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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왜 아직도 항쟁이 아닌 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번에 동아리에서 제주도 역사기행을 다녀온 광주전남의 대학생입니다. 방학 때가 되면 전국 곳곳에 있는 우리 역사의 유적지를 보고 배우기 위해 역사기행을 다녔고 이번에는 제주 4.3항쟁에 대해 배우기 위해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광주전남의 대학생인 만큼 광주의 아픈 역사이자 승리의 역사인 5.18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5.18만큼 중요한 우리의 아픈 역사인 제주 4.3항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역사기행은 저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왜 4.3항쟁은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아직까지도 항쟁이 아닌 사건이라는 공식명칭을 칭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은 기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아니 더 증폭되고 있습니다.

제주 4.3항쟁은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의 분단과 함께 미군정이 남한에 주둔하게 되었고 그 이후 한반도에 단독 정부 수립과 단독 선거 실시가 되는 것을 제주도민들이 반대함에 따라 발생했습니다. 단선단정 수립 반대, 미군정 반대, 한반도 분단을 반대했던 제주도민들에게 닥쳐온 현실은 이승만 정권과 미국의 폭력적인 진압과 무자비한 학살이었습니다.

1947년 3.1사건을 시작으로 1954년까지 6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최소 3만에서 비공식적으로는 10만 이상의 제주도민들이 학살되었습니다. 이는 제주도 인구의 최소 10분의 1에서 최대 4분의 1까지의 인구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사실 한국전쟁도 그렇고 5.18 민주화운동도 그렇고 제주4.3항쟁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몇 명이 학살당했다라는 텍스트화된 표현은 저에게 잘 와 닿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제주기행을 통해 보았던 유적지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이전에 여행목적으로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관광지들이 사실 알고 보니 수많은 학살이 자행되었던 제주 4.3항쟁의 유적지였던 것입니다. 정방폭포가 그랬고 알뜨르 비행장이 그랬고 그 외에도 수많은 곳들이 그러했습니다. 단순히 아름답게만 보였던 관광지들은 제주 4.3항쟁 피해자들의 억울한 영혼이 담겨있는 안타까운 유적지였던 것입니다.

제주 4.3항쟁 송악산 섯알오름 학살터 제주 4.3항쟁 당시 이승만 정권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자행했던 보도연맹원 학살터. 이름은 송악산 섯알오름 학살터
▲ 제주 4.3항쟁 송악산 섯알오름 학살터 제주 4.3항쟁 당시 이승만 정권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자행했던 보도연맹원 학살터. 이름은 송악산 섯알오름 학살터
ⓒ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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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승만 정권 시절 보도연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내고 순진한 민간인들을 보도연맹원으로 가입시켜 예비검속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 하나인 송악산 섯알오름 학살터는와 제주 4.3평화 기념관은 이번 기행에서 저에게 가장 충격적인 답사지였던 것 같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도 연맹원 학살터는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발견되지 못했고 이곳 섯알오름 학살터도 우연히 발견된 유적지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무고한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이러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분노와 울분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제주 4.3항쟁 평화기념관 백비 제주 4.3항쟁 이후 언젠간 통일된 한반도에서 진정한 4.3항쟁의 이름을 새겨넣기 위해 보존되어 있는 백비이다.
▲ 제주 4.3항쟁 평화기념관 백비 제주 4.3항쟁 이후 언젠간 통일된 한반도에서 진정한 4.3항쟁의 이름을 새겨넣기 위해 보존되어 있는 백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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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평화 기념관은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충격적인 곳이었습니다. 우선 제주 4.3항쟁 피해자들의 영령이 깃들어 있는 위패 봉안관에서는 약 1만4천여 명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5.18민주화운동 위패 봉안소나 안산에 있는 세월호 합동 분향소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숨이 탁 막히는 그런 느낌 말이지요. 봉안소를 빽빽이 채워놓은 피해자들의 이름에는 한 분 한 분 억울함을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본관에서는 제주 4.3항쟁의 역사와 그 외의 여러 가지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몇몇의 전시물과 제주 4.3항쟁은 단순히 남로당 인물들이 일으킨 일련의 사건이라는 기념관 측 해설사님의 해설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제주 4.3항쟁 평화기념관 위패 봉안소 제주 4.3항쟁 평화기념관에 위치한 위패 봉안소. 4.3항쟁 희생자들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으며 희생자들의 영령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 제주 4.3항쟁 평화기념관 위패 봉안소 제주 4.3항쟁 평화기념관에 위치한 위패 봉안소. 4.3항쟁 희생자들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으며 희생자들의 영령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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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항쟁의 유족들 중에서는 이 평화 기념관에 오는 것이 고통이라고 표현한 분도 있으셨습니다. 정작 유족들은 용서하지 못한 이 억울한 역사를,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은 역사를 기념관이 용서하겠다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사건이든 화해와 용서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3항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유족들의 심정을 반영하지 못한 평화 기념관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기행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단선단정, 미군정 체제를 반대하고 통일된 한반도를 간절하게도 원했던 제주도민들이 당한 그 억울함을, 그리고 그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우리가 4.3항쟁에 대해 잘 알고 있지도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그리고 앞으로는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극복하고 국민들이 주인되는 세상 즉 국민주권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배웠습니다.

2017년 우리는 1700만 촛불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적폐를 청산하였습니다. 매주 추운 날씨에도 광장에서 모여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의 위대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주인되는 세상,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정말로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깨닫고 다시 생각하면서 밝은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제주 4.3항쟁 역사 기행 참가단 단체사진 제주 4.3항쟁 역사기행 '탐라는 도다'에 참여한 전체 참가단 단체사진입니다.
▲ 제주 4.3항쟁 역사 기행 참가단 단체사진 제주 4.3항쟁 역사기행 '탐라는 도다'에 참여한 전체 참가단 단체사진입니다.
ⓒ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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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대학 청춘의 지성 광주전남 목포대학교 소셜메이커 박찬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