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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한 박정희 정권은 부랑자, 고아들을 충남 서산에 가뒀습니다. 바다를 막아 땅을 일구게 했습니다. 이들과의 강제 결혼을 위해 부녀자도 끌려왔습니다. 보상 대신 그들 앞에 놓인 것은 20년 상환으로 갚아야 할 빚 뿐. 대부업자는 국가입니다. [편집자말]
1966년의 탄원서와 2018년의 탄원서.
 1966년의 탄원서와 2018년의 탄원서.
ⓒ 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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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장의 탄원서가 있다.

하나는 1966년의 "박정희 대통령 각하 앞에", 하나는 2018년의 "문재인 대통령님께" 보내는 탄원서다. 52년의 시차. 전자는 한자가 빽빽한 수기로, 후자는 컴퓨터 문서파일로 작성돼 세월의 변화를 가늠케 한다. 그 사이 800명이던 탄원인은 불과 11명으로 줄었다.

두 탄원서의 작성자는 모두 서산개척단(대한청소년개척단) 단원들이다.

'말도 안 되는' 탄원서에서도 드러난 진실

서산개척단 정영철씨
 서산개척단 정영철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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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발전향상과 국민의 생활안정질서를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써 힘써 노력해주시는 (박정희)대통령 각하 앞에 감사를..."

이라고 시작하는 1966년의 탄원서는 민정식 당시 서산개척단장의 각종 국가지원금 착복과 운영 부조리를 고발하며 내사에 착수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탄원인은 '대한청소년 개척단 서산자활정착사업장 탄원인 일동, 800명 대표 정용일'이라고 돼 있다. 민 단장의 서산개척단 운영 비리에 대해 다른 간부급 관리자들에게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서산개척단 출신 정영철(77)씨도 물론 '탄원인 일동 800명'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1966년 당시엔 이 탄원서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그건 우리가 쓴 게 아니여. 정용일이 같이 최고 높은 간부들이 쓴 거니께. 민정식 단장이 중간에 혼자 도적질을 너무 심하게 하니께 쫓아내버리려고 쓴 거지."

정용일 감독관은 당시 민정식 단장의 오른팔로 불리던 개척단 내 실세였다. 그는 탄원서에서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던 개척단의 근황을 소개하며 이렇게도 썼다.

"저희들은 지난 날 사회악을 조성해온 탓으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어온 무의무탁한 남녀들로서... (중략) 반성과 청산된 선도의 길로 달리기 시작해서 오늘날에는 정부당국에 적극적인 지원으로 완전한 인간 개조는 물론 125쌍 합동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저희들과 같이 불우했던 여성들과 짝을 지어 그 속에서는 벌써 제 2세들이 탄생하여 더욱더 보람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영철씨는 "미친 소리"라고 했다.

"말도 안 되지. 허허허, '보람된 나날'? 민정식이가 나쁜 짓 했단 내용은 맞어. 근데 보람된 나날? 합동 결혼은 무슨 다 강제로 결혼시켜뿐 건데. 그 밑에서 우리들은 맨날 얻어터지면서 뻘바닥 논 맨드느라고 뒹굴고 있었던 거 아니여."

그러나 이 '말도 안 되는' 탄원서에도 당시 개척단 상황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형편없이 영양실조에 걸려있으니 부식이라곤 소금 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까요?"
- "주택은 지붕이 뚫어졌고 비가 새고 방은 흙벽 속에서 자는데도..."
- "식량은 겨우 1일분 씩 구입해다 먹을 정도로 자금이 두절상황에 놓여..."

1966년 탄원서 존재조차 몰랐던 이들이 쓴 2018년 탄원서

서산개척단 정화자, 윤기숙, 성재용씨.
 서산개척단 정화자, 윤기숙, 성재용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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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52년 후, 알지도 못했던 탄원서에 함께 이름을 올려야 했던 이들이 다시 탄원서를 썼다. 정영철·성재용(75)·정화자(76)·윤기숙(84)씨를 비롯해 아직 서산에 남아있는 개척단 출신 어르신 11명이 머리를 맞댔다. 지옥 같았던 개척단에서 고생한 끝에 가분배 받은 폐염전 부지를 어렵게 옥토로 만들었건만 다시 국가로부터 그 땅을 빼앗긴 이들이었다. 그들이 그간 겪은 고초와 절망감을 A4용지 5쪽 분량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미 여러 차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한 정영철씨는 이번 탄원서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탄원서는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으로 시작한다.

