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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윤동주 시인이 유학왔던 릿쿄대학 캠퍼스. 그 때와 변한 것은 크게 자란 나무뿐이었다.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의 안내로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었다.
 1942년 윤동주 시인이 유학왔던 릿쿄대학 캠퍼스. 그 때와 변한 것은 크게 자란 나무뿐이었다.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의 안내로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었다.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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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0일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타국의 차디찬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 한국인이 사랑하고 자랑하는 이 시인을 한국인보다 더 뜨겁게 기억하는 일본인이 있다고 해서 만나보았다.

윤동주를 알리는 데 힘쓴 일본인 야나기하라씨

이케부쿠로(池袋)역 C3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어가니 빨간 벽돌로 지어진 교문과 건물이 인상적인 아담한 대학 캠퍼스가 나왔다. 140년을 훌쩍 넘긴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 릿쿄대학(立教大学)이다. 교문 앞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다. 가방에 매단 세월호 노란 리본 덕분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20여 년 전부터 윤동주 시인을 연구하고 알리는 데 힘쓰고 있는 일본인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原泰子, 71)씨다.

 "찾아오는 길이 힘들진 않았나요? 우선 캠퍼스 구경부터 해볼까요?"

야나기하라씨의 안내로 캠퍼스 안으로 들어섰다. 교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현재 학교 기념관으로 사용되는 옛 도서관 건물이 있는데 2015년에 연세대학교로부터 윤동주 시인 자료를 빌려와 전시회를 연 곳이기도 하다.

교문 정면에는 윤동주 시인이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이 있는 본관, 오른쪽에는 예배당이 있다. 본관을 지나서 뒤쪽으로 가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학생식당이 있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휑한 식당 구석에 몇 몇의 학생들이 책을 읽거나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도 이곳에서 강의를 듣고 밥을 먹었죠. 제가 앉았던 이 의자에, 혹은 이 책상에서 윤동주 시인도 밥을 먹고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한 학기를 수학했다. 야나기하라 씨는 릿쿄대학 사학과 졸업생으로 윤동주 시인의 후배가 된다. 사학을 공부했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이 그러하듯 한일 간의 역사에 깊이 알지 못했던 야나기하라씨는 20여 년 전 시인 이라바키 노리코의 에세이에서 '릿쿄대학에 유학했던 시인 윤동주'에 대한 문장을 읽고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좇기 시작했다.

 "쓰쿠바대학에 유학 온 한국인 학생한테 한국어를 배우며 릿쿄대학에 남아 있는 윤동주 시인의 흔적부터 찾기 시작했어요."

윤동주 흔적 찾기 위해 보낸  엽서 백 통

불과 몇 달 동안 재학했던 학생의 자료를, 그것도 반세기가 흐른 다음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야나기하라씨는 당시의 졸업생 명부를 보고 주소를 일일이 필사해서 백 명이 넘는 졸업생에게 엽서를 보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영문과 동급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있었죠. 저는 경제학, 종교학까지 범위를 넓혀봤어요. 당시 릿쿄대학 재학 중이었던 동급생을 대상으로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고 있다면 연락을 해달라고 백 통이 넘는 엽서를 보냈죠. 그렇게 해서 딱 한 통의 회신을 받았어요. 이시카와 토시오라는 분이었죠. 이시카와씨를 통해 릿쿄대학 학생이었던 윤동주 시인에 대해 들을 수 있었어요."   

