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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 취임 축하식장의 모습으로, 만인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는 사람을 고르는 네 가지 조건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골구루 갖춘 인물이다.
 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 취임 축하식장의 모습으로, 만인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는 사람을 고르는 네 가지 조건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골구루 갖춘 인물이다.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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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피맺힌 절규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흐르는 세월의 수레바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았네. 2018년 올해는 광복 일흔네 해요, 아울러 분단 일흔네 해이기도 하네. 내가 왜 광복 몇 돌인지 정확히 아느냐 하면, 내가 해방둥이기 때문이네. 일본이 패망해 광복을 맞았던 그해에 태어난 젖먹이들은 올해 일흔네 살이 되고, 그때 어머니, 아버지들이 여태 살아계신다면 아흔 후반이나 백세를 넘겼을 것으로 짐작되네.

흔히들 한국전쟁 직후 남과 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이 일천 만이라고 일컬었네. 하지만 그새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그 일천만 명 가운데 이제는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시는지. 그저 흐르는 세월만 안쓰러워 그 수레바퀴를 멈추고 싶네.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머리 한 오리 없이
내 백발이 된다 해도 
어린 날의 그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어
통일 향해 가는 길에
가시밭에 피 흘려도
내 걸음 멈추지 않으리니

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내 어머니를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오마니!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 오영재 지음 <아, 나의 어머니> 중에서

한국전쟁 당시 16세 소년으로 북에 간 오영재 시인의 절규라네. 그는 남녘에 어머니가 살았다는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며 "세월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라고 울부짖었지만, 끝내 그 시인은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몇 해 전에 세상을 떴다네.

 백두산 가는 길에 소나기를 피하면서 만난 북녘 계관시인 오영재(왼쪽)와 기자
 백두산 가는 길에 소나기를 피하면서 만난 북녘 계관시인 오영재(왼쪽)와 기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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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이 뉘 땅인데...

나는 그 오영재 시인을 2005년 7월 22일 백두산으로 가는 도중 소나기를 만나 잠시 비를 피하는 처마 밑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는 내가 남쪽에 산다는 그 이유 하나 만에도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꽉 잡았다네.

하늘을 나는 새도,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도,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지 않는가? 그런데 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은 멀쩡한 땅에다가 철조망을 쳐놓고 일흔네 해 동안 서로 오도가도 못하는지 그저 한스럽기만 하네. 정말 '이 땅이 뉘 땅인데 왜 우리는 오도 가지도 못하는가?'를 빈 하늘을 보고 외쳐 보네.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2018년 새해를 맞으면서 나는 희망을 가져 보네.

"민족 화해의 문을 열겠습니다."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도록 하겠습니다."
"한반도에 결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분단의 아픔을 겪는 어르신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19일 자네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으로 취임하면서 들려준 말들이네. 나는 자네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언행이 일치하는, 대단히 과묵한 인품이라는 것을 학창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네. 그러기에 자네의 말은 다른 누구의 말보다 무게가 있고, 자네는 그 말들을 실천하리라는 믿음을 갖네. 그래서 올해는 정말 그동안 꽉 막힌 남북 교류의 물고를 트는 해로 기대하겠네.

 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이 취임사를 말하고 있다.
 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이 취임사를 말하고 있다.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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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업을 살리고자

사실 우리나라는 우리 백성들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됐다네. 그새 북위 38도 직선은 한 차례 전쟁을 겪고는 군사분계선인 곡선 휴전선으로 바뀌었다네. 그새 74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그 분단이 고착된 것은 강대국 못지 않게, 남북 정치지도자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네. 아울러 남과 북의 백성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네.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이 분단 극복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임했다면 오늘과 같이 고착되고 경색되었겠는가? 어떤 지도자들은 분단을 빌미로 자기 정권 연장의 도구로 썼고, 정권의 연장을 위해 서로 총질까지 하는 반민족적인 처사도 서슴지 않았다니 통탄치 않을 수 없네.

이제 백성들은 화도 좀 내고 직접 팔을 걷고 꽉 막힌 남과 북으로 가는 길을 뚫는 일에 나서야 할 때로 여겨지네. 사실 이웃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분단은 그들로서는 그렇게 심각한 현안은 아닐 걸세. 오히려 그들은 한반도의 분단이 그들에게는 완충 역할을 하는 지역으로, 우리끼리 치고받는 것을 불구경 하듯 즐길 뿐 아니라, 무기를 팔면서 그들의 국익을 챙기는, 내면으로는 오히려 한반도의 분단이 영속되기를 바라는지도 모르네. 그래서 남북통일은, 분단 극복은, 남과 북의 어진 백성들이 손잡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뤄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하네.

자네가 이 어려운 일에 앞장 선다고 하니, 나는 자네를 한때 가르쳤던 한 훈장으로서 대견함과 가슴 벅찬 뿌듯함을 느꼈다네. 하지만 이는 영광의 일이 아니라 고난의 가시밭길이기에 염려되는 바 크네. 해방 후 통일정부 수립과 민족 화해에 앞장 섰던 몽양 여운형 선생이나 백범 김구 선생도 끝내 흉탄으로 조국 통일의 제물이 된 것을 나는 익히 알기 때문이네.

"지난 수년 간 민화협이 워낙 침체되고 유명무실화 돼 있어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이 자리를 맡으셨던 분들은 고위공직을 지내셨던 사회원로 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능력이나 경험에서 그분들보다 훨씬 못한 제가 맡기에 적합지 않다'고 생각하여 처음에는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비교적 그분들보다는 젊고 부지런하게 뛸 수 있는 제가 나서서 다시 민화협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만드신 단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리고 싶습니다." 