"저희들의 사연에 귀를 열어주실 것을 간곡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끝 무렵에선 이렇게 묻는다.

"누가 국가에게 국민을 사사로이 이용하고 도구로 사용하는 권한을 주었습니까? 그러한 권한이 없음에도 저희들이 당한 인권 유린에 대해 처벌 받은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도대체 어디에 대고 이러한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해야 하는지요?"

1966년의 탄원서와 2018년의 탄원서를 여기에 함께 싣는다.

1966년의 탄원서

<탄 원 서>

국가발전향상과 국민의 생활안정질서를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써 힘써 노력해주시는 대통령 각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탄원서를 올리게 된 저희들은 이미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지난 날 사회악을 조성해온 탓으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어온 무의무탁한 남녀들로서 기 못된 악의 과업을 받어온 그릇된 생활인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올바른 인간생활의 터전을 찾고저 고심하던 중 행인지 불행인지 4, 5년 전 저희들의 현 단장님이신 민정식씨의 도움으로 약 70여 명이 함께 뭉쳐 새생활의 보금자리를 기대해 가며 일로 반성과 청산된 선도의 길로 달리기 시작해서 오늘날에는 정부당국에 적극적인 지원으로 완전한 인간 개조는 물론 125쌍 합동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저희들과 같이 불우했던 여성들과 짝을 지어 그 속에서는 벌써 제 2세들이 탄생하여 더욱 더 보람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61년 11월 14일 보사부 장관으로부터 위촉을 받은 민정식 단장 인솔 하에 현 정착지에 기틀을 마련코자 불과 4, 5년 사이에 1771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고 또한 간척지 332정보를 맨손으로 개간에 착수, 그 희망을 목표삼아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음을 관찰하실 때 저희들의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 탄원서를 올리게 된 기 근본 취지를 말씀드려야 할 사정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5여년 동안 친부모와 같이 믿고 의지하고 살아온 저희들의 단장님이신 민정식 씨께서는 운영방법이 너무도 허술하며 그것을 시정해 줄 것을 수차례 걸쳐 요구했으나 그 분은 우리들의 건의를 일절 무시하고 마치 자기사제로 이끌어가는 단체인양 모든 운영을 '팟쇼' 식으로 농지개간을 비롯한 운영문제에 이르기까지 도회시하고 운영자금 일체를 자기수 중에서 낭비하는 등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행위로 인하여 현재 저희들은 완전히 도탄에 빠져 자칫 잘못 하면 정부당국의 본래 시책이 위해 됨은 물론 저희 자신들은 다시금 암흑 속으로 뛰어들게 된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저희들은 지난날도 그랬거니와 지금은 의리 하나만을 철두철미하게 뿌리가 박혔기에 단장님께서 어떠한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잘못과 부정인 줄 알면서도 모든 것을 순종해 왔고 또 맹종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대외적으로 명목을 세우기 위해서도 무조건 단장님을 옹호해왔고 감싸왔던 것은 오직 그분만을 믿었고 또 그분이 아니면 우리들은 꼭 죽는 것으로만 생각했기에 단장님은 그것을 기화로 어리석은 우리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정년 통탄할 일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형식상 각 부서와 자치회를 구성해서 자기 혼자서 (운영권, 경제권, 지휘권)을 장악했으니 누구하나 이에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못한 것은 의리 하나만을 생각해서 오늘날까지 묵과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에 죄과를 뉘우치지 못 하고 계속 우리들을 기만 다른 방향으로만 걸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요구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루 속히 현 개간지를 국토화시켜 자립자족할 수 있는 터전이 되게끔 해달라는 요청인데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엉뚱한 사업을 한답시고 단 운영자금을 다른 곳으로 돌려 현지사정은 그야말로 비참한 생활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사실을 고백하자면
1. 정부당국에서 지원해주신 보조금이 어느 정도며 또 어떻게 사용된 것인지?
2. 외원당국에서 지원해주는 양곡은 얼마나 되며 또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3. 구호물자들은 어데서 나오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나오는지? 또 그것을 매각했다면 얼마나되는지? 등은 전연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려고 하지도 않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단장님을 믿었으면 그리했겠읍니까? 그런데 단장님은 그것을 선의로 생각지 않고, 바보들이니까, 하는 야비한 생각에서 역이용했던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입니다.
4. 민정식 단장님은 대외적으로 말할 때 언제나 자신의 사제가 기천만원 투입 되었다고 하나 그러한 사실은 10여 년 전부터 저희들이 모셔온 바 있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우리들이 건축장에 필요한 타이루 붙이는 작업 등을 해서 수입되는 것으로 단장님이 생계를 유지해온 사실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도 있고
5. 지금까지 정부당국과 외원당국에서 지원해준 보조금 외원양곡 등에 실제성과는 어느 정도인가?하는 것은 관계 당국에서 판단하실 줄 믿고
6. 대외적으로는 항상 당국에서 지원이 부족하며 많은 부채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것은 현찰을 줄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도 계획적으로 외상거래를 해서 고의로 부채를 만들어 놓았고
7. 당장 목전에 급한 농사문제를 시급 해결해서 완전자립을 서둘러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장님은 이에 등한시하고 모든 자금은 '너희들 때문에 교재비를 드렸다' 고 하지만 그 교재비가 어느 정도나 되며 어데다 썼는지? 조차 믿을 수 없고
8. 현재단원들은 생활 상태는 오히려 지난 날 악에 과호해서 생활할 때보다 더 형편없이 영양실조에 걸려있으니 부식이라곤 소금 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까요?
9. 주택은 지붕이 뚫어졌고 비가 새고 방은 흙 벽속에서 자는데도 이에 대책은 세우지 않고 있는 것은 자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10. 식량은 겨우 1일분 씩 구입해다 먹을 정도로 자금이 두절상황에 놓여있는 점은 부득이 나지 않습니다.