야나기하라씨는 본관 건물 뒤편으로 안내했다. 한 강의실의 창 앞에 선 야나기하라씨는 이시카와씨로부터 이 강의실에서 윤동주 시인과 함께 철학 수업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여러 개의 강의실을 터서 큰 강의실이 됐지만 당시엔 이 창 한 개 폭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강의실이었다고 해요. 열 명도 채 못 들어가는 아주 작은 강의실이었는데 여기서 한국에서 온 신학생이었던 장순희씨와도 같이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학 맞은 편에 있던 성공회 신학원에 유학왔던 한국인 신학생 장순희 씨와 종교학과 동급생인 이시카와 토시오 씨와 함께 <동양철학사> 수업을 들었던 본관 강의실 내부. 당시에는 정면에 보이는 창틀 넓이의 크기였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학 맞은 편에 있던 성공회 신학원에 유학왔던 한국인 신학생 장순희 씨와 종교학과 동급생인 이시카와 토시오 씨와 함께 <동양철학사> 수업을 들었던 본관 강의실 내부. 당시에는 정면에 보이는 창틀 넓이의 크기였다고 한다.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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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보다 배 이상 커진 강의실에는 여학생 한 명이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야나기하라씨가 다음으로 안내한 곳은 예배당이었다. 매년 2월이면 이곳에서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예배 겸 추모식이 열린다. 2008년부터 시작된 윤동주 시인 추모식은 올 해로 10주년을 맞이해 예배당의 정원인 250명을 초과해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한 바 있다. 야나기하라씨는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의 발기인이지 회원으로 추모식이 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월에 열린 추모식에는 예배당 통로에 보조의자를 놓고 앉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어요.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젊은 세대의 참여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저와 같은 나이 많은 세대가 주로 참가하고 활동해왔어요. 올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0대, 20대가 윤동주 시인을 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 시비 건립 위한 모금활동 진행 중

 2017년 2월 19일 릿쿄대학 예배당에서 열린 열번 째 추모식에는 예배당 정원인 250명을 훌쩍 넘는 360여명이 참석했다.
 2017년 2월 19일 릿쿄대학 예배당에서 열린 열번 째 추모식에는 예배당 정원인 250명을 훌쩍 넘는 360여명이 참석했다.
ⓒ 야나기하라 야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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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대학 예배당에서 열린 열 번째 추모식을 통해 릿쿄대학 학부생들이 제작한 영상이 상영됐고 지난 11월에는 릿쿄대학 이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윤동주 시인 심포지움을 개최하기도 했다. 심포지움에는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가했다. 지금은 학부생 중심으로 교내에 윤동주 시인 시비를 건립하자는 모금활동이 진행 중이다.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학의 졸업생은 아니지만 릿쿄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쓴 시와 남긴 발자취가 있다는 게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인지 릿쿄대학에서도 2010년부터 윤동주 시인을 기념하는 윤동주국제교류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각 학부 당 한 명씩 매달 5만엔을 지급하는 장학금제도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야나기하라씨를 비롯한 '시인 윤동주를 추모하는 릿쿄 모임' 멤버들은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활동으로 수익이 나면 전 금액을 이 장학기금에 기부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윤동주 시인 연구를 시작한 게 아니니까요. 지금 일본 사회 한 쪽에선 우경화가 진행되고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한 쪽에선 윤동주 시인의 시와 생애에 관심을 갖고 진지한 자세로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고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윤동주 시인은 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시를 썼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정치적으로 한일 양국의 관계가 냉랭해졌지만 윤동주 시인이 두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야나리하라씨는 이 말을 끝으로 2018년 2월 18일에 열릴 열한 번째 추모식 '시인 윤동주와 함께 2018'준비를 위해 자리를 떴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어떻게 보면 한국인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야나기하라씨의 모습을 보면서 의아함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다기보다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전도유망했던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의 양심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윤동주 시인을 사랑하는 대부분의 일본인이 저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야나기하라 씨는 윤동주 시인 연구를 시작한 후 1999년 시인의 고향인 중국 연변에 있는 명동촌을 방문했다.
 야나기하라 씨는 윤동주 시인 연구를 시작한 후 1999년 시인의 고향인 중국 연변에 있는 명동촌을 방문했다.
ⓒ 야나기하라 야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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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차 영상번역작가. 전 여성신문 기자. 사람 이야기를 씁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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