나는 자네의 그 취임사 일절을 다시 읽으며 힘찬 박수를 보내네. 보다 젊은 자네가, 아버지가 만든 단체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결의에,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갈구하고 열망하는 8000만 국내외 동포들은 성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으리라 믿네.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매국노였던 일부 무리들의 방해 책동도 매우 집요하고 클 것으로 우려되네.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취임식 단상 행사로 민족 화해의 매듭을 푸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중앙, 김홍걸 의장, 오른쪽 끝 기자).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취임식 단상 행사로 민족 화해의 매듭을 푸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중앙, 김홍걸 의장, 오른쪽 끝 기자).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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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의 보람

나는 자네의 민화협 상임의장 취임식 그날, 참으로 감개무량했네. 그리고 교육자로서 큰 보람도 느꼈다네. 그날 경향 각지에서 달려온 수백의 귀한 취임 축하객 가운데 옛 훈장을 상석에 앉힐 뿐 아니라, 그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남북 화해의 매듭을 푸는 그 자리에 서게 하고, 만찬 시작 전 축배의 건배사까지 부탁해 일찍이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의 한 즐거움을 만끽했다네.

그날의 그 배려는 스승에 대한 자네의 각별한 예우요, 아직도 늙은 훈장에게 한 수 더 배우겠다는 자네의 어진 학구열로 이해하겠네. 그래서 그 보답으로 그날 그 자리에서 미처 자네에게 들려주지 못한 몇 말씀을 드리니까 참고하시게.

70여 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에 살았던 남과 북의 대화 당사자들끼리 만남을 화해의 분위기로 바꾸는 데는 어려운 난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네. 하지만 다음의 내 말을 참고하신다면 그동안 서로 간 얼었던 마음도 녹일 수 있을 것이네.

첫째는 '진정성'이네. 지난날 우리는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갈려 있고, 곧 하나가 돼야 한다는 그 명제를 향한 진정성이네. 꼭 그런 마음과 자세로 북의 대표와 동포들을 대해주시게. 그런 자네의 마음을 그들도 읽게 된다면 반드시 화답이 있을 것이네.

둘째는 '인내'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악조건 속에서,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호시탐탐 상대의 허점을 노리며 제압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화해 협력을 하자는 대화에는 그 어려움이 무척 클 것이네. 또한 그 역풍은 해일을 동반한 태풍으로 자네의 신체 위해와 생명까지도 위협할지 모르겠네. 그때마다 정신을 가다듬어 참고 또 참으면서, 그 장애물을 이겨내시게. 아마도 자네 선친도 온갖 비난과 고난을 감내하면서 마침내 6.15 공동선언을 이뤄내신 걸로 알고 있네.

셋째는 '겸손'이네. 변함없는 겸손 앞에서는 대화 상대도 굴복하기 마련이네. 그리고 내가 베푼 것은 절대 생색내지 마시게.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퍼준다느니, 일방적인 시혜라는 등으로 햇볕정책을 부정하는데, 긴 안목으로 볼 때 이 세상의 이치는 'Give and Take'이네. 곧 내가 베푼 만큼 그 언젠가는 돌아오기 마련이네. 한자말에도 '음덕양보'(陰德陽報)란 말이 있다네. 곧 남 모르게 덕행을 쌓으면 뒤에 후일 그 보답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이네. 

사실, 남과 북의 백성들은 본의 아니게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상대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다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진 빚이 엄청 많다네. 이런 지난 빚들을 말없이 갚을 때 상대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자네를 끌어안을 걸세.

넷째로 '천리 길도 한 걸음'이라는 말을 전하네. 양자강 같은 큰 강물도 그 시작은 술잔을 띄울 만큼 가늘게 흐르는 시냇물이고, 천 길 둑도 사소한 개미구멍이 커져서 무너진다는 말이 있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궁극 목표는 남북 평화통일이지만 거기로 가기 위해서는 앞서 서로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상호 방문과 체육, 예술 등 문화 교류라고 생각하네.

예를 들면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사업이라든지, 금강산 관광 그리고 개성공단 재개, 각종 국제대회 단일팀 구성, 남북 문화 예술인 상호 방문 공연과 같은 일들이라고 생각하네. 이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 이루도록 하시고, 북의 동포 만나면 진심으로 껴안고 사랑하시게. 그들에게는 다른 외국인과는 다른,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뼈에 새겨두고 명심 또 명심하시게.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취임 축하 만찬장에서 기자가 건배사를 하고 있다.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취임 축하 만찬장에서 기자가 건배사를 하고 있다.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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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찬가'를 부르는 시인이 되기를

나는 자네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 대표 상임의장이 된 것을 축하하면서, 큰일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가시 면류관을 쓴 자네에게 격한 격려를 보내면서, 이 글의 마무리로 그날 두서없이 말한 건배사를 더듬어 다시 들려줄까 하네.

"조금 전,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님께서 김홍걸 의장의 스피치와 인품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미 38년 전에 김홍걸 학생이 큰 그릇이 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고교 재학시절 대단히 과묵하였으며, 진리에 대한 탐구욕이 매우 강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학과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홍걸군이 장차 통일운동가나 시인이 되기를 바랐고, 또한 그 길로 권유키도 했습니다. 이제 통일운동가로 우뚝 섰으니 나라와 겨레를 위해 큰일을 이룬 다음, 시인이 되어 '조국찬가'를 담은 시집을 내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때 제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 제 무덤(아마도 수목장 나무일 것임)에 헌정해주면 하늘나라에서 매우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는 제자의 '조국찬가'를 듣겠습니다.

민화협을 위하여! 남북통일을 위하여!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을 위하여! 우리 다 함께 건배합시다."        

[관련 기사] 
'옛 훈장'이 김홍걸 위원장에 보내는 조언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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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단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