의 국회 앞 농성장.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태그:#형제복지원, #최승우, #한종선, #국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