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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서문부터 꼬박 읽는다. 그러고보면 이제까지 서문을 건너 뛴 적이 없었다. 대개의 독서법 관련 책들은, 서문까지 볼 필요는 없고, 책도 한 권만 종내 붙들고 있지 마라고 하더라만. 나는 어쩐지 서문을 안 보면 불안해서 이후에도 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일단 한 권을 쥐었으면 그걸 다 끝내기 전까지는 다른 책을 못 본다.

그렇다고 몰입을 잘 하는 편도 못 된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 내용보다는 페이지 넘기는 속도에 더 몰두할 때가 많다. 저 마지막 장을 넘길 때에야 비로소 숙제를 마친 것마냥 만족감이 밀려온다. 독서 습관도, 근육도 좀처럼 발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책 읽을 때마다 더디고 서투르다.

자연히 책에 관해서도 자세가 대체로 수동적이다. 즐거움은 없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서점과 도서관을 찾는다. 책 고르는 것도 권위자의 추천에 의존한다. 이건 꼭 읽어야 한다는 책 위주로 살피고 고르고 따진다. 다 읽어도 후회가 안 남을 책을 심사숙고해서 정한다. 책 한 권 보려면 에너지나 시간이 퍽이나 많이 드니까 나로서는 계산이 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번 시즌 도서가 정해지면 거의 노동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여 독서를 마치려고 애를 쓴다.

이런 나의 독서 인생에 중대한 전환이 찾아든 것은 재작년 봄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에 갔다가 우연히 들른 최명희 문학관에서 뭔가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됐다. 작가 최명희. 그가 썼다는 <혼불>과의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도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부모님의 직장 이전으로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전북 남원에 적을 두게 되었다. 학교는 옮기기 어려워서 계속 광주에서 나름의 유학 생활을 해야 했다. 부모님 계시는 집은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근에는 <혼불> 문학관이 있었다. 한 번도 가 보지는 못했다. 그저 지나칠 때마다 표지판을 보면서 무슨 유명한 소설인가보다 하고 혼자 생각만 했다. 그렇게 최명희 작가를 알고 있었다.

재작년 최명희 문학관에 들렀던 것이 하나의 중대한 계기였다.
 재작년 최명희 문학관에 들렀던 것이 하나의 중대한 계기였다.
ⓒ 최명희문학관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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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야.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 나가는 것이다."

문학관 한 편에 적혀 있던 이 글귀에 못이 박힌듯 제자리에 서서 잠시 멍하니 한 문장 한 문장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필력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펜으로 글을 쓸 뿐인데 그 안에 힘이 담겼다는 건 웬 말인가 했는데, 여기서 만난 몇 줄의 글에서는 그 힘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걸 느꼈다. 이제는 내친 김에 몇 줄을 더 보고자 문학관 곳곳에 있는 글귀들을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의 탐심에 가까웠다. 아니, 내가 찾는 게 아니고 글이 제 힘으로 누구든 잡아당기고 있었다. 

"말에는 정령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저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에 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 그것은 항상 매혹과 고통으로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오고 있는 소설 <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삼고 싶었습니다."

그래, 이 글을 쓴 사람은 지금 주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리고 어쩌면 나는 지금 서서히 그 주술에 걸려드는 중일 테고. 말에는 정령이 붙어 있고, 그 말이 결국에는 씨가 된다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뿌리는 씨라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내 이제껏 작은 텃밭이라고 가지고 있던 게 자갈이 무성하고 제때 잘 갈지도 않아서 뭐든 심었다 하면 싹이 제대로 나지도 않고 열매는커녕 꽃 한 송이도 별로 기대하지 못했는데, 이번만큼은 저 <혼불>의 씨앗을 잘 받아서 심어 보리라 마음속 다짐을 하게 되었다.

작가 최명희는 원고지 칸마다 자신을 덜어 넣는 것 같다고 했다.
 작가 최명희는 원고지 칸마다 자신을 덜어 넣는 것 같다고 했다.
ⓒ 최명희 문학관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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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야심차게 1권 첫 장을 넘겼다. 물론 다른 책에는 관심 두지 않기로 하고, 정독에 완독을 목표로 삼았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장장 10권의 대하소설 첫 페이지 첫 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이 소설 전체를 이루는 밑바탕의 정서라는 것은 물론, 나의 <혼불> 독서 여정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전조라는 것을 이 때까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맑고 화창한 날은 없었다. 이야기의 줄기와 마디에서도 좀처럼 갠 하늘은 발견하지 못했고, 독서 여정은 더 궂고 험난했다. 1권을 다 읽는 것도 겨우 가까스로 힘에 부쳤다. 이렇게 해서야 10권까지 어떻게 다 읽나 앞이 캄캄했다. 곳곳에서 맞바람이 불어 닥쳤다. 1권만 하더라도 그렇다. 초반에 나오는 강모와 효원의 혼례 장면에서부터 암담한 벽이 독서 진행을 무겁게 가로막았다. 난감하게 잘 읽히지 않는 각종 혼례 절차와 신부의 예복 및 치장 묘사는 예상보다 훨씬 길고 지루했다. 서사는 마치 길을 잃은 듯 사라지고 풍경과 민속 설명은 구구절절 정교하고 세밀해서 피곤할 지경이었다.

