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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동존중 사회 실현 공약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적대적이었던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계를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고, 노동계에서는 사회적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노총·민주노총 위원장을 연달아 만나 사회적 대화와 노동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편집자말]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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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점잖았다. 민감한 질문에는 더욱 신중하게 답했다.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그 스스로 이 분위기를 깼다.

- 가장 중요하고 힘든 답변을 하셔야할 것 같은데요.
"아이고. 허허."

- 한국노총은 젊은 사람들이나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한국노총을 바꿀 수 있을까요?
"꼭 집어서 말은 안했지만, 어용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거죠?"

그의 반문에 어색한 웃음과 긴장이 흘렀다. 100만 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의 입에서 '어용'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어용은 권력에 빌붙는다는 뜻으로, 노동운동에서 어용 노조만큼 수치스러운 말은 없다.

한국노총은 집권 세력과 가깝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노총은 2015년 9월 박근혜 정부, 재계와 노사정 대타협에 나섰다. 쉬운 해고, 비정규직 양산 등의 우려를 자아내는 합의였기에 노동계 반발이 컸다. 실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우려를 현실로 바꿔놓았고, 4개월 뒤 한국노총은 스스로 이 합의를 파기했다.

2017년 1월 임기를 시작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고, 5월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책연대협약을 맺었다.

"우리는 그렇게 어용 짓 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2015년 사회적 대타협 때 욕을 많이 먹었는데, 같이 살자는 내용들이 거기에 있거든요. 우리도 청년들 취업을 고민하고 있고…. 충분히 협의하기로 한 부분을 박근혜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합의 내용에도 없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어요. 여기에 분노해 한국노총이 합의를 파기한 겁니다."

갈등의 조짐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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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의 위상은 지난 정부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노동존중 사회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의 주요 파트너로 격상됐다. 한국노총의 문재인 정부 1년차 평가 역시 후하다.

"노동 공약은 과거 정부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일보한 것입니다. 방향을 잘 잡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휴일근무 중복 할증 문제가 대표적이다.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김주영 위원장을 만난 지난달 20일은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노동계가 거세게 대립하던 때였다. 

박근혜 정부 때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법정노동시간을 주 68시간까지 늘려놓았다. 또한 휴일에 일하면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의 50%)은 빼고 휴일근로수당(통상임금의 50%)만 더 주기로 했다. 노동자의 처우는 급격히 나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행정해석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새 정부 출범 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잘못된 행정해석이었다며 사과했다.

갈등은 해법에 따른 시각차에서 나온다. 노동계는 즉각적인 행정해석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법정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되돌리고, 휴일 근무 때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모두 지급하는 중복 할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 간사는 단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중복할증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민주당 소속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이 여기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중복할증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면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김주영 위원장은 당시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행정해석 폐기를 강조했다.

"3당 합의는 정당성을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워요. 여당 내에서도 조율이 안됐잖아요. 여당이 한국노총을 정책 연대 파트너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저희나 노동단체의 의견을 좀 더 들어보는 절차를 밟았어야죠."

김 위원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정권 때 (야당 의원으로서) 내놓은 안과는 다른 안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 있어요. 야당 때는 (노동시간 단축 관련 행정해석을) 대표적인 악법이라고 했는데, 집권 여당 되고 난 다음에 어떤 부분들이 달라져서 소신을 바꾸게 됐는지 의문입니다."

- 정부가 밀어붙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노동자들의 큰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새해에는 좀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라는 어려운 질문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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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위원장에게 더욱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두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여기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찾을 수 있다.

한국노총 소속인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11월 공청회에서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직접 고용을 강조한 발제자와 토론자에게 고성과 야유를 보냈다. 지난달 26일 인천공항공사와 비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1만여 명 가운데 안전 분야 3000명은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으로, 나머지 7000명은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정규직 노조의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전력 노조인 전국전력노조위원장 시절 2004년과 2007년 비정규직 132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김 위원장에겐 곤혹스런 상황이다. 그에게 인천공항 비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비정규직 전환 예산 등에 대한 정부 방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비정규직이 전환되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할 문제가 있죠. 당장 말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안타까운 문제입니다."

- 신세계와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조가 합의한 35시간 근무제를 두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의견이 갈립니다. 민주노총 쪽은 노동시간을 단축해 임금을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습니다.
"꼼수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저는 그런 시도조차 해봤느냐고 묻고 싶어요. 35시간으로 줄면, 업무량이나 노동 강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나서서 사람을 충원할 수 있습니다. 잘만하면 일자리 확산으로 연결될 수 있어요. 진일보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노총은 달라질 수 있을까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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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가 화두다. 김주영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대통령을 비롯해 노사정을 대표하는 8자가 만나는 틀의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한 적은 없어요. 진정성을 갖고 그런 문제들을 풀어보자는 뜻으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던 겁니다.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하면 양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다 같이 조금씩 의견을 모으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사회적 대화를 재차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노사정위와 함께 노사정대표자회의 등을 통해 사회적 대화가 진척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답했다.

인터뷰 이후 지난 11일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오는 24일 기존 노사정위 틀을 벗어난 양대노총 위원장,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고용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장 등 6명이 함께 하는 노사정 대표자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김주영 위원장은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한국노총·민주노총 위원장을 연달아 만나, 사회적 대화 방법 등을 논의한다.

- 2018년 1월에는 최저임금이 2017년에 비해 16.4%가 오릅니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부작용에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에서 그만큼 많이 가져갔던 부분을 노동자들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난다면,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고 가지고 싶은 것도 구매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구매력이 높아지면, 재생산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경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들이 너무 엄살을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자는 산업재해 이야기를 꺼냈다. 한 해 산재로 2000명의 노동자가 죽고 있다. 철로에서, 타워크레인에서, 공장에서 노동자가 죽었다는 뉴스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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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장에 감독하러 나갔을 때, 안전사고를 봤죠. 감전되고, 추락하고, 무거운 물체가 떨어져서 머리가 깨지고. 그때 사고를 생각하면 심장이 오그라듭니다."

-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타워크레인 사고만 보더라도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작업중지권 발동은 큰 해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작업자들이 안전에 심대하게 위협받는 부분을 직접 판단해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검사하고 좀 더 엄격한 안전 기준을 만들어서, 일이 조금 늦어지고 돈벌이가 줄어들더라도 생명을 중시하는 풍토가 마련돼야겠죠."

- 2018년 한국노총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노동시간 단축이 중요할 것 같아요. 과로사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26개 업종은 무제한으로 일을 시킬 수 있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한국노총의 역할이죠. 사회적 약자에 더 관심을 갖고,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사무실에 있는 100만 조직화 현황판 앞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그곳엔 모든 회원 조합과 지역 본부의 올해 조직 확대 현황이 담겼다. 회원 조합에선 2만5000여 명, 지역본부에서는 1만8000여명의 조합원이 새로 가입했다.

- 아직 100만 조합원을 달성하지 못한 거네요. 내년(2018년) 목표도 100만 명인가요?
"아닙니다. 200만 명입니다. 하하하. 올해 성과도 많이 내고 있고 접촉하고 있는 데가 많이 있어요. 최근에 어용이라는 뜻은 어려울 때 '용기 내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저는 대한민국 2000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노력할 각오가 돼있습니다."


태그:#한국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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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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