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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대해 써야겠다. 2017년 마지막 날, 그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런 책에 대해 쓰지 않으면 무슨 책을 쓸까, 그런 생각이 들만큼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은 특별했다. 사실 책보다 저자가 더 특별했다(강은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저자 '강은경'을 부르는 말이다).

 2017년 12월 31일. 강은경의 책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을 한번에 읽었다.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손을 놓기 어려운 책이었다.
 2017년 12월 31일. 강은경의 책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을 한번에 읽었다.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손을 놓기 어려운 책이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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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2013년 강이 <오마이뉴스>에 '지리산 날적이'를 연재할 때부터 그를 알았다. 처음부터 강의 글이 좋았다. 지리산 시골집에서 쏘아 올리는 기사를 하나씩 읽으며 강에 대해 하나씩 알아갔다. '아... 지리산에서 혼자 사시는구나', '시골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시는구나', '아, 아이들이 미국에 있구나', '농장이나 공사장에서 일도 하시는구나', '아, 소설가가 꿈이셨구나', '아, 이혼을 하셨구나' 등등.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강이 씩씩한 우리 이모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강은 훌쩍훌쩍 떠났다. 연재는 대책 없이 미뤄졌다. 여행을 다녀오면 한두 번씩 여행기를 썼다. 그 글이 마무리되고 소식이 없을 때쯤엔 늘 어딘가로 떠나 있었다. 아이슬란드에 간 건 다녀와서 알았다. 강이 먼저 연락해왔다.

책을 내고 싶은데, 아무도 받아주는 데가 없다고. 오마이북에서 검토해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담당자 이메일을 알려주고, 출판 담당자 선배에게 말도 해뒀다. 하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거절이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강은 33번 만에 지금의 출판사를 만나 계약을 하고 책을 냈다고 했다.

책을 읽고 알았다. 그게 강에게 얼마나 미치도록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를. 아이들과 가족들 때문이었다. 이혼 후 재결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들 의견을 듣기 위해 세 아이들과 시부모, 전 남편이 모인 자리에서 당시 열두 살이던 딸이 말했단다.

"엄마랑 아빠는 너무 다른 사람이에요. 엄마는 아빠를 존경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우리 때문에 엄마를 희생하려는 거죠. 그건 불행한 인생이에요. 엄마가 우리 때문에 불행하게 살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드는 거예요. 나는 나쁜 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엄마의 행복한 인생을 찾으세요. 우리 걱정은 너무 하지 마세요."

강은 이 말을 듣고 재결합을 단념했다 한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영주권을 반납하고 한국에 돌아와 매해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도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대학에 갈 만큼 장성했지만 강은 등단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행복한 인생을 찾으라고 나를 지지해 줬던 착한 아이들에게. 꿈을 이루었다고,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가가 되었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이들이 자기들의 아픔을 감수하며 찾아 준 새 삶이었는데, 불행히도 나는 아이들이 다 커 성인이 되도록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이젠 뭔가가 될 수 있다는 것조차 요원해져 버렸다." - 205쪽

이런 강에게 아이슬란드는 운명으로 다가왔다. 강은 궁금했다. 아이슬란드가 정말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인지. 왜냐고? 그 논리라면 강은 실패자가 아니라, 찬양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니까. 그렇게 강은 펜을 꺾고 배낭을 메었다. '히치하이커들의 천국'이라는 아이슬란드에서도 보기 어려운 50대 히치하이커가 되어 300여만 원을 들고 71일을 살다, 돌아왔다. 물가 높기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 심지어 돈도 남겼다.

 글만 보자니, 사진이 더 없이 보고 싶다. 강은경의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글만 보자니, 사진이 더 없이 보고 싶다. 강은경의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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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사진을 줄이고 줄여 500페이지 가까이 풀어놓은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정말 꼼꼼하고 재밌다(이렇게만 쓰기는 어쩐지 미안합니다만).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세세히 적어 내려갔다. 길 떠나다 생긴 급변 사태 이야기를 읽을 때면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만큼 큰 웃음을 줬다. 많은 시간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면서 어떻게 이런 글을 기록할 수 있었는지, 책을 보는 내내 강은 그 자체로 실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소설가가 아니면 어때? 이런 글을 쓰는데" 마음에 있던 속엣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지명을 외우기도 어려운 아이슬란드 곳곳이 마치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나 이렇게 여행했어'가 아니라 더 좋았다. 강을 따라 여행하는 내내 아이슬란드가 이런 나라였구나, 새삼 알게 된 대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살아서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라는데, 98%쯤 동의했달까. 그 몇 대목을 쓰면,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권리가 보장된 나라다. 그러나 그 권리는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투쟁해온 결과였다. 1975년 여성 경제권 평등 캠페인 원 데이 오프, 또 바로 얼마전에도 레이캬비크 여성들이 상의를 벗고 가슴을 드러낸 채 프리 더 니플이라는 양성평등 캠페인을 벌였다."

"아이슬란드는 남녀가 함께 살면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가 절반, 하지 않는 경우가 절반인 나라이고 동거나 결혼, 이혼 등 법과 제도가 모두 '개인 행복'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

"생면부지 사람들과의 짧은 만난엔 '길 위의 감동'이 있었다. 차를 태워주는 사람도 행복하고, 차를 타는 사람도 행복했다. 그 행복감을 맛보려면 내가 감내해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게 있었다. 추위, 바람, 기다림, 외로움."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이 공중 욕조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라고 한다. 영국인들은 단골 펍을 갖고 있고, 터키인들은 찻집, 프랑스 사람들은 단골 카페가 있다면, 아이슬란드 사람에겐 각자 선호하는 단골 욕조가 있단다."

"한밤중 내내 아이들이 밖에서 놀아도 안전한 나라. 갓난아이들을 유모차에 뉘어 건물 밖에 세워놓고 엄마들은 쇼핑을 하는 나라. 그래서 만났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안정한 나라라고 한 거였다. 사람이 무섭지 않은 나라였다."

"아이슬란드의 풍광을 더 멋지게 보이도록 거드는 게 구름이었다... 보들레르는 구름을 '신이 증기로 만든 움직이는 건축'이라고 했다. 그 신은 특별히 아이슬란드의 하늘을 더 사랑하나?"

"이런 나라에 살면 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 경쟁하지 않고 부대끼지 않으면서 나도 이런 나라에서 착하게 살고 싶어요."

강은 오는 4일 다시 스페인으로 출국한다. 왜 스페인인지 이유는 모른다. 추측컨대 확실한 건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스페인'도 없었을 거라는 거다.

"내 인생의 축소판 같았던 이 여행은 악몽이 아니라 길몽이었어요. 꿈 없이 산다는 게, 실패자 아닌 실패자로 산다는 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산다는 게,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지 알게 됐으니까요."

자유로운 영혼 강의 다음 여행기가 손꼽아 기다려진다. 부디 건강하게 완주하시라.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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