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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송태원 시집(時集)
 '어쩌다' 송태원 시집(時集)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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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3일 '어쩌다'라는 시집이 아닌 시집을 냈다. 출판사는 '다른경제협동조합'이다. 구성은 단순하다. 짝수 페이지에는 글이 있고 홀수 페이지에는 사진이 실렸다. 대부분의 글과 사진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면서 4년 정도 시나브로 모인 것들이다. 자비로 출판하는 거라 아무 생각 없이 100권을 찍었다.

ISBN(국제표준도서번호)를 발급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출판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글과 사진을 정리하고 교정 보고 표지 디자인을 맡기고 인쇄를 하고 간지를 끼우고 제본을 맡겼다. 직접 책을 팔러 다니기까지 했다. 추가로 200권을 더 찍었다. 그것이 2쇄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그렇게 약 240권 정도를 200여 명에게 직접 전달했다(서울과 인천에 택배 보낸 7권 빼고).

책을 내는 동안 '결제'라는 유령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 곁을 돌아 다녔다. 책이 팔리는 대로 '다른경제협동조합'에 돈을 가져다 주었다. '어쩌다' 택배, 저자 서명, 저자와의 대화(짧으면 5분, 제일 길었던 건 1시간 넘게)도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볼품없는 책의 인쇄값도 선뜻 보태주었다. 못 다한 결제라는 유령 덕분에 하루 동안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유령아 너가 무섭지만은 않더라. 날 반기는 이들이 있어서. 지금도 내 등 뒤에는 결제라는 유령이 어슬렁거린다."

어쩌다 택배의 후유증이 있었다. 커피를 너무 많이(7~10잔 이상) 마시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믹스 커피를 마시는 날은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았다.

<어쩌다> 도서 택배 배달과 파지 수거

지난해 초 100원을 넘지 않던 종이값이 150원으로 치솟았다. 아버지는 1톤 트럭으로 파지를 수거한다. "종이값이 언제 내릴지 모른다"며 한 푼 더 벌려고 무리를 하다 팔을 다쳤다. 그리고 얼마 후 수술하였고 4주간 병원 신세를 졌다.

아버지 대신 4주간 1톤 트럭으로 파지를 수거했다. 골목골목을 다녔고, 빌라와 아파트 상가에 모인 종이를 치워주었다. kg당 150원. 1톤 트럭에 종이 1톤은 실리지 않는다. 무게에 비해 부피가 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70대 중반의 몸으로 500~700kg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엄마와 둘이서 한 차 가득 파지를 실었다. 580kg 가량이다. 엄마는 기분이 좋다. 한 차 가득 종이가 가득하다. 종이를 팔러 가는 길에 엄마는 말했다.

"저기 아파트 벽화 엄마가 색칠한 거다. 한 칠팔년 지난 것 같다."

누나가 그림을 그리는 게 엄마를 닮았나 보다. 엄마는 걱정이다. 누나가 돈 안 되는 민화를 그린다고 걱정이었다. 바람이 불어 낙엽이 날렸다. "막내 아들(청소 노동자) 저거 쓸어 담는다고 허리가 뿌사지겠다"며 또 걱정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고 한다. "내일은 더 많이 하자"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아들과 엄마는 마주 앉아 3000원짜리 국수를 먹었다. 그렇게 오전은 파지 수거를 하고 엄마와  매일 맛난 점심을 먹었다. 오후와 저녁은 <어쩌다> 책 배달을 다녔다.

"인짜 안 와도 된다. 오늘만 한바퀴를 돌고 다음주는 아버지 퇴원한다. 다음주 퇴원한다. 언제 올래?"
"책이 우째 팔리나? 병원에 편히 있는 사람은 걱정이 안 되는데, 니가 걱정이다."

저는 나름 잘 지내고 있어요.
출근하는 직장없어
단지 쓸 돈이 넉넉하지 못할뿐

저는 오늘도 잘 살았어요
오토바이 택배(어쩌다 도서 택배),
일주일 만에 배드민턴,
맹자 몇 줄 읽고,
연극수업 참관
낮에 과도하게 먹은 각종커피(원두, 믹스 등 카페인 음료들) 덕분에
글도 몇자 써 보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단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낸다는 것 뿐
세상사람들 잊고 지내진 않아요

자비로 찍은 책 <어쩌다> 100권을 다 전해주었다. 용기 내어 추가로 더 찍기로 했다. 11월말에 추가 200권을 더 찍었다(2쇄라고 할 만한 의미는 없지만).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회원인 분이 말했다.

