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모든 존재는 고통과 불안의 사슬을 벗어날 잠재력이 있다. 타인을 도와라. 타인을 도울 수 없으면 최소한 그들을 해치지 말라." - 달라이 라마

나와 함께 한방을 쓰고 있는 남인도 청년 쌍케, 그리고 아르헨티나 여성 에릭카를 비롯한 돌카네 식구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칼라차크라 행사장으로 떠났다. 나는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남았다. 집안이 텅 빈 지 한 시간쯤 지나자 저만치 강 건너 행사장에서 라마승들의 만트라 읊조리는 소리가 굵직하게 들려온다.

 저녁 무렵 일 마치고 움막집으로 돌아가는 네팔 부녀.
 저녁 무렵 일 마치고 움막집으로 돌아가는 네팔 부녀.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눈이 감겨온다. 눕고 싶다. 그래 졸리면 잠을 자자. 멀리서 들려오는 만트라를 자장가 삼아 현관 앞에 누워 깜박 졸다가 눈을 떴다. 이 마을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개 한 마리가 저만치서 검은 모포처럼 늘어져 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내 모습이나 다름없다. 손을 내밀자 녀석이 슬금슬금 땅에 몸을 비비며 다가온다. 머리며 턱밑을 어루만져 주자 귀찮을 정도로 내게 몸을 비벼 온다.

갑자기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길 잃은 개와 같은 신세가 된 기분이 든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 있을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며 떠나질 않는다. 2014년 3월 한국을 떠나 인도에 온 지 4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딱히 갈 곳이 없다. 라다크나 한국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갑자기 인도에 온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인도로 떠나 올 때 한 친구가 그랬다. 거기나 여기나 뭐가 다를 게 있다고, 왜 인도로 가려 하나. 우둔한 나는 비로소 여기 히말라야 고산지대 라다크에 와서 거기나 여기나 다를 바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 친구의 생각과 다른 게 있다면, 나는 한국이 아닌 히말라야 깊숙이 자리한 라다크에서 그 사실을 느끼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높다랗게 쌓아 놓은 흙벽돌 틈새에서 네팔 아이 뒤뉘시가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다. 녀석은 입에 먹는 것을 가져다 대며 방긋 웃는다. 어제 내가 사다 주었던 바나나를 잘 먹었다는 몸짓이다. 오늘도 녀석에게 줄 것이 있다.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동시통역기 역할을 했던 소형 라디오다. 칼라차크라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더는 내게 필요치 않다.

며칠 전부터 녀석이 눈독 들였던 라디오를 기분 좋게 받아 들고 집 쪽으로 달려간다. 녀석의 등 뒤로 바람이 몰려간다. 이곳은 가끔 사막에서처럼 모래바람이 심심찮게 불어온다. 고산증 때문인지 모래바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사람들의 눈에 충혈 기가 있다.

온몸으로 벽돌 600개 찍어내도 고작 6500원

 돌카네 집 앞, 움막에서 살고 있는 네팔 소년 뒤뉘시.
 돌카네 집 앞, 움막에서 살고 있는 네팔 소년 뒤뉘시.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흙벽돌을 찍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고 있는 네팔 소년 뒤뉘시 부모.
 흙벽돌을 찍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고 있는 네팔 소년 뒤뉘시 부모.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뒤뉘시도 마찬가지다. 녀석의 눈은 늘 충혈되어 있다. 거기다 가끔씩 기침을 한다. 평균 고도 3500m 고지가 넘는 라다크의 7월 한낮은 그늘 밖으로 나가기 힘들 정도로 따가운 햇볕이 내리쪼이지만 밤에는 서늘하다. 녀석의 집은 밤의 찬 기운에 노출되어 있다.

녀석은 돌카네 집 바로 앞, 흙벽돌집에 살고 있다. 사실 집이라 할 수 없다. 벽돌로 네모반듯하게 에둘러 쌓아 놓고 판자때기로 천정을 덮어 놓았다. 겨우 비 가림만 해놓은 움막에서 녀석은 아빠 엄마, 이제 생후 10개월 된 여동생 자뉘티와 함께 살고 있다.