이상 몇 가지 사실을 드려 탄원하는 내용은 추호도 거짓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또 사직당국에서 내사 하신다면 완전한 사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바라온 건데 이 불우한 사람들의 갈길을 굽어 살펴 주십시오. 저희들의 갈길은 어데입니까? 저희들은 앞으로 어떡해 살아야 됩니까? 저희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과거는 험악했지만 그래도 양심이 있었기에 그 과오를 청산하고지금은 이렇게 보람 있게 살려고 발버둥치며 피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장님은 그런 것은 아랑곳없다는 듯 자기의 친자 민병철군 가족일행을 '파라과이'로 이민시키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어데 있으며 또 경제상으로 타격을 받기 때문에 운영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면서 무슨 돈이 있어서 해외로 보내는 것입니까. 이것이 부정 축재한 증거의 하나입니다.

12. 또한 단장님은 우리단원 전체를 이끌고 '파라과이'로 집단이민을 할 터이니 그리 알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하였는데 그리고 책자까지 인쇄하며 배부하는 등 그 행위는 지금까지 오년동안 아무런 실적이 오르지 못하고 모든 것이 실패만 되니까 결국은 최후적 기만 술책으로써 집단이민 계획을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도대체 믿을 수도 없거니와 만일의 그 방법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기경비가 적어도 일인당 족비만 20만 원 정도가 될 것인즉 차라리 그 많은 거액을 들여 외국에까지 가서 개간할 바에는 현개간지에서 더 투자해서 완정성과를 보는 것이 국가적으로 볼 때 얼마나 큰 이득입니까? 하물며 집단이민 자체가 되지도 않을 것을 누구보다 단장님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면서 행한다고 호언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들에게 감언이설로서 해놓고 자신도 친자와 내통하여 외피 하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13. 끝으로 하나의 신례를 든다면 지난 5월 30일박대통령 각하께서 임석한바 있는 장흥 난민 정착사업장의 농지분배식을 보더라도 그 얼마나 부러운 사실임니까? 장흥은 뚝을 새로 쌓은 간척사업이었고 우리는 쌓여있던 뚝 속의 간척지를 앞으로도 몇 년을 더 계속해야 할 지경이니 진정 책임자를 잘 만나야만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또한 단장님께서 농지개간에 전연 관심이 없었다는 산증거이기도 합니다. 관대하신 대통령님께서 저희들에게 보다 나은 사회생활의 올바른 개척자가 되도록 적극 선처해주신다면 저희들은 아무 사심 없이 오로지 본연의 목적 그대로 인간개조 생활에 한층 열을 가하여 아직도 사회에서 허덕이는 악의 무리들을 선도하는데 앞장서 정부시책에 적극 호응해서 보답하겠습니다.

