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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출산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임신 전부터 우리 부부는 "딸이요"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금 나는 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매우 안심하면서 살아간다.

2017년 여러 차례 대형 브랜드 회사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희롱, 성추행 문제는 그 브랜드 회사 사장, 인사권자, 상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주 멀리 가지 않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특히 성희롱을 중심으로. 나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그리고 여자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자 부모님의 딸, 아내이자 며느리이다.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일상에서 겪는 사례들이 모인 것이다.

"누구 보여주려고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었어?"

 내가 가장 상처를 입은 것은 내 복장을 물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대다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들의 말이다.
 내가 가장 상처를 입은 것은 내 복장을 물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대다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들의 말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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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인이 되기 전 성희롱으로 상처받은 기억부터 꺼내본다. 미니 스커트가 유행하던 당시에 어느 옷 가게를 가도 긴 치마를 찾아보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처음으로 미니 스커트를 입었고 내가 이쁘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니 스커트를 입고 느낀 건 무서운 말의 온도였다.

"학생, 누구 보여주려고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었어?", "팬티 보이겠다.", "그렇게 입고 다니면 큰일나요."

나를 아는 사람 혹은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중고등학생이던 나에게 한 말들이다. 그때는 이 말들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나는 그 말이 불쾌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말들은 모두 성희롱적 발언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이런 성희롱 발언들을 경험할 기회가 더 많아졌다. 친구가 회사에서 성희롱 발언을 듣고 회사에 신고를 했었다. 그때 다들 별거 아니라고 그런 거에 예민하게 군다고 요란을 떤다는 시선을 보냈고 친구는 참 힘들어했다.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내 손을 꼭 잡았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이건 비단 여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영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오전에 수영을 가면 수영강사들이 그렇게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주머니들의 농도 밑은 농담과 터치에 나는 절대로 저렇게 늙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런 말들을 내뱉고 불쾌함을 이야기하면 농담인데 왜 그러냐, 너무 민감한 것이 아니냐, 너 페미니스트냐,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 등등의 말을 돌려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여자와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못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누구나 이런 성희롱을 듣고 나면 기분 나쁠 테니. 농담이라도 그것이 농담이 아니게 느껴짐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말을 반성했으면 좋겠다.

성추행을 당한 경험도 있다. 지하철에서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내 다리로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한 아저씨가 내 다리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옮기고도 아저씨의 말과 추행은 계속 됐다. 결국 나는 손에 있었던 우산을 던지고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서야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모두 내 복장에 대해 묻는다. 나는 말도 안 되게 긴 후드 집업과 발목까지 가리는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벗고 다닐지언정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내가 가장 상처를 입은 것은 내 복장을 물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대다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들의 말이다.

말의 온도, 말의 품격

학생 혹은 부모라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라는 시스템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메신저 내에서의 성희롱이다.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메신저에서 그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특정 학생의 사진을 올리고 신체부위에 대한 노골적 표현을 하거나 성희롱 대화를 나누다 그 대화가 유출되어서 위원회에 불려온다. 그러면 학생들끼리 장난친 것인데, 개인적 공간에서 한 사적 대화인데 뭘 그러냐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묻고 싶다. 학생들이 나누는 저 대화는 누구에게 배운 것이며 과연 개인적 대화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은 괜찮은 것인지를.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다. 말의 온도, 말의 품격. 말은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개인적 공간에서의 대화들이 생각으로 젖어들고, 그 대화들이 내가 겪었던 성희롱, 성추행으로 발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하는 말들이 내 자녀가 살아갈 사회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나는 역사영화를 좋아한다. 그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기에 내가 사는 사회가 만들어졌고 변해왔고 지금도 역사는 흐르고 있고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사회를 변화시킨 세대이다. 동시에 내 또래에게 가장 많은 성희롱을 한 세대이기도 하다. 왜 성희롱 문제, 언어의 문제만큼은 농담으로 가볍게 치부할까.

드라마 <고백부부>에서 나오는 '접대' 장면은 한국사회 접대문화의 어려움, 영업사원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접대라는 문화가 더욱 심하면 심했지 드라마 속 장면보다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문화가 바뀌고 생각과 말이 바뀌어야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내 아들이 접대를 하는 문화의 일원으로 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자녀가 <고백부부> 속 가장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 '그 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가 아니라 '이런 문화는 나쁜 문화니까 나부터 바꿔야하지 않을까'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이상주의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안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지만 엄마인 나는 내 아들이 사는 세상은 성희롱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사회는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고 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조금 다른 예시지만 우리 아기가 태어난 모네여성병원에서 신생아 결핵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댓글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아기들을 살처분하면 된다', '아기 팔아서 돈 뜯어낼 생각이다', '뭐 결핵가지고 저 난리냐' 등등 언급하자면 끝이 없다.

말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할 때 자신을 돌이켜보았으면 좋겠다. 배려하는 말하기가 가능한 성희롱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성희롱을 했을 때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자신의 말에 대해 생각을 하고 '이 말은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쁠 수 있어', '그런 말은 하지 말자'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지성인이 되었으면 한다. 내 아이가 이런 말에 상처받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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