녀석의 부모는 온종일 흙벽돌을 찍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뒤뉘시네 움막 주변의 땅은 온통 회색빛 흙, 그 자체가 흙벽돌 재료다. 흙을 파내 물을 적당히 부어 반죽하여 틀에 넣고 찍어내면 흙벽돌이 된다.

저만치에서 뒤뉘시 엄마와 아빠가 일손을 놓고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짓한다. 어제의 바나나와 조금 전 라디오를 줘서 고맙다는 손짓이다. 이들 부부는 칼라차크라 행사장에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힘겨운 일에 매달려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묵묵히 힘든 일을 하다가도 얼굴을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반겨 준다.

이들 부부는 하루 600개의 흙벽돌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흙벽돌 100개에 65루피 정도. 600개면 약 400루피, 우리 돈으로 6500원 정도 버는 셈이다. 단지 삽과 손으로 찍어내는 고된 노동의 대가다.

 부모 따라 이곳 라다크에 온 네팔 아이들은 벽돌 한 장 들 만한 나이가 되면 흙벽돌을 찍는 일이나 흙벽돌집 짓는 현장에서 잔일을 거들고 있었다.
 부모 따라 이곳 라다크에 온 네팔 아이들은 벽돌 한 장 들 만한 나이가 되면 흙벽돌을 찍는 일이나 흙벽돌집 짓는 현장에서 잔일을 거들고 있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하루 일을 마치고 보금자리 움막 혹은 천막으로 돌아가는 네팔 노동자들. 힘겨운 노동일로 생활하고 있지만 표정들이 밝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보금자리 움막 혹은 천막으로 돌아가는 네팔 노동자들. 힘겨운 노동일로 생활하고 있지만 표정들이 밝았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라다크의 중심지 레의 주변 도시, 이곳 초크람사에서 네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땅이 녹는 6월 하순 무렵부터 땅이 얼기 시작하는 9월 중순 무렵까지 라다크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들 대부분은 뒤뉘시의 부모처럼 흙벽돌을 찍거나 흙벽돌집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힘든 업종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맡다시피 하듯 이곳 마을에서도 역시 힘든 노동일은 대부분 네팔 사람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피우는 담배 10개비는 네팔 노동자들이 100장의 흙벽돌을 온몸으로 찍어내는 값이다. 내가 먹고 이동하고 잠자는 비용, 한 달에 50만 원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며 떠벌여 대고 있지만 이들 부부가 그 돈을 벌려면 두 달 반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이곳 라다크의 네팔 아이들은 벽돌 한 장을 들 만한 나이가 되면 대부분 부모의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말만 앞세우는 '얼치기'들은 제 집 아이들을 혹사한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일지 모르겠지만 네팔 노동자들의 형편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죽하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힘든 노동일을 시키겠는가. 가진 재산이라고는 몸 하나가 전부인 이들은 아이들까지 일해야만 그나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돌카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네팔 아이 뒤뉘시
 돌카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네팔 아이 뒤뉘시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부모의 일손을 거들만 한 나이가 아닌, 여섯 살 네팔 소년 뒤뉘시는 늘 혼자다. 주변에 함께 놀 또래 아이들이 없다. 그러다 보니 늘 돌카네 집으로 놀러 온다. 돌카네 집에 오면 텔레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움막집에도 위성 안테나가 달려 있지만 녀석의 움막집에는 텔레비전은 고사하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마을 골목 어디에서든 네팔 아이들 뿐 아니라 라다키 아이들조차 만나기 힘들다. 네팔 아이들은 부모의 일손을 돕고 라다키 아이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안락한 집안에서 위성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돌카 말에 의하면 이곳 초크람사의 시골 마을 요코마(yokma)의 라다키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대부분 도시로 나간다고 한다. 대학에 갈 나이가 되면 돌카가 그랬던 것처럼 더러 라다크를 벗어나 델리와 같은 큰 도시로 유학을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 일해야만 하는 아이들

요코마 마을 곳곳에서 잡초 우거진 농토를 쉽게 만날 수 있듯이 라다크는 이미 헤어날 수 없을 정도의 산업화라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다. 돌카 말로는 잡초 우거진 농토는 라다크 중심지 레나 인도 중심지로 나간 사람들의 농토라고 한다.

