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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 지금도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 인권 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고 보고,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평화의 소녀상 답사를 넘는 지역 답사의 의미도 갖게 됨을 의미한다. - 기자 말

군산 평화의 소녀상  해안가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처연하고 간절한 염원의 소녀상이다.
▲ 군산 평화의 소녀상 해안가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처연하고 간절한 염원의 소녀상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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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포교라는 미명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침해해왔다. (중략)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중략)

황민화 정책은 한민족의 국가와 언어를 빼앗았으며 창씨개명이라 칭하여 민족문화에 기반을 둔 개인의 이름까지도 빼앗아버렸다.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의 종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그러한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략)

불법을 국가 정책이라는 세속적 법률에 예속시키고, 나아가 타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침탈하는 두 가지 잘못을 함께 범한 것이다.


우리는 맹세한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침범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든 민족이든 마찬가지이다. (중략)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맹세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그리고 과거 일본의 억압 때문에 고통을 받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깊이 사죄하면서 권력에 편승하여 가해자 입장에서 포교했던 조동종 해외 전도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하는 바이다."

1992년 11월 20일


동국사의 개산 기념일에 일본 조동종에서 발표된 참사문(발췌)을 조각한 비석을 동국사의 정원에 세우고 제막식을 봉행한다.

불기 2556(서기 2012년) 9월 28일 일본의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 건립

전라북도 군산시 동국사 평화의 소녀상 뒤, 일본 불교 조동종 종파의 참사비(참회와 사죄의 비)에 새겨진 글이다.

가슴을 때리는 이 참회의 글은 '진정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절절이 깨닫게 한다. 이것이 진정한 사과요, 참회이다. 어느 한국인이 이 글을 보며 '거짓말 마라'고 하겠는가.

다만, 불행히도 이렇게 참회하고 사과하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소수라는 점이다. 일본인의 다수는 여전히 한국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한국인의 '피해의식' 내지는 '떼쓰기'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베 내각과 같은 극우 세력이 정권을 오래도록 담당하는 것은 다수 일본인들의 의식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거다.

그러니 반대로 조동종과 같은 종파의 참회는 무척 소중하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아지도록 그들과의 소통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군산 평화의 소녀상 눈 내린 겨울 아침, 동국사 서쪽편에 당당하게 서 있는 소녀상. 뒤에 참사비가 있다
▲ 군산 평화의 소녀상 눈 내린 겨울 아침, 동국사 서쪽편에 당당하게 서 있는 소녀상. 뒤에 참사비가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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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안에 당당히 서 있는 소녀상

참사비가 있는 군산은 금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고장이다 보니 과거부터 교통과 군사의 요지였던 곳이다. 고려시대부터 전라도 지방의 조세미를 보내는 진성창이라는 조창이 있었던 곳이며, 고려 말 전국의 바다를 약탈한 왜구를 상대로 최무선의 화포가 맹위를 떨친 진포대첩의 현장이 이곳 앞바다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때는 호남에서 가장 먼저 3.1운동이 일어난 곳이라 자부하는 고장이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거점 항구로 이용되면서 규모가 커진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특히, 항구에서 동국사에 이르는 옛 도심에는 일본식 건축물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군산시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이 도심을 '시간여행의 길'이라 이름 붙이고 근대의 아픈 역사를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으로 조성해 나가고 있다.

군산 평화의 소녀상은 이런 구도심의 끝자락쯤에 해당하는 월명산 아래, 일제강점기 조동종 사찰이었던 동국사 서쪽, 조동종 참사비 앞에 우뚝 서 있다.

군산 평화의 소녀상 뒤에서 본 모습 평화의 소녀상은 참사비를 배경으로 동국사 앞마당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
▲ 군산 평화의 소녀상 뒤에서 본 모습 평화의 소녀상은 참사비를 배경으로 동국사 앞마당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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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은 2015년 8월 12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사찰 경내에 세워졌는데, 군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 위원회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했고, 고광국 작가가 제작했다. 모금에는 일제강점기 자국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동지회'가 참여했고, 제막식 날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다.

제작자는 강제로 끌려가 고통 받는 삶 속에서 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해 해안가에 서서 처연하고 간절하게 바라보며 상념하는 소녀상으로 표현했다고 밝힌다.

소녀상은 키 158cm의 청동 조각상이며, 한복 차림에 맨발로 서 있는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다. 겨울이라 추워 보였는지 시민들이 손에는 장갑을 끼우고, 몸에는 목도리에 망토까지 씌워 놓았다.

얼굴과 표정을 보면 한편으로는 처연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당하다. 다른 소녀상에서 보는 앳된 얼굴이나 비장감이 감도는 얼굴이 아니라 목을 들고 먼 곳을 바라보며 힘겨운 과거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듯한 양면의 얼굴이다. 일제 강점기 후반 일반적인 17세 소녀를 모델로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보면 소녀라기보다 20세를 갓 넘긴 성인 여성의 성숙함이 느껴진다.

