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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서태지 '교실이데아' 가사 中

탈노숙 지원주택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몇몇 신문사에 전화를 했다. 관련 자료를 메일로 보내달라기에, 자료를 보냈으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답답했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이야기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연재 기사가 시작됐다.

토크콘서트를 준비하게 된 이유도 같았다. 지원주택에 사는 사람이 지원주택의 필요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입주민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자!

 함께 모여서 토크콘서트를 준비하는 출연자들.
 함께 모여서 토크콘서트를 준비하는 출연자들.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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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단순했지만,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총 연출과 1인극, 토크까지 3역을 맡은 김완규 님은 술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니던 청소 일을 그만뒀다. 십여 년 만에 준비하는 공연이었다. 토크에 참여하기로 했던 안나(가명) 님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했다. 결국 무대에 직접 오르는 걸 포기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행히, 김완규 님은 행사 몇 주 전부터 다시 술을 끊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안나 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해줄 사람을 찾았다. 지금의 직장을 다니기 전, 카페에서 일을 하며 우연히 봤던 연극에서 담담하게 나레이션을 하던 배우가 생각났다.

지혜 씨였다. 스무 살이 갓 넘은 지혜 씨는 안나 님과 몇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함께 대본을 준비했다. 지원주택의 이웃 주민인 봄날밴드 멤버들도 토크콘서트에 함께 하기로 했다. 마침내 12월 8일, 명동의 한 소극장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2017 길리언 토크콘서트 - 김완규 1인극 '술과 장미의 나날'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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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주택 행복하우스의 입주민 김완규 님은 지금 청소 일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연극배우이자 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공연기획자였다. 십 년만에 그가 직접 쓴 극의 제목은 '술과 장미의 나날'이다. 좁은 단칸방에서 술을 마시며 무너지던 자신의 자화상을 담았다.

'장기자랑이라 생각하고 봐달라던' 그이지만, 무대에 선 모습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 무대를 마치는 그의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 땀이 뒤섞여 있었다.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무대가 끝나자, 눈물을 닦아내는 관객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울림은 또 다른 울림을 낳는다. 이날 연극을 본 한 화백은 마음에 남은 김완규 님의 얼굴을 캐리커쳐로 담아냈다. 한 시인은 자신이 느낀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

 김완규 님의 연극을 보고 그린 캐리커쳐.
 김완규 님의 연극을 보고 그린 캐리커쳐.
ⓒ 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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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계단 아래에서 / 조수형

네모난 방안에서 둥그런 세상을 
새처럼 굽어보며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혹은 
토요일인지 모를 
바깥을 그려본다  

날지 않으리라
날려고 하지 않으리라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나, 걸어가리라 
걸어 본 적 너무 오래라
좀 비틀거릴지라도
그저 당당히

 2017 길리언 토크콘서트 - 봄날밴드 '꿈'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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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밴드는 5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홈리스 밴드이다. 보컬 이동진 씨와 베이스 서명진 씨, 드럼 구영훈 씨는 과거에 거리노숙생활을 했다. 지금은 임대주택과 지원주택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드림트리'라는 사회적기업의 지원을 받아 악기연습을 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담아 직접 작사를 하기도 한다. 이날 부른 '활보'라는 곡은 노숙생활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가수 하림 씨가 작곡했다.

 2017 길리언 토크콘서트 - 봄날밴드 '활보'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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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곡은 지원주택 입주민인 드러머 구영훈 씨가 작사했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담았다. 영훈 씨는 IMF 전까지 공장을 운영했다. IMF 이후 아내와 떨어져 지내며 택배 일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술로 아픔을 달래던 영훈 씨는 봄날밴드 활동을 하고 지원주택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이날 영훈 씨는 곡 소개를 하며 자신의 아픔을 드러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를 따라가고 싶어 술을 마셨다는 영훈 씨. '널 따라서 가기 싫어. 새출발해서 좋은 모습 보여줄게. 하늘나라에서 잘 살아라'라고 말하는 그에서 새로운 삶을 향한 용기가 느껴졌다.

 자신이 작사한 곡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영훈 님.
 자신이 작사한 곡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영훈 님.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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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토크에서는 지원주택에 들어오기 전, 후의 달라진 삶에 대해 나눴다. '입주민이 스스로 말한다'는 토크콘서트 취지에 맞게 이야기 내용을 가능한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연극무대를 펼치는 김완규 님.
 연극무대를 펼치는 김완규 님.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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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간단하게 개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명진: "봄날밴드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현직 빅이슈 판매원이고요. 서명진이라고 합니다. 지원주택 행복하우스에 살고 있습니다."

