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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 브랜드 매장(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SPA 브랜드 매장(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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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의류매장에서 판매원으로 2015년 12월부터 1년 6개월간 일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 SPA브랜드라고 불린다. SPA브랜드란 유행하는 스타일을 빠르게 생산해 세계 여러 나라 매장에서 판매하는 소매업을 말한다.

한 매장에 대략 스물다섯 명이 함께 일했다. 매니저는 다섯 명이었고 나머지 직원은 모두 판매원이었다. 판매원 중 적게는 3명, 많게는 8명의 인원이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했고 나머지 인원은 일주일에 20~30시간 일하는 파트타이머로 채워졌다.

나는 일주일에 20시간 일하는 파트타이머로 채용됐다. 이 회사의 여러 패션 브랜드 중 남성, 여성, 아동복까지 취급하는 A 브랜드에서 파트타이머로 1년을 일했고, 이어서 여성복만 판매하는 B브랜드에서 풀타이머로 6개월을 일했다(풀타이머는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계약직을 말한다). 두 브랜드는 취급품목과 스타일이 매우 달랐지만, 의류판매원으로서 하는 일은 다름이 없었다.

A 브랜드 매장에 입사한 뒤 나는 2주 동안 멘토로부터 교육받았다. 매장 오픈·마감부터 계산 업무와 고객 서비스까지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업무를 익혀야 했다.

교육을 마친 뒤 매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매니저는 매장에 고객이 들어오면 큰 소리로 인사하고 눈을 마주친 후 미소를 지으라고 교육했다. 매장의 업무는 시간마다 하는 일이 바뀌는 로테이션 제였다. 업무는 매장 입구, 탈의실, 계산대, 창고로 나뉘어 있었고 그날의 일정표를 보고 시간마다 어떤 근무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시간에는 들어오고 나가는 고객을 향해 크고 단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해야 했다. 가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고객도 있었지만 대체로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해도 못 본 체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면 아무리 직원이라지만 내가 사람이 아닌 기계처럼 느껴졌고 무안함에 속으로 욕지거리했다. 일하는 동안 직원은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했다. 언제든 고객과 눈이 마주치면 '난 널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어'라는 분위기를 풍겨야 했다.

탈의실에서는 고객에게 방을 배정한 뒤 고객이 입고 나온 옷을 정리했다. 고객은 사이즈가 마음에 안 들 경우 한 사이즈 작거나 큰 사이즈를 갔다 달라고 직원에게 요구했다. 고객 한 명을 상대하는 동시에 탈의실에서 해야 하는 일이 밀리지 않게끔 처리해야 했다.

SPA 브랜드 매장(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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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자기가 입어 본 옷을 그대로 탈의실 안에 쌓아 둔 채로 나왔다. 구매하지 않을 옷을 탈의실에 벗어 두곤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한 얼굴로 탈의실을 나갔다. 어느 날은 고객들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나 몇몇 직원들과 의견을 모았고, 고객에게 "나오실 때 안 하시는 옷도 가지고 나와주세요"라고 덧붙이기로 했다. 며칠 뒤 매니저는 미팅 때 판매원들의 언행을 문제 삼았다. 고객에게 어떤 것이든 요청하면 안 된다고 했다.

계산대에서는 고객의 소비를 조장했다. 옷 한 벌의 평균 가격대는 오만 원에서 십만 원 사이였다. 종종 고객들은 예상치 못한 가격에 흠칫 놀랐다. "총 두벌 하셔서 이십 일만 오천 원이세요"라고 말하면 계산하기를 머뭇거렸다.

고객이 계산대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계산하려는 줄은 길어졌고 짜증이 밀려왔다. 차라리 고민하지 못하게 소비를 조장하는 편이 나았다. 고민하는 틈을 파고들어 나는 상냥한 표정과 함께 말을 건넸다.

"교환, 환불은 한 달 이내에 가능하시니까 일단 결제하시고서 집에 가서 다시 고민해보세요."

이렇게 말하면 고객은 자신의 소비를 합리화해주는 나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건넸다. 매니저는 유혹의 말로 고객의 지갑을 여는 직원을 칭찬했다.

한 달에 두 번 '미스테리쇼퍼'라는 제도로 각 매장의 서비스 정도를 측정했다. 미스테리쇼퍼란 고객으로 가장한 일반인이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매장에 방문해 쇼핑하며 직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제도였다.

웃음은 몇 점인지, 제품에 대한 지식은 어떤지, 직원들끼리 떠들지는 않았는지 등 해당 매장 직원들의 서비스를 평가했다. 그 점수는 매장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점수가 낮게 나올 때면 매니저는 고객 서비스를 높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시때때로 직원을 감시했다.

파트타이머도 전문가가 돼야 하는 현실

"나는 어디를 가든 직원의 인사를 의식하지 않았고 필요한 말만 경제적으로 썼다. 그랬던 내가 퇴근 후 소비자가 되었음에도 상냥한 말투와 웃음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어디를 가든 직원의 인사를 의식하지 않았고 필요한 말만 경제적으로 썼다. 그랬던 내가 퇴근 후 소비자가 되었음에도 상냥한 말투와 웃음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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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원으로서 업무는 간단했지만 일 잘하는 판매원이 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매주 새롭게 올라오는 정보를 숙지하고 있는지 미팅 때마다 물었고 매니저는 모르는 직원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 모르는 직원은 대체로 파트타이머였다.

관리자들은 소재의 장단점을 외우게끔 했고 고객이 물었을 때 바로 그 소재에 관해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책 <일하지 않을 권리>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 대단치 않은 취급을 받는 저임금 일자리 노동자였지만 전문가주의를 확실히 드러내는 능력을 똑같이 요구받았다."
말끝엔 높임말을 달고 일했다. "사이즈는 괜찮으셨나요?", "한 벌 하셔서 10만 원이십니다", "그 옷은 품절되셨어요", "오늘 더 필요한 건 없으셨나요?" 하는 식이었다. 말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자꾸만 입에 높임말이 붙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눈에 들어왔다. 상냥한 인사와 반듯한 예의가 노동으로 보였다. 나는 그 직원들의 노동에 마음이 쓰여 퇴근 후 소비자가 되었을 때도 상냥함을 잊지 않았다. 직원이 기계적으로 하는 인사에 의식적으로 대답했고 그들이 웃으며 말하면 나도 미소짓고 화답했다.

순간 '원래 나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어디를 가든 직원의 인사를 의식하지 않았고 필요한 말만 경제적으로 썼다. 그랬던 내가 퇴근 후 소비자가 되었음에도 상냥한 말투와 웃음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김정선 작가는 책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서 이런 현상을 두고 '그만큼 이 사회에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강도 또한 세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서비스업에 몸담게 된 뒤로 성격에 변화가 생긴 건가 싶었다. 일하는 직원들에겐 착한 손님으로 비췄을지 모르지만, 내 심경은 달랐다. 일할 때 고객 앞에서 쓴 가면이 퇴근 이후에도 이어진 것 같았다.

걱정스러웠다. 핸드폰이나 문서가 이전의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동기화되어버리듯,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격에서 판매원으로서 갖게 된 성격으로 나도 모르게 동기화되어버린 건 아닌지….


태그:#아르바이트, #의류판매원, #SPA브랜드, #일하지않을권리, #내문장이그렇게이상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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