"p92에 솔개 두 마리라고 해 놓고 사진은 황조롱이 두 마리네! p118는 노랑발 쇠백로라고 해 놓고 위에는 중대백로 사진이고 아래는 노랑발 쇠백로 사진이네."

책 구매시 제시한 혜택 중 '저자와의 5분 대화'는 지켜지지 않았다. 절반 이상은 5분 이상 대화를 했다. 즉석에서 글과 사진을 보며 사진에 대해 글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 보았다. "아무리 인터넷서점을 검색해도 책이 안 나와요"라며 4~5년 만에 연락해준 분도 있었다.

'어쩌다' 비싼 종이 뭉치일수 있는 책을 배달하며 나는 반가움에 한참을 웃으며 사람을 바라보았고, 울컥하는 마음에 시신경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도 느꼈다. 고마움에 목이 메어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도 했다. 비싸다고 만원 지폐를 구걸하는 이에게 주는 것처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장영식 작가의 탈핵사진전을 다녀와서 부터는 사은품이 생겼다. 탈핵 사진엽서이다. 귀찮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장을 고르기 위해 꼼꼼히 보는 사람도 있다. 한 장 한 장 설명하며 탈핵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강조해 본다. 가끔 '어쩌다'가 기대 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 내 삶이 부럽다는 사람도 있다.

"만나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분들을 오늘도 찾아간다."

6000+박카스2병에 '어쩌다' 책 7권을 선물하다

본문 81page의 '마음의 점 하나' 이은정 (담은)캘리그라피 작가가 내 글을 적어주었다.
 본문 81page의 '마음의 점 하나' 이은정 (담은)캘리그라피 작가가 내 글을 적어주었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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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한 아파트 상가에 파지 수거하러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광안대교로 진입했다. 통행료 1000원을 냈다.

"여기는 유턴이 안 되요. 돌아올 때 또 1000원 내야 하는데 어떡해요!"

요금징수원이 안타까워 했다. 광안대교에 올라 바다 위를 달렸다.

"우리 아들 덕분에 드라이브도 하고 좋은 구경도 한다. 이게 광안대교가? 나도 오늘 처음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중간에 한 곳에 들러 <어쩌다> 책 배달(13권)을 하였다. 오전에 빨리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나는 정말 기계처럼 박스를 차에 올리고 위에서는 정리를 한다.

차곡 차곡 정리하지 않은 채 200kg 정도 실으면 엉망이 된다. 엄마는 "오늘은 양이 작다. 저번주는 많았는데......"라고 말한다. 좀 실망한 눈빛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박카스 두 개를 건네며 말한다.

"드시고 하세요. 우리 상가 치워줘서 고마워요. 근데 할아버지는 안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우리 아들이지."
"아드님이 효자시네요. 낮에 시간이 다 내고......"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글 쓰는 작가라데..."라고 말한다.

'어떤 글을 쓰냐'는 물음에 운전석에 실려있던 <어쩌다>를 꺼내 파지 싣고 있는 동안 읽어보고 선전 많이 해 달라고 한다(선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데 저자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책인데, 아직 엄마는 그걸 모르고 있다). 30분 정도 지났나. 박카스를 준 아주머니 가게에 책을 찾으러 갔다. 내 손에는 흑백으로 찍은 <어쩌다>를 들고 있었다. 박카스 두병 대신 선물할 생각이었다.

"혹시 갖고 싶으시면 칼라판은 비싸니까. 제가 흑백판을 선물로 드릴게요."
"그래도 돼요. 표지 사진 보다 훨씬 젊으시네요. 글 읽고 봤는데 너무 순수한 분 같으세요."

우째저째 해서 책값을 받았다. 6000원+(나머지는 이미 박카스 두 병으로 계산이 되었으니까). 저자 서명도 해 주고 이후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에 화명복지관에 책 2권 기증, 맨발동무 도서관에 1권 기증, 청소하시는 분 1권, 경비아저씨 1권, 장영식 탈핵 사진전 관람하시는 분 1권를 선물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전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전합니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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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지만 이미 200여 분과 직접 만났기에 짧은 글로 대신합니다. 이해해 주실 거라 굳게 믿습니다. <어쩌다>에 보내주신 관심과 책 값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값비싼 종이 뭉치에 이런 따뜻한 마음을 내신 분들은 분명 자신의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그:#어쩌다, #자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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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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