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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예요?"
"정규직이요."

개그 프로그램의 짤막한 대사였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라 웃을 수가 없다. 나도 차마 자존심 때문에 내뱉지는 못했지만 직장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을 때 품었던 생각이었고, 지금의 취준생들에게 질문한다면 어렵지 않게 들을 답변이다. 누가 저 대답이 틀렸다고 혹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으랴.

프리랜서로 벌이가 변변치 않은 남자 후배에게 소개팅을 해주고 싶어 의사를 물었다. 나에겐 '후배'가 먼저였고 '프리랜서로 벌이가 변변치 않은'은 머나먼 나중이었기에, 가끔씩 외로워하던 후배가 역시 선배밖에 없다며, 누구냐며, 적어도 예쁘냐고 당연히 물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본 낯선 반문을 들었다.

"선배. 그 여자가 비전 없는 남자 괜찮대요?"

너가 왜 비전이 없냐며, 너처럼 괜찮은 애가 어디 있냐며 어색한 추임새를 넣었지만, 이미 후배의 마음은 비전과 연애를 한보따리로 엮은 지 오래였다. 비전이 없으면 연애도 없다. 종종 뉴스에서 듣는 N포 세대는 바로 나의 후배 얘기였다.

8번 이직의 원인... 꿈과 정규직

 나의 20대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던 드나듦의 연속이었다
 나의 20대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던 드나듦의 연속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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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의 후배는 비전이 없어 외롭지만 연애를 포기했다. 비전이 없으면 연애도 없고, 결혼도 없고, 출산도 그리고 희망 자체가 없다. 눈물조차 나지 않는 슬픔,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준 순환이다.

우리는 N포 세대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동의도 비난도 슬픔도 기쁨도 아무것도 건넬 수 없다. 그 비전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정규직'이라 적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규직이 아니면 돈을 못 모으고, 돈이 없으니 결혼과 내 집 마련도 힘들고, 결국 자식을 나아 키울 제반도 없다. 그러니 그 시작인 연애조차 꿈도 못 꾼다. 다 포기하게 만드는 순환. N포 세대.

나는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다. 9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시 계약직과 그냥 계약직, 정규직과 프리랜서, 형태로는 파견직과 촉탁직까지 참 다양하게도 경험했다. 그 기간 동안 8번을 이직했고, 주가가 200만 원이 훌쩍 넘는 대기업과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중견기업, 대기업에 준하는 연봉도 주지만 업무도 주는 중소기업과, 총 직원 3명의 작은 학원까지 다녔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이직의 여왕이란 별명을 붙여주었고 <세상에서 이직이 제일 쉬웠어요><대기업 취업? 별거 아니죠> 등의 책을 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베스트셀러가 될까?

8번 이직의 원인은 두 가지. 꿈과 정규직 때문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이직했고, 정규직을 이루지 못해 이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대해 고민할 때쯤 내 주변의 동기들과 선배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자와, 정규직과 안정된 노후를 위해 도서관에 정착하는 자. 나는 전자였고 20대 내내 방황했다.

그래서 나의 20대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던 드나듦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고용형태와 강남에서부터 제주도까지 다양한 근무처에서 일했다. 목표는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을 오래오래 하는 것'.

그 '오래오래'는 정규직과 동의어였다는 것을 퇴사를 하고 난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난 언제나 비정규직이었다. 계약만료가 되고 다음 직장을 구해야 했을 땐,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해 나의 노동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규직을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정규직의 자리는 꿈이 아닌, 돈 혹은 안정을 위한 꿈이 배제된 선택이었고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적어도 흥미 없는 일을 반복하는 정규직보다는, 재미있는 일을 한시적으로 하는 비정규직을 택하는 편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들의 시각의 차이. 정규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을 부러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은 돈과 자리가 보장된 정규직을 부러워 한다.

무엇이 나은 걸까? 왜 꿈과 정규직은 동의어가 되기 힘든 걸까? 그 둘 사이에서 나는 많이 고민했고 괴로웠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고, 꿈과 정규직 사이에서 20대를 보냈다. 꿈은 이뤘지만 정규직은 이루지 못해 그 꿈은 이제 경력단절이 되었다.

정규직과 정규직이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는 직장과 사회. 그러니 꿈이 정규직이라 말하는 청년들에게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해줄 수 없다. 정규직이라는 꿈은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는지도 답해 줄 수 없다. 나도 이루지 못했으니까. 꿈을 이룬 사람이어도 멘토가 될 수 없다.

직장 말고 창작

 10년 동안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후 내린 결심은 '직장 말고 창작'하며 살자는 것이다
 10년 동안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후 내린 결심은 '직장 말고 창작'하며 살자는 것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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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방향을 바꾼다.

10년 동안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후 내린 결심은 '직장 말고 창작'하며 살자는 것이다. 어딘가를 또 입사하기 위한 이력서 대신, 입사하지 않기 위한 활자를 써보기로 다짐했다. 재택근무도 가능하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로우니 참 이상적인 직장이다. 적어도 그 일은 쉽진 않겠지만 내가 원하고 노력하는 한 정당하게 흔적을 남기고, 내가 쓰는 한 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을 테니까.

본인이 힘겹게 겪고 사유하고 고민한 일들에 대해서는 저절로 이야기가 써지는 법이니, 적어도 나는 내가 겪었던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너무나 방황했던 나의 이십대. 사춘기로는 부족한 이십춘기 같은 시절들을 곱씹고 써내려가 모두의 이십대에게 길잡이나 멘토 같은 건 때려치고, 가십과 농도 짙은 농담을 마구 마구 건네고 싶다.

20대엔 꿈과 정규직 사이에서 고민했다면, 30대엔 글과 자발적 프리랜서 사이에서 고민하겠다. 수고하고 수고하다 보면 고수가 될 수 있는 삶을 증명하고 싶고, 꿈이 정규직이라 말하는 청춘들과 N포 세대인 그대들에게, 정규직을 포기한 '정포세대'인 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10년 가까이를 방황했던 나의 청춘에게 경의를 표하며 직장 대신 창작에 다니겠다. 1인 기업이니 내가 사장.

그나저나. 책 제목을 <직장 말고 창작>이라 할까? 베스트셀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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