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CGV용산에서 <1987>을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가 끝난후 먹먹한 표정을 짓고 있다.

7일 오전 CGV용산에서 <1987>을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가 끝난후 먹먹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청와대


시기적으로 절묘한 지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영화 <1987> 관람하면서 영화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날 블랙리스트 피해자를 위로한 것이나 감독과 배우들을 격려한 것이 실질적으로는 한국 영화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해 보인다. 이는 한국영화의 정상화와 지난정권에서 가로막혔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일부러 영화제 현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하고 상처 입은 영화제와 영화인들을 위로했다. 단순한 방문이 아닌 정치적 함의가 상당히 깃들어 있는 방문이었다. 부산영화제 정상화를 돕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이번 <1987> 관람 역시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본 것에 머물지 않고 부산영화제 방문의 연장선상인 것으로 엿보인다.

특히 방문 시기가 절묘한데다 영화를 관람 후 내놓은 발언과 함께 영화를 본 인사들의 상징성이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영화 정상화 마무리 되는 시점, 위로와 격려

 부산영화제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부산영화제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8개월 가까이 공석이었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아래 영진위원장) 선임을 마무리했다. 영진위원장에는 오석근 감독이 임명됐다. 부산지역 대표 영화인이자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오석근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부산영화제 사태 발생 후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시민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왔다.

오 감독은 1997년 2회 영화제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후보가 야외무대에 오르려 하자 "이 무대는 영화인들만 오를 수 있다"며 육탄으로 저지해 이 후보 일행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일화의 주인공이다. 오 감독이 임명되면서 그간 불안정했던 영진위 정상화가 마무리됐다. 

또한 같은 날 부산국제영화제는 공석중인 이사장 공모를 마감했다. 부산영화제 이사장에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절대 다수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보수원로영화인도 이 전 위원장을 추천할 만큼, 그는 영화단체들의 광범위한 추천과 지지를 받고 있다. 영화인들은 <다이빙벨> 상영으로 박근혜 정권과 서병수 부산시장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던 이용관 전 위원장의 복귀를 부산영화제 정상화의 핵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1987> 관람은 한국영화 정상화의 상징과도 같은 영진위와 부산영화제의 정상화가 마무리 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좌파 척결과 독립예술영화 지원 축소 등으로 한국영화를 정치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이에 굴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해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영화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7일 영화 <1987> 관람후 오찬을 하면서 블랙리스트 피해자 김규리 배우와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7일 영화 <1987> 관람후 오찬을 하면서 블랙리스트 피해자 김규리 배우와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 청와대


문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감독 배우 등 초청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이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부산영화제를 '좌파 영화제'라고 핍박하고 영화계에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하게 퍼져서 조금만 밉보이면 불이익이 많을 때였는데 그래도 용기 있게 1987년 박종철군과 6월 항쟁을 영화로 만들고 많은 배우들이 흔쾌히 참여해줬다"고 말했다. 정치적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은 부산영화제에 대해서도 가볍게 언급한 것이다.

이에 문성근 배우는 "한국영화 사상 (톱배우들이) 이렇게 많이 나온 영화가 없었다. 6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지 요즘은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1987> 제작 과정에서 배우들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다. 대사 있는 배우만 125명에 달할 정도로 배우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연말 관객의 인기를 끈 작품들이 여러 편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1987>의 관람을 택한 것은 영화의 내용에 더해, 한국영화의 중심 배우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

김규리 배우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들과 함께 관람 후 오찬을 나눈 것도 문화예술에 대한 문 대통령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지지와 함께 지난 정권에서 피해를 당한 문화예술인들을 위로했다는 점에서 <1987> 관람의 함의는 커 보인다.

문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얘기를 듣거나 또는 피해를 입으신 분들을 만나면 늘 죄책감이 든다"며 "제가 가해자는 아니지만, 저 때문에 그런 일들이 생겼고 많이 피해를 보셨으니 그게 늘 가슴이 아프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별로 그 아픔에 대해서, 지난날의 고통에 대해 보상해 드릴 길이 별로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배제와 억압만이 있었던 지난 정권과 대비

물론 지난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있어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부산영화제를 찾거나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배제와 억압이었다. 2013년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부산영화제를 잘 지켜달라고 집행부에 당부했으나 이듬해인 2014년 부산영화제에 돌아온 것은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는 압박이었다.

독재시대와 같은 차별과 제약의 문화정책에 배우들은 원치 않은 일도 해야 했다. 대통령의 영화 관람에 가기 싫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사 등의 불이익을 우려해 억지로 참석해야 했다. 세간의 비난여론은 그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987>에 수많은 배우들이 자청해서 출연한 것은 특별해 보이는 부분이다. 영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환경이 배우들을 자극한 면도 있어 보인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영화 관람에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으나 영화인들은 이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만든 정권에 책임이 있는 정치세력의 뻔뻔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1987> 관람에 장준환 감독의 부인인 문소리 배우가 자리를 함께하고,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감독과 배우들이 울먹인 것은 영화계의 정서를 대변하는 장면이다.

 <1987> 관람후 장준환 감독 김윤석 강동원 배우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1987> 관람후 장준환 감독 김윤석 강동원 배우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 청와대


지방권력 교체돼야 정상화 완료

문 대통령의 기조에 호응하는 영화계 역시 개혁 요구를 실행해야한다는 의지를 다지는 중이다. 영진위 노조는 8일 '철저한 과거 반성과 청산 그리고 과감한 영진위 개혁을 기대한다'는 성명서을 발표해 신임 영진위위원장에게 '영진위 내부의 근본적인 적폐 청산'을 요구했다.

영진위 노조는 '특검조서와 블랙리스트 재판 판결, 감사원 감사결과,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 중간결과보고를 통해 드러난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주체 변경, 동성아트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배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방식 변경,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대폭 삭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도 못하고, 수행한 사실을 고백하지도 못한 채 결과적으로 위원회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 문화검열을 수행하는 악의 축이 되었다'며 반성을 나타냈다. 

부산영화제의 정상화에 대한 의지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산지역 영화 관계자는 8일 "대통령의 <1987> 관람과 부산영화제를 언급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며 "서병수 시장과 지역의 일부 언론매체를 제외하고는 이용관 전 위원장의 복귀에 대부분 환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위원장 복귀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일부 지역매체의 곡학아세가 심하다"면서 "정치적 탄압을 외면한 채 부산영화제를 비리 집단으로 몰거나 비판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영진위의 대필 기고를 싣던 지역 매체가, 영화계 여론과 동떨어진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산영화제의 정상화는 궁극적으로 지방권력 교체"라며 "새로운 부산시장의 탄생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가 거듭나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 지역 영화인들의 각오다. 적폐세력이 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7 문재인 대통령 부산영화제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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