1966년 6월
대한청소년개척단 서산자활정착사업장 탄원인 일동 올림

추가의 말씀

저희들이 감독기관이며 주무관청이 보사부인 고로 그곳을 무시할 수 없어 제 일차로 탄원서와 함께 진정을 했던 것이나 보사부에서는 단장인 민정식 씨의 비행사실을 인정은 하면서도 전부적이며 철저한 조사는 하지 않고 다만 형식적인 조사로서 단장직만을 9월 1일부로 해임조처 하는 것으로 안착시켰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민단장은 자기에게 부정이 하나도 없다고 자부하면서 단 운영 시에 정부 보조가 없었기 때문에 부채(600여만 원)를 줬으나 기부채를 보사부가 갚아달라는 억지를 쓰면서 심지어 인계인수서적에 날인을 거부하고 있으며 또한 책임자로서의 책임은 느끼지 못하고 이제 와서는 '너희들을 전부 죽인다' '단을 해체시킨다'는 등 공포 속으로 몰아놓고 또 지난날 자기 슬하에서 약간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 현지 경찰에다 고소를 하는 등 비굴한 추태까지 나타내며 보복적인 행동을 하고 있어 불안한 실정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으로 세부적이고도 철저한(장부 및 근거서류. 현지상황) 조사를 단행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애원하는 바입니다.

1. 1771명분의 외원,곡을 타서 실제인원 800명 분만 유지해온 점(1771명 외원, 곡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3개월에 700부터 800여 만 원인데 실제 투입된 액수는 1개월에 90만 원부터 120만 원이 최고 인 바 3개월간이면 평균 120만 원으로 계산해도 360만 원만 투자한 셈이고 보면 3400만 원은 사용처가 불명인 사실이고 (현인원에 일개월분은 150부터 180만 원이면 충분히 운영 유지됨)
2. 그래서 단원(남녀)들의 생활 상태는 걸인 이상이며 뼈다귀만 남고 심지어 소금국만 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님
3. 배급비료는 수십 차에 걸쳐 전부 매도처분해서 농지에는 하나주지 않았으며
4. 구호물자 미군 개통에서 원조 받은 세멘트 등 전부 매각 처분
5. 대구영천에 있는 하천개간지도 단명의로 시작해놓고 결국은 단장부인명의로 변경해놓은 점

기타 비슷한 사건이 부지기수임에도 불구하고 단장은 전부 운영자금으로 투입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장부상에는 전부가 허위 기재한 것 뿐이니 곧 철저한 조사를 해주셔야만 저희들 불우한 자들은 마음 놓고 정부시책 그대로 받드러 올바른 인간이 되어 잘 살겠습니다.

끝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종전 보사부에서 조사하던 식의 형식적이 된다면 저희들은 영구 의지할 곳 없는 몸이 되어 다시금 과거와 같이 악의 소굴로 다시 돌아가게 될 위기에 처해있사오니 이번 기회만은 사후정정에 이를 것을 눈물로서 남녀 800명이 호소하는 바입니다.

800명 대표 정용일 올림.

그리고, 2018년의 탄원서

<탄 원 서 >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저희들은 1961. 5. 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 정권에 의해서 강제로 '서산 개척단'이라는 단체에 속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 3구 지역에서 간척지 개척 사업에 참여한 후 위 지역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거나 거주하였던 자들입니다.

저희들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가침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격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과거 국가가 저희들에게 자행하였던 인권 유린, 강제 노역, 재산권 침해 등과 관련하여 평생에 한이 맺힌 사연을 달리 토로할 길이 없어 이와 같은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부디 저희들의 탄원을 외면하지 마시고 저희들의 사연에 귀를 열어주실 것을 간곡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

저희들은 1961. 5. 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 정부에 의해서 시행되었던 사회 정화라는 미명하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 즈음 영문도 모른 채 백주 대낮에 군인과 경찰들에게 납치를 당하여 '서산개척단'이라는 이름의 단체에 속한 채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 3구 지역에 있었던 '서산자활정착사업장'에서 과거 폐염전 등으로 사용되었던 황무지를 개간하는 사업에 동원되어 강제노역을 하였습니다.

당시 군사정부는 군인 및 경찰 등의 공권력과 깡패와 건달을 동원하여 저희들을 납치 한 후 반항을 하면 몽둥이로 무자비한 폭행을 행사하였고 도망을 가지 못하게 불법으로 감금한 채로 최소한의 주거환경이나 식량을 제공하지 않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일삼았습니다.

일부 서산개척단원들은 위와 같은 처사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기도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집단구타와 그로 인한 죽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집단 폭행과 강제 노역으로 죽어간 동료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았고, 저희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묵묵히 강제 노역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으며, 오직 생존을 위해 버티면서 곡괭이로 땅을 파서 손수 집터를 닦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또한 국가는 1961년경부터 1963년경까지 '취직을 시켜준다'고 하면서 여성들을 납치하여 서산개척단원들과 여성들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255쌍을 강제로 결혼을 하게 하는 등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였습니다.