여전히 돌카 엄마처럼 채소 농사를 지어 장에 나가 좌판을 펼쳐놓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라다크가 산업화하면서 농사짓는 인구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척박한 땅, 라다크 전체 면적의 5%에 불과한 농지를 일궈 자급자족해왔던 라다크는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인 것이다.

 라다키 담장에 꽂혀 있는 유리조각.
 라다키 담장에 꽂혀 있는 유리조각.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이곳 요코마 시골 마을 사람들 중에는 도시에 나가 관광안내자가 되거나 농지를 팔아 상점을 열어 돈벌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에서 성공한 이들 중에는 고향에 너른 정원을 갖춘 번듯한 집을 짓고 성능 좋은 자동차를 굴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새마을 운동과 산업화 바람 따라 들어온 한국의 시골 양옥집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이들 부유한 라다키의 집 담장에 더러 유리 조각이 꽂혀 있었다.

유리 조각이 박힌 담장을 허물면 눈에 보이는 주변이 온통 내 정원이 되지만 유리조각으로 담장을 두르는 순간 그 안에 갇히게 된다. 가진 것이 많아지면 내 것을 지키겠다는 욕망이 생기게 된다. 내 것을 지키겠다는 것은 손아귀를 꽉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우리 가족의 생활이 그러했다. 시골 빈집을 얻어 적게 벌어 적게 먹고 생활할 때는 방문 열쇠는 물론이고 담장이며 대문간조차 없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번듯한 목조주택을 짓고 생활할 때는 현관문에서부터 온갖 방문에 열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허름한 시골집의 비좁은 방에서 생활할 때는 물질적으로 뭔가를 채워야 할 것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이 한 방에서 오순도순 누워 잠을 잤기에 정이 쌓였다. 하지만 번듯한 목조주택에서는 각자의 방에서 생활했다. 시골집보다 훨씬 너른 방이 여러 개였기에 채워야 할 것도 많았다. 아내는 그 채워야 할 것들을 위해 시골집에서 생활할 때와는 달리 내게 좀 더 많은 돈벌이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스트레스가 쌓여 갔고 다투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시골집에서 생활할 때 보다 두 배 이상의 일을 했지만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다. 소박하게 살아온 삶을 억울해했다. 남들처럼 현관 방문 열쇠를 갖춘 집에서 물이 꽐꽐 쏟아져 내리는 수세식 화장실에 인스턴트식품으로 가득 채워진 냉장고를 갖추고 살아가고자 했다. 그녀의 요구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몸짓이 통하는 뒤뉘시와 장난을 쳐가며 마을 길을 걷다가 어린 삼남매를 만났다. 네팔 아이들이다. 서너 살쯤 돼 보이는 남동생이 칭얼거리자 열 한두 살쯤 돼 보이는 큰 누나가 포대기로 동생을 업어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힘든 길임에도 칭얼거리는 동생에게 얼른 업히라고 보채지 않는다.

우리 7남매도 그렇게 컸다. 부모님이 힘든 농사일로 집을 비우면 큰 누나 혹은 어린 여동생이 밥상을 차렸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다리 아프다고 보채는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걸었다. 내가 누이의 등에 업혔고 내 어린 동생들 또한 내 등에 업히기도 했다.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다 했듯이 저 구김살 없는 네팔 아이는 가난한 내 어린 시절의 누이였고 코를 찔찔 흘리며 등에 업힌 남자아이는 또 다른 어린 나였다. 네팔 소년 뒤니쉬 역시 좀 더 자라면 어린 여동생을 엄마 아빠 대신 돌봐야 할 것이다. 녀석 또한 어린 시절의 나처럼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놀다가 해 질 무렵 졸린다고 칭얼거리는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뒤뉘시! 뒤뉘시!"

