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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1980년 5월 광주의 여성들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 외롭고 높고 쓸쓸한 1980년 5월 광주의 여성들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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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 감독 : 김경자
- 제목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형식: 다큐멘터리
- 분량 : 80분


경북 안동시 옥동사거리 '행복한 집' 이라는 음식점에서 한 중년의 여성이 홍어 삭힌 것을 손질하고 있다. 그 여성은 누구일까. 1980년 5월 20일 광주에서 새벽에 울려 퍼졌던 가두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인 차명숙씨다.

1980년 오월 광주의 여성들을 2017년에 불러낸 사람은 광주출신 여성감독 김경자씨다. 감독은 연출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80년 광주, 오월을 겪었던 여성들의 경험과 활동을 여성들의 목소리로 담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그녀들에게 무엇이었을까를 보고 싶었다."

한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오월광주 여성들을 여성의 시각으로 다룬 첫 작품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영화제 폐막작으로 광주에서 첫 선을 보였다. 광주에 이어 안동의 독립영화전용관인 중앙시네마에서 2017년 12월 30일 두 번째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안동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오월광주 가두방송의 주인공인 차명숙씨와 중앙시네마 대표가 마련한 2017년 마지막 토요일 의미 있는 송년 자리였다.

상영 시간 80분, 특별히 편집된 자막도 감독의 의도도 배제된 오월 여성들의 목소리로 듣는 증언은 전체적으로 조금 밋밋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두방송 중 체포되어 조작 간첩이 되어 고문당했던 차명숙씨가 지금은 폐허가 된 죽음의 수용소를 37년 만에 다시 찾은 끔찍한 장면을 제외한다면.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의 힘은, '오월여성'들이 항쟁 당시 경험했던 말의 무게에서 나온다. 이런 이유로 이 다큐멘터리는 '오월여성'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체험을 편집을 최소화하고 묵묵히 지켜봤다. 그리고 자막을 일절 배제하여 '오월여성'들이 말하는 입과 얼굴에 주목하도록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고통의 시간을 이겨 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항쟁당사자들이 직접 체험한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차명숙씨는 가두방송 당시를 이렇게 전했다.

"동사무소에서 확성기를 가져다가 앞에 선두 차량, 가운데 방송 차. 그리고 뒤에 여러 대의 버스가 방송차를 에워싸고 같이 달렸어요. 차량마다 전부 확성기를 달아 어느 차량에서 방송을 하는지 알 수 없게 했지요. 방송할 내용을 종이에 적은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현실을 그대로 전했어요. '당신의 아들딸이 죽어가고 있는데 뜨건 방에서 뜨건 밥 묵고 뜨건 이불속에서 잠이 오느냐'라고 방송을 했어요."

당시 차명숙씨는 만 19세의 앳된 청년이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가두방송을 할 수 있었나' 라는 질문에 그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 당시 광주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끌려가고 죽음이 되어 나오고..... "

27일 새벽 도청에서 마지막 방송을 했던 박영순 (당시 21세 유아교육과 2학년)씨는 데모 한 번 해보지 않은 학생이었다.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사람이 없으니 방송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도청에 들어갔다가 나올 시기를 놓쳤다. 27일 새벽 마지막 방송을 하다 잡혀 505 보안부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무기수로 2년 여를 살다 석방되었다.

방송 주인공 외에도  여러 명의 오월광주 그녀들이 목소리를 들려준다. 가톨릭농민회(Joc) 회원, YWCA 탈춤 동아리 회원, 시장에서 야채와 생선을 팔던 아주머니 등 그녀들은 학생들과 시민항쟁군이 먹을 주먹밥을 지었고 이불과 담요 양말과 치약을 공급했다.

시신을 수습할 천과 검은 리본을 만들었으며, 지도부를 위해 밥을 짓고, 대자보를 썼고 현장에서 치열하게 함께 싸웠다. 하지만 그 여성들은 5.18 민주화 항쟁의 주역으로 무게감있게 조명된 적이 없었다.

오월 여성 중 어떤 이는 오랫동안 밤마다 군인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차명숙씨는 고통의 기억이 커 광주를 떠나 16년 이상 한 번도 발을 딛지 않고 살고 있다. 그렇다면 오월 여성들의 현재는 어떠할까. 그들은 지금도 경북 성주, 제주도 4·3, 강정 마을을 찾아 연대한다. 5·18 정신을 헌법에 담아내기 위한 발족식에 참여하기도 한다.

차명숙씨는 안동에서 전라도 음식의 상징인 홍어를 고집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음식에 담긴 광주의 정신을 붙들고 살고 있는 것이리라. 그이는 여전히 사랑의 연탄 나눔, 백남기 농민을 위한 집회,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분신 항거한 이남종 열사 장례식 등에 참여하며 사회적 연대활동으로 오월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에게 오월 광주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이가 말했다.

"한번은 공수부대 대원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했어요. 가두방송을 했던 사람이 누군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너무 궁금했다면서요. 그저 내가 보고 경험했던 사실만 말해주면 충분하더라고요. 5·18의 진실을 알리는데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이 영화의 힘은, "'오월여성'들이 항쟁 당시 경험했던 말의 무게에서 나온다"'라는 감독의 말에 있었다.

감독에게 편집에 긴장감이 덜하다는 설익은 감상평을 전했는데 감독의 프로그램 노트와 차명숙씨가 전해 준 메시지를 듣는 순간 관객으로 내 인식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오월 여성들은 투사도 혁명가도 아닌 우리의 어머니, 언니, 누이였다.  광주민주화 항쟁에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그날 그곳에 있던 누구라도 함께였듯이 오월 여성들은 사람으로 사람이 살아갈 도리와 사람으로 대접받는 세상을 꿈꾼 이들이었다.

'1980년 오월의 광주 그녀들에게는 어떤 날들이었을까?'

오월 여성들의 말의 무게를 통해 그날의 진실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볼 것을 권한다.

관객과의 대화 후 외롭고 높고 쓸쓸한 관객과의 대화 후  몇이 사진을 찍었다.
▲ 관객과의 대화 후 외롭고 높고 쓸쓸한 관객과의 대화 후 몇이 사진을 찍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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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감경자 감독 필모그래피

2009 <민수의 대인시장>

2011 <나 지금 여기 있어>

2015 <소인의 노래>

2017 <움직이는 가게>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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