꾸역꾸역 그래도 5권까지는 읽었다. 한 달이 족히 걸렸다. 가다 서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읽었는데 하던 일이 바빠지면서 그마저도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집중해서 읽기가 어려운 책이었다. 진득하게 책상에 앉아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 장 한 장 넘길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도 5권까지 읽은 것만이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다 전주에 가서 봤던 몇 줄 글귀 때문이라고 옛 일을 추억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혼불>은 잊혔다. 작가 최명희도 기억에서 잠시 사라지는 듯했다. 

과연 정령이라도 붙어 있는 걸까. 1년이 지나고 <혼불>이 다시 손 안으로 들어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맨 먼저 다시 생각난 것이 <혼불>이었다는 게 자못 신기하다. 이번에는 문학관에서 봤던 글귀 때문이 아니라, 1년 전 그렇게 꾸역꾸역 읽어 나갔던 5권까지의 이야기 마디마디가 어쩐지 머릿속을 감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한 줄 한 줄 낮은 포복으로 기어 가듯이 읽다가 무릎을 탁 치는 대목을 만난 때가 적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10권까지는 한 번 다 읽어보자. 

다시 한 달이 걸려 10권까지 다 읽었다. "그 온몸에서 눈물이 차오른다." <혼불>의 마지막 문장이다. 어쩌면 내 심정도 그랬을지 모른다. 1년을 건너 뛰면서 대하소설을 완독한 감격 때문만은 아니다. 왠지 모르게 먹먹하고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계속 음미하게 되는 이 기분은, 아무래도 이 <혼불> 때문인 것 같다.

1년 전에 전주 최명희 문학관에 들렀을 때 그 어떤 주술적 힘에 이끌려 책을 손에 쥐었다면, 이제는 그 안에 있던 문장들 하나 하나가 씨앗으로 심겨져 지금 이렇게 꿈틀거리는 생명력으로 벅차게 차오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읽을 때는, 필사도 병행하면서 곱씹어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필사도 병행하면서 곱씹어 읽었다
ⓒ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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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길로 <혼불>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애인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 기회가 닿는 대로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과 추천을 해댔다. 대부분에게 <혼불>은 낯선 소설이었다. 그런데 평소 '책 읽는 자'가 아니었던 사람이 난데 없이 흥분하면서 책 추천을 하니까 한편 당황하면서도 한편 더 궁금해지는 것이어서 급기야 하나둘 1권을 집어들더니 마침내 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도 한때의 나처럼 5권을 채 넘기기 버거워했다. 그래도 종횡무진. 이번에는 책 읽는 모임도 추진해서 바야흐로 주변에 <혼불>의 바람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서른 다섯 해를 살면서 대하소설은 한 번도 완독해 본 적 없었는데, 1년 걸려 어렵사리 <혼불> 전 권 1독을 하고, 완독 후에 전도사 생활로 접어든 뒤에 2독을 하고, 장차 또 몇 독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대로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잘 알게 된 것은, 나의 독서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선 것 같다는 것이다. 이제는 손에 책이 들리는 것이 거추장스럽지 않다. 여전히 서문을 꼬박 읽고 한 번에 여러 권을 넘나들며 읽는 것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책 읽는 것의 즐거움을 서서히 체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책 이야기는 하나도 못 했다. 그건 차차 하면 되겠지. 대신 <혼불>이 나에게 끼친 변화에 대해서 이렇게라도 기록을 해 둠으로써, '일필휘지를 믿지 않고, 원고지 칸마다 자신을 덜어 넣듯이', 그렇게 글 한 자 한 자를 온 생애를 기울여 파 나갔던 최명희 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한 편이나마 전해야 할 것 같다.

그 고마움의 이유가 어디 내 독서 습관 좋아진 것뿐이랴. 우리말, 우리네 혼과 정, 이야기가 지닌 힘과 정신이 오롯하고 또렷하게 전해진 시절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알알이 가득 차 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뿌린 그 말의 씨앗이 제 작은 텃밭에도 고이 심겨졌습니다. 싹도 조그맣게 내민 것 같고요. 얼마간 지나면 꽃도 피지 않을까 싶네요."    

지난 달 드디어 남원 혼불 문학관을 찾았다. 17년 전 인연이 이제야 닿았다.
 지난 달 드디어 남원 혼불 문학관을 찾았다. 17년 전 인연이 이제야 닿았다.
ⓒ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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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정신의 지문을 <혼불>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우리네 정신의 지문을 <혼불>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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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세트 - 전10권

최명희 지음, 매안(2009)


태그:#최명희, #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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