뒤뉘시 엄마다. 빈둥빈둥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돌카네 집으로 돌아와 저녁 무렵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뒤뉘시를 찾으러 왔다. 뒤뉘시는 텔레비전에서 멀어지기 싫은 눈치지만 어쩔 수 없다. 녀석이 돌카 가족들에게 아쉬운 눈빛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길거리에서 칭얼거리는 남동생을 업어주고 있는 네팔 아이
 길거리에서 칭얼거리는 남동생을 업어주고 있는 네팔 아이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동생을 업고 슬픈 눈빛으로 웃고 있는 네팔 소녀
 동생을 업고 슬픈 눈빛으로 웃고 있는 네팔 소녀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맑은 아이들의 서글픈 미소가 잊히지 않는 밤

저녁 식사를 마친 돌카 가족 또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신인 영화배우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쌍케 말로는 인도에서도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라 한다. 프로그램 구성이 한국에서 한창 유행인 신인가수 뽑는 방식하고 흡사하다.

신인 배우 응모자들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 나오고 응모자들은 저마다의 연기를 선보인다. 무대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유명 배우와 영화감독으로 보이는 심사위원들이 합격 여부를 가린다. 심사위원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이 찬성하면 합격이다. 합격한 사람은 합격증을 가지고 무대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부둥켜안고 감격의 기쁨을 누린다.

쌍케와 돌카는 서로 힌디어를 주고 받아가며 신나게 웃고 있다. 뭐 때문에 그리 신나게 웃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내내 침묵하고 있던 내가 원숭이 몸짓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힌디어로 대화를 나누면 원숭이가 된다."

둘이 배꼽 잡고 웃어가며 내게 쉬운 영어로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영어가 영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갑자기 진공 상태에 빠진 듯 멍해진다. 두 사람이 다정한 미소로 내게 뭐라 설명하고 있지만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저 웃기만 했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워 있는 내 몸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고산증을 앓는 사람처럼 숨이 가빠왔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는 상태, 마치 어떤 기운에 씌운 듯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긴 테이블 반대편에서 잠들어 있는 쌍케의 수면 방해를 염려해 어금니를 깨물어 가며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동안 잘 견뎌왔던 다친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다. 입에서 '으으으' 하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기다시피 해서 방문 앞으로 다가가 겨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달빛이 밝다. 보름달이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희끄무레 보일 정도로 훤하다. 저만치 스톡마을 쪽에서 허공을 향해 우우,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스톡마을을 감싸고 있는 돌산에 늑대가 살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늑대 울음소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지친 몸뚱어리처럼 늑대의 울음소리치고는 매가리가 없다. 길 잃은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다. 가끔 마을로 내려와 개들을 물어간다는 늑대들이 저 산에 진짜로 있기나 한 것일까. 야생성을 잃어버린 늑대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손에 길든 개 짖는 소리나 다름없다. 야생성을 잃어버린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는 기세 넘치는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없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낼 뿐이다. 저 매가리 없이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늑대의 소리는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공허한 웃음소리나 다름없다.

저 매가리 없는 소리가 늑대의 소리인지 개의 소리인지를 판가름하겠노라 귀 기울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네팔 소년 뒤뉘시네 움막이다. 세상에 나온 지 10개월 된 뒤뉘시 여동생이다. 저 아이도 언젠가는 힘든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울음을 삭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힘든 일을 마치고 움막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어린 동생을 업고 사진기 앞에서 웃어주었던 네팔 아이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험한 세상에 상처받고도 탓하지 않는다. 그 상처를 껴안고 슬픈 눈으로 미소짓고 살아가기에 슬프다. 포대기를 둘러 동생을 업고 있던 네팔 소녀가 그랬다.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 얼굴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다지만 움막집에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해야만 하는 네팔 아이들의 아픔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아이들의 속울음을 알지 못한다. 환한 달빛에 희끄무레 드러난 설산처럼 눈앞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늑대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고 싶었다.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