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도 이제 글로벌 시대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외국인을 접하는 게 낯설지 않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많은 인기종목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외국인 코치와 스카우트들의 비중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령탑에 대한 문호 개방은 활발한 편이 아니다. 아시아의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 등과 비교해도 한국 프로스포츠는 아직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경우가 드물다.

K리그 초대 외국인 감독 프랭크 엥겔

한국스포츠에서 외국인 감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축구부터였다. 1990년 대우 로얄스(현 부산)이 독일 출신의 프랭크 엥겔 감독을 영입하며 물꼬를 텄다. 당시만 해도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의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져있던 시기에 엥겔 감독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선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외국인 감독으로서 국내 프로무대에서 최초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도 축구에서 나왔다. 엥겔 감독의 뒤를 이어 대우의 지휘봉을 잡았던 헝가리 출신 베르탈란 비츠케이 감독은 대우를 1991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포항의 K리그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브라질 출신의 세르히오 파리아스 감독, FC 서울의 우승을 이끈 포르투갈 출신의 넬로 빙가다 감독 등이 외국인 감독의 성공신화를 이었다.

이밖에도 유공(현 제주)의 돌풍을 이끌었던 발레리 니폼니쉬(러시아), 서울을 이끌었던 세뇰 귀네슈(터키)같은 감독들이 있다. 이들은 비록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재임기간 중 과감하게 선수를 발굴하고 선진적인 축구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에 깊은 인상을 남겨 좋은 지도자로 평가 받고 있다. 이들은 훗날 한국 축구의 대표급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축구는 프로의 영향을 받아 대표팀에서도 가장 먼저 외국인 감독에게 문호를 개방한 종목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해던 독일 출신의 고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 애틀랜타 올림픽을 이끌었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에 이어,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라는 족적을 남기며 한국축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한 페이지를 열었다.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8월부터 지휘봉을 잡아 비록 성적부진으로 중도에 경질되었음에도 역대 한국 대표팀 최장수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 K리그 구단들의 재정 악화와 투자 감소로 인하여 비용이 많이 드는 거물급 외국인 감독 영입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2016년 초 K리그 챌린지 이랜드를 이끌던 마틴 레니(영국) 감독이 경질되며 한동안 프로축구 무대에서 외국인 감독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듯했으나, 지난해 중반 대구 FC가 브라질 출신의 안드레 산토스 감독을 임명하면서 2부리그 챌린지까지 통틀어 유일한 외국인 감독의 계보를 잇게 됐다.

안드레 감독은 2000년대 초반 FC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에서 활약하며 도움왕까지 수상한 경력이 있을 만큼 K리그 팬들에게는 친숙하다. 브라질에서 은퇴 이후에는 2015년부터 대구의 코치로 활동하며 다시 K리그와 인연을 이어갔으며 전임 손현준 감독의 사퇴로 감독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에 임명됐다. 이로써 안드레 감독은 역사상 최고로 K리그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수가 감독까지 오른 사례가 됐다.

로이스터부터 트레이 힐만까지, 다사다난했던 KBO 외국인 감독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준비하고 있는 트레이 힐만 감독.

트레이 힐만 감독은 오는 2018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만료된다. ⓒ SK 와이번스


축구에 비하면 다른 종목은 외국인 감독을 찾아보기가 더욱 쉽지 않다. 프로야구의 경우, 외국인이 감독이 된 것은 역대 총 4명이 있었다. 공식적인 최초의 외국인 감독은 도위창이라는 한국명으로 친숙한 도이 쇼스케 전 롯데 코치다. 하지만 그는 1990년 후반기 임시 감독대행으로 잠시 롯데를 맡은 것을 제외하면 지도자 경력 내내 주로 코치로서 활약했다.

순수 외국인으로서 KBO 정식 1군 감독에 오른 최초의 인물은 2007년 미국 출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다. 당시 암흑기를 보내던 롯데의 지휘봉을 잡자마자 로이스터 감독은 3년 연속 가을야구를 이끌며 부산의 야구열기를 중흥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비록 단기전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노피어'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야구, 선수단-팬들과의 유연한 소통으로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내며 한국을 떠난 지 7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롯데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보수적인 한국야구계에서 최초로 외국인 감독도 성공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게 가장 큰 의미다.

2014년 두산의 송일수 감독은 재일교포 출신(일본명 이시아먀 가즈히데)으로 국적으로서는 엄연히 일본 국적을 지닌 외국인 감독이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1년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그다지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그리고 SK가 지난 2016년 겨울 트레이 힐만 감독을 영입하며 로이스터 이후 7년 만에 미국인 감독의 계보를 이었다. 힐만 감독이 이끄는 SK는 에이스 김광현의 부상공백과 초반 부진을 딛고 5강 진출을 일궈내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로이스터가 KBO 최초의 흑인 감독이라면 힐만은 최초의 백인 감독이다. 힐만 감독은 특이하게도 일본 NPB 니혼햄과 미국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의 감독직을 역임하며 세계 최초로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모두 1군 감독을 맡는 기록을 세웠다. 빅리그에서는 비록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니혼햄 시절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을 이끄는 등 아시아야구에 검증된 경력과 전술적 유연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도 경쟁해야 한다

프로농구는 지금까지 외국인 감독이 기용된 사례는 한 번뿐이다. 남자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가 2005년 미국 출신의 제이 험프리스 감독을 영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NBA 선수 경력을 자랑하는 험프리스 감독은 전자랜드를 맡기 전 원주 동부에서 코치를 역임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정작 전자랜드 사령탑으로서 소통과 선수단 장악능력에 문제점을 드러내며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 당했다.

험프리스가 사령탑을 맡은 기간 동안 전자랜드는 20경기에서 3승 17패(승률 .150)에 그쳤다. 이 기록은 공교롭게도 3년 뒤 같은 전자랜드의 박종천 감독(1승 11패)에게 경신되기까지 국내 최단명 감독 기록으로도 남았다. 이후 국내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코치는 있어도 감독으로 기용되는 사례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배구에서는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이 2010년 일본 출신의 반다이라 마모루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한 바 있다. 반다이라 대행은 2시즌 동안 14승 21패(포스트시즌 7승 4패)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준우승)까지 끌어올리며 나름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시즌이 끝나고 아들의 건강 문제로 인하여 자진사퇴했다.

스포츠는 세계적으로 국적과 문화의 벽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 스포츠도 외국인 선수뿐만 아니라 능력과 색깔이 뚜렷한 우수한 외국인 지도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도 경쟁해야 한다. '비용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외국인 지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제 국내 지도자들의 실력도 떨어지지 않는데 굳이 외국인 지도자는 필요 없다'는 논리는 결국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는 발상일 뿐이다. 스포츠계의 국제적 흐름을 따라잡고 위해서라도 다양한 스타일의 리더십과 경험을 갖춘 외국인 지도자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기존에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지도자들의 역할과 성과가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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