국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산개척단원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를 무마시키고자 단원 1인당 간척치 1정보(약 3,000평)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말을 하여 저희들은 '땅을 가질 수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군사정부는 정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던 1966년경 정부 지원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서산 개척단은 해체되었습니다. 꽃다운 청춘의 시간 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 단 한 푼의 노임도 받지 못한 저희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어 당시 서산군청, 보건사회부 등을 방문하여 임금 지급 및 간척지 분배를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1968년 서산 간척지에 대한 토지분배계획, 즉 <서산자활정착사업장 농지 및 주택가분배 계획>을 수립하고 '세대당 1정보(3,000평)를 무상으로 가분배 하기로 확정하였고, 저희들은 그때 가분배 받은 토지가 '내 땅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1980년대 간척지에서 비로소 벼농사가 가능하게 됐을 때까지 간척지 개간사업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들어간 모든 경작비용은 저희들이 전부 부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1975년경 이후 저희들에게 그 어떠한 통지 또는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저희들이 피땀흘려 개간한 토지를 쥐도 새도 모르게 국유지로 몰수하였고 저희들은 국유지 몰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직 간척지 개간사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국가에 의한 국유지 몰수 소식은 저희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고 국가는 저희들의 항변을 전혀 듣지 않았고, 오히려 저희들에게 간척지 무단점유를 이유로 임대료를 부과하거나 시세보다 비싸게 20년 상환방식의 국유지 매입 등을 권유하는 등 저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 등을 제시하여 저희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습니다.

국가의 위와 같은 조치들은 오직 '내 땅을 가질 수 있다'라는 국가의 약속을 믿고 온갖 억압과 학대를 견디면서 단 한 푼의 노임도 받지 않고 약 20년 동안 폐염전에 불과한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한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이후 저희들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한 토지무상분배소송을 수차례 하였지만 가분배 단계이후 정식분배를 위한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

국가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헌법에 규정대로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보호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정의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국가는 지난 57년 동안 저희들에게 위에서 제시한 국가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첫째, 국가는 군사정권하에서 깡패와 건달 등 온갖 시정잡배 등을 동원하여 무고한 국민들을 납치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강제 노역에 임하게 하고, 저희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혼을 강제로 시키는 등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박탈하고 이를 수수방관하였습니다.

둘째, 국가는 저희들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동안에 저희를 보호하거나 구출해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서산개척단'을 사회 정화 작업 또는 국가 재건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홍보하는 등 자국의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지 않고 정권 홍보의 도구로 저희들을 이용하였습니다.

셋째, 국가는 저희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대가 없이 일군 간척지를 아무도 모르게 강탈하였습니다. 국가는 저희들이 피와 땀으로 개간해 온 황무지보다 더 못한 폐염전과 같은 토지를 수십년에 걸쳐 개간했음에도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간척지를 불로소득하였음에도 저희들에게 토지분배 또는 아무런 보상을 해주고 있지 않는 등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넷째, 저희들이 지난 57년 동안 당해왔던 모든 부당한 대우는 모든 인간 관계속에서 통용되는 정의 관념에 합치되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억울한 사실은 객관적으로 분명한 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국가에게 국민을 사사로이 이용하고 도구로 사용하는 권한을 주었습니까? 그러한 권한이 없음에도 저희들이 당한 인권유린 등으로 처벌받은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도대체 어디에 대고 이러한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해야 하는지요? 이것이 그 동안의 정권이 외치던 정의의 실현인지요?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서산개척단 운영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절한 토지분배 및 보상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지금까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을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

국가는 저희들에게 가분배 단계이후 정식분배를 위한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은 점, 가분배 이후 시간이 너무 흘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면서 저희들의 청구를 외면해왔습니다. 도대체 국민에 대한 국가의 불법행위에 소멸시효가 어디 있습니까? 은밀히 국가 소유로 토지를 몰수 하고서 시행령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정말 저희들 잘못입니까?

국가는 권위주의 통치시대에 위법·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크나큰 시련과  겪었던 저희와 같은 사람들에게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공적으로 사죄를 구하고, 저희들이 감수해야 했던 인격적 불명예를 뒤늦게나마 복원시키는 의미에서라도 서산간척단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에 따른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저희들의 이와 같은 간절한 소망을 귀담아 여겨 조속히 저희들의 평생의 소원이 풀릴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실 것을 탄원합니다.

2018. 1.
탄원인 정영철 외 10명


태그:#서산개척단,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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