김완규: "저는 청소미화원을 하고 있고요. 지금 행복하우스에 입주해 있습니다. 김완규라고 합니다."

유지혜: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로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난 가을, 탈노숙 자립을 돕는 카페에서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만난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다들 너무 멋있으시잖아요. 그런데 과거의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김완규: "저는 물리치료과를 나왔는데 물리치료사를 안 하고, 13년 정도 영화 조감독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30살 때 기업체 친절서비스교육을 하게 됐습니다. 국내 친절서비스 강사 1세대쯤 될 겁니다. 지방에 비행기 타고 내려가서 교육을 하고 올라오고.

강의가 재밌어서 소문이 나다보니 S그룹 이런 큰 기업체에서도 강의를 하고 그랬습니다. 44살까지 그렇게 하다가 저희 집안에 다툼이 있어서 이리저리 쫓겨 다녔습니다. 그때부터 한 10년 이상을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고 또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저에게 알코올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뒤 10년을 크게 구분지어서 말씀드리면 3년은 술을 마시고 3년은 술을 깨고 한 4년 정도는 청소하다 그만두고, 청소하다 그만두고 했습니다. 국내 청소업종의 30개 이상은 했을 겁니다.

수술실 청소까지 했으니까요. 병원에 수술실이 70개 정도 되는데, 한 번은 방을 잘못 찾아들어서 수술하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환자는 이러고 누워있고 의사 선생님이 노려보던 게 생생한데.. (웃음) 하여튼 여러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술을 먹고 잘리니까 계속 다른 데로 이동하고 그랬죠. 저는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사회자: "굉장히 재주가 많으신 분이시네요. 아까 1부 연극에서 정말 술을 실감나게 드시는 게, 술을 전혀 못 먹는 저도 옆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김완규: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웃음)"

사회자: "우리 서명진 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서명진: "김완규 선생님이 알코올 문제로 고통을 받으셨다면, 저는 대인기피증이 아주 깊었던 사람이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사시나무 떨듯이 해서 아주 힘들었습니다.

저는 부모님하고 서점을 경영했는데요. 그 삶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을 하다가 제 실수로 살림을 말아먹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대인기피증이 아주 깊어져서 노숙의 길로 접어들었죠. 강남터미널에서 3년을 살았거든요. 그렇게 살면서 '내가 이렇게 끝날 수 있구나, 진짜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없어질 수 있구나'라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거리 봉사를 나오시던 분들이 제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렇게 다니게 된 교회에서 악기를 한 가지씩은 다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베이스가 가장 코드도 쉽고 배우기 쉬운 악기인 것 같아서 선택했고요. 전문가 분이 들으시면 아주 싸가지 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요. (웃음) 그렇게 멋도 모르고 처음 악기를 시작했고, 그 길이 제 인생의 길이 된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사회자 : "그러시군요. 명진 씨 처음 만났을 때 눈을 못 마주치더라고요. 처음엔 착각했어요. 제가 너무 이쁘구나, 그게 아니더라고요. 눈을 못 마주치고 다가오지 못했어요. 진짜 많이 변하셨군요."

 토크콘서트에서 공연을 하는 봄날밴드. 베이스기타를 치는 서명진 씨(왼쪽).
 토크콘서트에서 공연을 하는 봄날밴드. 베이스기타를 치는 서명진 씨(왼쪽).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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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지금 지원주택이라는 말이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원주택이 쉼터나 임대주택하고 다른 점은 혼자 독립세대로 살아가긴 해요. 그렇지만 일상생활을 할 때 어려움을 겪으면 옆에서 도와주는 분이 계시는... 그래서 조금 더 사회에 자립해서 나갈 수 있는 제도가 지원주택이에요.

김완규님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지원주택 행복하우스에 들어오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으셨는지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완규: 세 가지로 요약해봤습니다. 먼저, 너무 쾌적한 환경에서 살게 됐고요. 두 번째로 여기 와서 본격적인 알코올 치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일하고 술 마시고, 이게 습관이 되다보니 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거든요.