군산 평화의 소녀상 손  소녀상 손이 추워 보였는지 한 손에 털장갑이 끼워져 있다.
▲ 군산 평화의 소녀상 손 소녀상 손이 추워 보였는지 한 손에 털장갑이 끼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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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사와 대나무숲이 가르쳐 주는 것

소녀상이 들어선 동국사는 1909년 일본 승려 우치다가 만든 사찰로, 1913년에 현재 자리로 이전한 조동종 계열의 사찰이었는데, 해방 후 정부에 이관됐다가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에 소속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사찰은 군산에서 태어난 고은 시인이 출가한 사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처마에 장식이나 단청이 없고, 높고 가파른 경사면을 보이는 지붕, 대웅전과 요사채가 복도로 연결된 구조, 일본 에도 시대의 건축 양식이라 한다. 요모조모 따지지 않아도 한눈에 일본식 사찰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동국사 전경 일본식 사찰임을 알 수 있는 동국사 대웅전과 요사채
▲ 동국사 전경 일본식 사찰임을 알 수 있는 동국사 대웅전과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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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경내의 '다온'이라는 찻집은 조용하고 깔끔하다. 통유리 창밖으로 펼쳐지는 사찰 측면과 뒤편의 왕대숲이 운치가 있다. 찻집을 지키는 분께 손님들이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물어봤다.

"참사문이나 소녀상 이야기도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절 뒤의 대나무숲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일제 때 사찰에서 조성한 것이라 하는데요,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야무지게 잘 만들어놨어요. 이 땅을 영원히 지배한다고 생각한 듯해요."

그렇다. 그들은 우리 땅을 완전히 '일본 땅'이라 간주하고 영원히 이 땅을 지배하고자 장기적인 안목으로 하나하나 다양한 사업을 해 나갔다.

잘 조성해놓은 왕대숲을 올려다보며, 그리고 바람에 사각거리는 그 숲 속을 걸어보며 그들의 행태를 생각해 본다. 집요하고 끈질기며 상대의 약점을 철저하게 파고드는, 우리가 보기에는 비열해보이기까지 한 그들을 상대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동국사 대나무숲 동국사 뒤편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사찰에서 조성한 대나무숲이 있다
▲ 동국사 대나무숲 동국사 뒤편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사찰에서 조성한 대나무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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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2월 2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직속 TF팀이 한일위안부 합의에 비공개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표했고,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조약과 협정, 합의는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대단히 신중하게 한 구절 한 구절 손익을 따져가면서 검토하고 체결해야 하는 법. 국익이 충돌하는 외교의 전쟁터에서는 한 번의 잘못된 공식 협정이 미래에 끼치는 해악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과 공식적으로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는 강화도조약(1876)을 보라. 치외법권(영사재판권) 조항 다 알지 않는가. 일본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한국에서 행한 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일본에 넘겨준 조항.

19년 뒤 일본 정부가 배후 조종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범인들이 어떻게 됐나. 모두 안전하게 일본으로 호송돼 일본에서 재판을 받고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 석방되지 않았나. 그들 중 일부는 일본 정계의 거물과 거물급 언론인이 되어 제국주의 침략에 앞장섰다. 

한 나라의 왕비가 죽음을 당했는데, 그 범인들에 대한 재판권도 없는 나라. 이런 역사의 치욕을 다시 반복하고 싶은가. 역사를 시험공부용으로만 배웠나.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라는 구절이 들어간 황당한 한일위안부 합의. 일본 측에 철저히 유리한 합의문이라는 증거다. 

그러니 어차피 아베로 대표되는 저 일본 정부가 재협상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들에게는 불가역적 해결이 된 합의인데 재협상 하겠나. 따라서 이 합의는 부작용이 더 나타나기 전에 하루 빨리 폐기돼야 한다.

우리의 사찰 한 켠에 참사비를 세운 일본의 조동종과 지금 일본의 우익 세력과 그들을 등에 업은 아베 내각, 그들의 양면이 씁쓸하게 겹쳐 보인다.

군산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 앞에 기부자 명단을 모두 새긴 비석을 세웠다.
▲ 군산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 앞에 기부자 명단을 모두 새긴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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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정보
- 동국사 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동국사길 16(금광동 135-1)
- 동국사 정보: 063-462-5366, www.dongguksa.or.kr

- 대중교통으로는 군산역과 군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12번, 54번, 66번 등 시내버스를 타고 명산사거리 하차, 2분 거리에 위치. 혹은 1, 2번 시내버스를 이용해 근대역사박물관 앞에 내린 후 시간여행의 길을 따라 천천히 답사하며 올라가는 것도 한 방법.

군산 내항 항구에서부터 동국사에 이르는 골목은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시간여행의 길'이다. 근대역사박물관, 옛 군산세관, 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 군산 지점),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가옥), 고우당 등을 찬찬히 둘러보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은 초원사진관도 그대로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과점인 이성당의 단팥빵과 야채빵, 곳곳의 콩나물국밥집과 한정식 집들은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하며, 여러 게스트하우스와 숙박시설들도 곳곳에 들어서 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내부  군산은 호남에서 가장 먼저 3.1운동이 일어난 지역임을 자부한다
▲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내부 군산은 호남에서 가장 먼저 3.1운동이 일어난 지역임을 자부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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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여행작가, 문화유산 답사 전문가. 개인 저서 6권. 공저 다수. 여행을 삶의 전부로 삼아 나그네의 길을 간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