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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22화: 안동김씨 세도가 김유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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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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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세도정치 안동김씨, 조선의 메디치 가문?

한양 장동의 안동김씨는 세도정치 60년의 서막을 열고 조선왕조를 망국으로 이끈 가문이었지만 영·정조 시절만해도 서양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몽와 김창집은 청나라를 오고 가면서 서양의 서책과 문화를 수입했다. 노가재 김창업은 겸재 정선을 물질적으로 후원하며 진경산수화의 시대를 이끌었다. 농암 김창협은 자신의 딸인 김운을 여자 선비로 대우하고 성리학을 가르치며 자신의 학문을 전수했다.

효효재 김용겸과 미호 김원행은 홍대용과 박지원을 지원하며 경세치용의 선진학문인 북학파 스승이 되었고, 청음 김상헌 선생의 종손 김건순은 천주교를 믿다가 순교 하는 등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선 사상과 학문에 심취하며 상당히 세련되고 진보적인 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가문의 위상은 개혁 군주인 정조를 감명시켜서, 안동김문의 엘리트 김조순에게 차기 국왕인 순조의 보도(輔導)를 위임하였던 것이다.

정조 임금의 바람대로 비교적 근실하게 국정을 이끌었던 김조순이었지만, 그의 아들인 김유근과 김좌근 대에 와서는 권력을 독점하며 수구세력으로 돌변하였다.

황산 김유근은 추사 김정희와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절친이었다. 예술가적 기질이 풍부하여, 청나라 골동품을 사랑했고 서화가로써의 재능도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협상과 조정의 능력이 뛰어났던 아버지 김조순과 달리,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탓에 정치가로서의 자질은 부족했다. 또 김조순은 청렴결백한 청백리였지만, 김유근은 고동서화를 좋아해 사치를 즐겼다.

김조순 사망후, 김유근은 안동김씨 세도를 물려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풍에 걸려 말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를 틈타 효명세자의 장인이자, 헌종 임금의 외조부인 풍은부원군 조만영 일파가 안동김씨를 몰아내면서 정권을 장악해 나갔다.

 사진설명: 보물(寶物) 1685-1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自讚), 글은 황산 김유근이 지었고, 글씨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이 썼다. '묵소거사(默笑居士: 중풍에 걸려 말을 못하는 김유근 본인을 지칭)'에 맞춰 지은 상징적인 어구로, '침묵을 지켜야 할 때는 그 때에 맞게, 또한 웃어야 할 때는 웃어야 할 때에 맞게' 라는 구절을 시작으로 삶의 깨달음을 풀어놓은 듯한 내용으로 전개하였다. 한편 작품을 감싼 장황 주변에 찍힌 엽전 모양의 둥근 인장들은 황산 김유근(金?根, 1785-1840)의 것으로, 이 <묵소거사 자찬>이 김유근과 관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중하게 정성을 담아 쓴 듯한 이 글씨는 글씨형이 세장(細長)하며, 날카롭고 변화가 큰 필획을 구사하였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설명: 보물(寶物) 1685-1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自讚), 글은 황산 김유근이 지었고, 글씨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이 썼다. '묵소거사(默笑居士: 중풍에 걸려 말을 못하는 김유근 본인을 지칭)'에 맞춰 지은 상징적인 어구로, '침묵을 지켜야 할 때는 그 때에 맞게, 또한 웃어야 할 때는 웃어야 할 때에 맞게' 라는 구절을 시작으로 삶의 깨달음을 풀어놓은 듯한 내용으로 전개하였다. 한편 작품을 감싼 장황 주변에 찍힌 엽전 모양의 둥근 인장들은 황산 김유근(金?根, 1785-1840)의 것으로, 이 <묵소거사 자찬>이 김유근과 관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중하게 정성을 담아 쓴 듯한 이 글씨는 글씨형이 세장(細長)하며, 날카롭고 변화가 큰 필획을 구사하였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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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소거사 자찬 해석본


當黙而黙, 近乎時, 當笑而笑, 近乎中. 周旋可否之間, 屈伸消長之際. 動而不悖於天理, 靜而不拂乎人情. 黙笑之義, 大矣哉. 不言而喩, 何傷乎黙. 得中而發, 何患乎笑. 勉之哉. 吾惟自況, 而知其免夫矣. 黙笑居士自讚.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한다면 시중(時中)에 가깝고,
웃어야 할 때 웃는다면 중용(中庸)에 가깝겠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나,
세상에서 벼슬하거나 또는 은거를 결심할 시기가 찾아 올땐

그 거동은 천리(天理)를 위반하지 않고,
그 고요함은 인정(人情)을 거스르지 않으리.

침묵할 때 침묵을 지키고, 웃을 때 웃는다는 의미는 대단하도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나의 뜻을 알릴 수 있으니, 침묵을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중용의 도를 터득하여 나의 감정을 발할 수 있으니, 웃는다 한들 무슨 걱정이 되랴!

힘쓸지어다.
나 자신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화는 면할 수 있음을 알겠다.

묵소거사(김유근 본인)가 스스로 찬(讚)하노라.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김유근이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헌종 임금도 세상을 떠났는데, 김조순의 딸인 순원왕후가 강화도령 이원범을 국왕으로 지목했다.

그녀가 수렴청정을 단행하면서 철종비로 김조순의 7촌 조카인 김문근의 딸을 간택하자 권력이 다시 안동김문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지난편 보기]: [역사카툰] 21화: 조선 후기 광기의 화가, 최북 이야기

[제공: 카툰공작소 케이비리포트]

덧붙이는 글 | (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글/그림: 장수찬 작가, 감수 및 편집: 김정학 PD) 본 카툰은 카툰공작소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서 제공합니다. 출판 문의 및 정치/대중문화 카툰작가 지원하기 [ kbr@kbrepor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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