전국의 쉼터를 떠돌아 다니다 보니까 술은 끊었는데 약을 못 끊어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고요. 그래서 치료받고 약 먹고 하는 거를 피했죠. 청소를 하려면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움직이니 약을 먹으면 일을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지금은 의사선생님하고 면담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데 어려울 줄 알았더니, 또 괜찮더라고요. 지금 저한테는 이게 내 의지로 될 일이 아니구나, 그걸 인정하고 약을 복용하는 게 우선이죠. 여기 와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그걸 권유하셨고요. 저한테는 큰 행운입니다.

세 번째는 행복하우스에서 지원을 해줘서 문화센터에서 기타를 배우게 됐어요. 아까 기타치신 분이 저희 문화센터 선생님입니다. 행복하우스에서 최초 등록을 안 해주셨으면 기타 배울 계기가 안 됐겠죠. 기타는 매주 꾸준히 배우러 갔습니다. 이 세 가지 행운이 지원주택 행복하우스에 와서 얻은 것입니다."

 찬조공연으로 함께 한 기타리스트 정명호 씨. 김완규 님의 기타선생님이다.
 찬조공연으로 함께 한 기타리스트 정명호 씨. 김완규 님의 기타선생님이다.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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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명진 씨도 똑같은 질문입니다."

서명진: "행복하우스에 오게 돼서 가장 좋은 건, 저는 여태껏 누구한테서 카운셀링이나 이렇게 생활을 해야 된다는 그런 조언 자체를 들어본 경험이 없거든요.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관심 자체를 거부했어요.

그런 제게 사회복지사님이 직접 오셔서 걱정을 해주시고, 다른 이웃 분들과 음식도 같이 나눠 먹을 수 있어서 저에게는 너무 큰 기쁨이었고요. 저희 행복하우스 같은 곳이 많이 늘어나 어려운 분들이 같이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제가 몇 년을 보면서 두 분의 얼굴이 점점 좋아지는 반면 우리 사회복지사님은 점점 말라가시더라고요. (웃음) 어쨌든 너무 보기 좋고요. 감사합니다. 두 분 옆에 모신 분은 특별한 분이신데요. 아까 배우라고 소개를 했잖아요. 저기 현수막에 있는 그림의 '그녀'(안나 님). '그녀'의 삶을 우리 지혜 씨가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17 길리언 토크콘서트 - '그녀의 이야기'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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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 "감사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주시고, 또 짧게나마 지원주택에 계신 분들과 함께 했던 지혜 씨는 어떤 걸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유지혜: "저는 사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야기하는 게 실례가 될까봐 걱정되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저랑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길을 지나면서도, 다른 세상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녀'와도 이 토크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만남을 많이 가졌고, 김완규 선생님께 대본 리딩하는 법도 많이 배웠어요.

'나랑 진짜 똑같은데, 나랑 같은 일에 기뻐하고 같은 일에 슬퍼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감히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구나' 너무 죄송스런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함께 준비하면서 너무 감사했어요. 함께하게 됐는데, 오히려 제가 더 용기를 얻은 것 같아요. 지금도 너무 행복하고 준비하는 시간들이 행복했어요."

사회자: "오늘 지원주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과 비교했을 때는 어떠신 것 같아요?"

유지혜: "저는 연극을 하니까 월급을 받아요. 다행히도 월급을 받는데, 월급으로 40만 원을 받거든요. 그런데 저는 월세예요 또. 서울에 혼자 올라와서 월세가 35만 원이에요. 그러면 진짜 힘들거든요. 그래서 이 행복하우스를 보면서 아... 확대되어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저 말고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분들에게 확대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자: "소감과 본인의 희망까지 다 말씀해주셨어요. 지금 우리가 예전 얘기,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간단하게 들었습니다. '지금'은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 때문에, 지금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도 두 분께만 짧게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완규: "이게 술의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는 술을 끊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제일 큰 문제고요. 그 다음에는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시집이든 글이든 써서 책도 만들어보고 싶고 본격적인 창작 공부를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명진: "제 희망은 행복하우스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미래가 더 확실하게 열릴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아내와 가정을 꾸미는 것이고요. 그걸 통해서 행복하우스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희 봄날밴드가 행복하우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사회의 아주 어려운 이웃들, 희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회자: "우리 함께 해주신 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새로운 꿈을 향해서 나아가시고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공연은 모두 끝났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거리에는 과거의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아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또 다른, 수많은 나를 돕고 싶다'는 안나 님의 말처럼, 우리는 거리에 있는 수많은 내가 지원주택에 들어올 때까지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강민수 종민협 간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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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종민협) 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