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영화에서도 활동한다면 대단한 여배우의 발견이 될 것이다. 영화팬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쪽으로 오기만 한다면 우리야 반갑지." - 송강호(씨네21)

"왜 이제야 영화판이 그녀의 이름을 호명하는지 좀 늦은 감이 있다. 영화가 그녀의 매력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다. 지금 영화를 시작해도 앞으로 20년 동안 모든 남성 관객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 김윤석(씨네21)

최근 서울 혜화에 위치한 연희단거리패 소유의 카페 30스튜디오에서 만난 배우 김소희는 긴 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큰 키의 배우는 기자를 보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막 필리핀에서 귀국하는 길이었다.

김소희는 자리에 앉더니 한참 동안 필리핀에서 보고 들은 걸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생기와 에너지가 감도는 얼굴이었다. 그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만드는 VR 영화의 촬영을 필리핀에서 진행했다고. 김소희는 VR 영화가 '연극적'이라고 했다. 가장 최신의 (혹은 근미래의) 매체를 두고 가장 오래된 예술인 연극을 떠올리다니?

"이게 360도가 다 찍히는 VR 카메라니까 모니터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떻게 찍는 건지 확인할 수가 없는데 감독님도 '나도 어떻게 찍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웃음) 정말 실험 단계다. 비나 눈이 올 때는 찍을 수가 없다. 카메라에 우산을 씌울 수가 없으니까. (360도 카메라로 촬영이 되니 우산을 씌우면 윗부분이 막혀 시야가 가려진다 -기자 말) 감독님들도 카메라를 세팅해놓고 촬영 시작하자마자 주변에 막 숨는다. 그리고 나 혼자 연기를 한다. (관객들이 원하는 곳을 볼 수 있다는) 그런 점이 약간 연극적이다."

전통 있는 극단 중 하나인 연희단거리패의 대표라는 '명함' 때문일까. 스크린 너머로 본 연극 배우 김소희는 굉장히 고전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영화도 찍고 VR 영화까지 도전하는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VR영화에서는 수중 촬영까지 감행했다. 그는 웃으며 "모험심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 무브먼트/이승희작가


실제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소희는 지난달 28일 개봉한 <나의 연기 워크샵>에서 연극 배우이자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의 선생인 '미래' 역할을 맡았다. <파스카>와 <나의 연기 워크샵>을 연출한 안선경 감독과는 20년 전 연희단거리패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선경이는 20년 전 처음으로 극단에 들어와서 3년만에 나갔다. 선경이가 나가고 영화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2013년 연극 <미스 줄리> 마지막 공연 때 선경이가 앉아 있는 거다. 그런데 너무 안 변하고 옛날 느낌 그대로여서 놀랐다. 영화를 한다는 게 잘은 몰라도 기약이 없는 일이라고 들었다. 배우에게 아무리 허름한 옷을 입혀도 기본 제작비가 있어야 하고 감독이 직접 펀딩도 해와야 하더라.

연극도 물론 연출가들이 가끔 집 팔고 그렇지만. (웃음) 연극은 영화처럼 제작비 단위가 크지 않으니까. 영화가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들겠구나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본 선경이는 상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힘들면 찌들거나 뻔뻔스러워지거나 안쓰러워지는데 그런 게 없었다. 날 보더니 무슨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그랬다. 얘가 돈도 있고 그러면 '야 나보다 좋은 배우 찾아봐' 하겠는데 돈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돈 없이도 찍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다. (웃음) 그런데 나는 감독이 원하는대로 갈 수 있고 영화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이 감독이 원하는대로 날 던질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그렇게 배우 김소희는 안선경 감독과 함께 영화 <파스카>를 찍었고 그로부터 4년 뒤 다시 <나의 연기 워크샵>을 한 편 더 찍었다. 옆에 앉아 있던 안선경 감독은 "되게 많은 걸 파악하고 계셨네"라며 거들었다. 그리고 영화 <파스카>는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았다.

"한 여자 심사위원이 와서 '너희가 1등이야'라고 이야기했다. '너희 걸 먼저 정해놓고 다른 작품을 하나 더 뽑았어'라고. '아니 내가 그렇게 대단한 작품을 했어?' (웃음) 싶었다. 그게 되게 큰 용기가 됐던 것 같다. 이렇게 큰 결과를 바란 게 아니었고 안선경이라는 친구가 그저 한 문턱을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은 느낌이었지. 그리고 <나의 연기 워크샵>까지 같이 하게 된 거다."

"상업적인 연기를 거부하진 않지만"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 무브먼트/이승희작가


- 김소희 배우는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상업적인 걸 거부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상업 영화나 상업적인 프로젝트 자체를 거부한다기 보다 상업적인 연기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 한정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영화를 하자고 연락이 오는데 대부분 어떤 느낌이냐면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 많을 것 같은 느낌의 배역들? 그리고 실제로 할 사람도 많다. (웃음) 오달수 선배님이랑 몇 주 전에 군산에서 만났는데 달수 선배님이 '이제 상업도 해야지' 말씀하시더라. '상업도 나쁘지 않다'고.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숫기가 없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내가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다'고 보여줄 만한 사람이 못 된다. 시장에 나를 내놓는다는 느낌? '내가 누구누구보다 더 적당하지 않나요' 이렇게 내보이는 성격이 못 된다. 약간 자본주의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는 영화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작업을 같이 한다는 건 한 인생과 다른 인생이 중요한 지점에서 만나는 거라고."

- 어쨌든 유명해지면 수월해지는 측면이 있지 않나?
"그렇다. 걱정은 된다. 후배들이나 제자들 중에 '나중에 제가 자리를 잡으면 선생님을 위한 작품을 쓰겠습니다'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웃음) 내가 60대 정도 됐을 때 누군가 그런 제의를 하면서 한 400석 정도 되는 대극장에서 연극을 하자고 제의를 한다면 내가 선뜻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루에 400석을 어떻게 채우려고 해? 하지 말자'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럴 때 알려진 배우라면 선뜻 하겠다고 하겠지. 내 성격상 '망해도 하자'고 못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남이 망하는 이야긴데. 연극을 계속 했을 때 작은 극장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큰 극장에서 연기를 하면 객석을 채울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도 한다. 좀 더 인지도를 쌓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싶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지 않는다."

- 주로 연극 배우로 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교수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출도 가끔 하고 연희단거리패 대표이기도 하다. 어떤 역할이 가장 흥미로운가.
"배우다. 연기를 하면 좀 더 안에 있는 숨이 확 토해져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고통스러운 연기를 해도 마찬가지로 순환이 되는 느낌을 받아서 배우를 하면 건강해진다. 몸관리도 훨씬 더 잘하는 것 같고."

- 배우를 하면서 특별히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 있나?
"미지의 뭔가 몰랐던 것, 내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걸 매일 알아가고 싶다. 새롭게 느끼고 발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 무브먼트/이승희작가


- 안선경 감독이 김소희 배우를 두고 감독이 지시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감독과 마찰이 있거나 그러진 않나?
"바쁠 땐 묻지 않고 따라간다. 해가 지겠다 싶으면 묻지 않고 따라가고. 제작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 상황에서 최고의 것이 나와야 하니까. 언제 편집될지도 모르는 연기의 최고봉을 위해 모든 걸 멈추고 '내 이야길 들어봐 나는 이거라고 생각해' 하지 않는 편이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입은 옷이 불편해도 그대로 하는 편이다. 전체적인 방향에서는 분명 연출이 하는 이야기가 맞는 편이 많았다. 그래서 연기의 형태에 대해 크게 고집이 없는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엄청난 배우도 아니잖나? (웃음) 언제나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연출이 무얼 원하니까 이렇게 해줄까? 이걸 원해? 그래 해줄게' 이런 자세가 나는 약간 배우의 멋이라고 본다. (웃음)"

- <나의 연기 워크샵>에서는 배우 지망생들의 선생으로 분했다. 학생들에게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실제로도 연기를 가르칠 때 그런 식으로 내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나?
"그런 편이다. 사실 기술만 가르쳐도 연기는 는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늘지 않더라. 훈련이 많은 부분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연기는 그 사람의 삶이 보이는 거기 때문에 트레이너가 다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게 연기를 가르치면서 항상 드는 나의 고민이다. 나랑 관계를 맺은 후배나 제자가 어떤 연기를 적용해 배우로서 삶을 바꿀 수 있는가? 그건 인생이 바뀌는 문제니까. 내가 아무리 가르쳐줘도 생각처럼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워크숍이나 연기 훈련도 결국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럼 받는 사람들에게 남더라. 감동 없이 단순히 지식만 있으면 그 정보는 다 머리를 통과한다. 그래서 배우가 선생과 제자로서 만날 때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 선배 배우들이 후배 배우들에게 주로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라'는 것이다. 김소희 배우 역시 후배나 제자들에게 그런 조언을 해주나?
"사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한 편은 아니다. 부모님의 큰 반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엄청난 가난을 뚫고 밥벌이를 하면서 연기한 것도 아니고 너무 평범하고 순탄하고 재미없는 나 같은 사람도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경험을 못 해도 간접 경험을 할 만한 삶의 경험을 하면 좋다. 경험을 다 하고 연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뭔가 봤다거나 읽는다거나."

- 연기를 배우고 싶어 오는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어떤 말인가?
"왜 너만 바라봐? 왜 너만 생각해? 그런 것? 기술적으로 호흡을 어떻게 하는지도 이야기하고 몸의 상태에 대해서도 많이 말한다. 연기는 결국 몸으로 하는 거라.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면... '집중하지 말라'고 한다. 집중하지마! 이러면 애들이 황당해 한다. '차라리 딴 생각을 하라고. '너 살면서 계속 집중하니?'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해도 눈썹 끝을 보면서 '눈썹이 좀 없네' 이런 생각하지 않니?' (웃음) 막연하게 연기를 너무 열심히 하려는 애들이 있다. 혼자서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한다."

- 학생들에게 가장 혼을 내는 순간은 언제인가?
"자기만 생각할 때. 이기적이거나 관객을 잊을 때. 나는 관객도 그 연기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말을 안 할 뿐이지. 뭔가를... 놓을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준비를 하긴 하지만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거니까. 그 실수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실수 절대 못 해' 하면 배우 못한다. '어휴 내가 또 실수했네' 이렇게 볼 수 있어야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 엄청 준비한다. 창피하니까. 그런데 그러다가 또 실수할 수 있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배우 김소희 ⓒ 무브먼트/이승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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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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