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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표 택배상자가 오랜만에 도착했다. 슬슬 보낼 때가 됐을 거란 촉이 오더니만. 냉동실도 어느새 헐렁해져서 뭔가 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지.

시어머니표 택배 상자, 꺼내기 전까진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시어머니표 택배 상자, 꺼내기 전까진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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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종합 구호식품 그득한 상자를 연다. 커다란 떡국 봉지부터 온갖 떡, 참기름에 잰 김, 마른멸치, 마른 조갯살에 사탕과 치즈까지. 마른 조갯살은 처음 보는지라 신기하기만 하고, 한 봉지가 아닌 달랑 다섯 개 싼 치즈를 보니 아마도 누가 먹으라고 준 걸 아꼈다 보내신 듯. 그냥 좀 드시면 좋으련만….

어머나, 생선 뼈까지 챙기셨네? 우리 집 강아지 간만에 입 호강, 마음 호강하겠다. 저 멀리서 어머니가 마음 쓰고 있는 걸 너도 느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참, 구호식품 잘 받았다고 전화부터 드려야지. 전화 오길 기다리셨는지 연결되자마자 이것저것 썰을 푸시는 어머니.  

떡국을 비롯한 온갖 떡, 참기름에 잰 김, 마른멸치, 마른 조갯살에 사탕과 치즈까지. 한 봉지가 아닌, 달랑 다섯 개 싼 치즈를 보니 아마도 누가 먹으라고 준 걸 아꼈다 보내신 듯.
▲ 시어머니 정성 가득한 구호식품 떡국을 비롯한 온갖 떡, 참기름에 잰 김, 마른멸치, 마른 조갯살에 사탕과 치즈까지. 한 봉지가 아닌, 달랑 다섯 개 싼 치즈를 보니 아마도 누가 먹으라고 준 걸 아꼈다 보내신 듯.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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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보내러 갔더니 거기 아줌마가 또 오셨네요, 오실 때 됐다 싶었어요, 하더라."

내 마음이랑 딱 통한 그 아주머니 말씀에 어머니 듣는 줄도 모르고 주책없이 깔깔 웃었다. 늘 가신다는 싼(?) 택배집이다 보니 서로 낯을 익히셨나 보다. 가까운 우체국 놔두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먼 길 택배상자 끌고 가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말릴 방법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

"그 아줌마가 아들 거냐 딸 거냐 묻더라. 아들이라고 했더니 며느리가 그런 거 받느냐고 하기에 우리 며느리는 잘 받는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며느리 잘 보셨네요, 하네. 자기 경험으론 안 받는 며느리는 끝까지 안 받는다고 하면서."

예까지 숨 안 돌리고 이야기하시더니 뭐가 그리 신나는지 전화기 너머로 깔깔 웃음소리가 들리고 나도 덩달아 웃는다.

"저야 좋으니까 잘 받죠. 어머니 덕분에 떡도 받고 칭찬까지 받으니 영 부끄러운데요."

"사실인데 뭘 그러냐. 내가 우리 며느리 착하다고 자랑했다. 잘만 먹어라. 떡국 잘 끓여먹고 조갯살은 볶아 먹으면 맛있단다. 넌 고긴 못 먹어도 해물은 먹으니까 보냈지. 참! 미역은 녹여서 먹으면 된다."

"네? 미역이요? 없던데요?"

"작은 봉지에 검정색 두 개 있어."

"아, 그거요? 떡 아니에요?"

"미역 불린 거 기름에 들들 볶아 얼린 거야.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해놓고 한번씩 나도 해먹는다. 맛있어."

"전에 생미역 주신 것도 잔뜩 있는데…. 네, 잘 먹겠습니다!"

떡인 줄 알고 다른 떡이랑 같이 넣었던 검정색 물체(?)는 미역이었다. 아는 길 물어가라더니 아는 택배도 물어서 보관해야 할 듯.
▲ 검은 떡이 아니라 검은 미역 떡인 줄 알고 다른 떡이랑 같이 넣었던 검정색 물체(?)는 미역이었다. 아는 길 물어가라더니 아는 택배도 물어서 보관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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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한 방울만 떨어져 있어도 그 미역국 느끼해서 한 입도 못 댄다는 말이 튀어나오려던 걸 꾹 눌렀다. 전화 끊자마자 냉동실로 직행! 다른 떡이랑 같은 봉지에 넣은 검정 물체를 꺼냈다.

검은 쌀 떡쯤 되겠지 여겼던 이것이 미역이라니, 겉만 봐선 도저히 모르겠네. 곁따라 나온 얼린 오징어까지 보니 어쨌든 이 봉지가 떡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하마터면 떡에 비린내 밸 뻔했네. 휴, 먼저 알려주셔서 다행이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더니 아는 택배도 물어서 보관해야겠네.

오늘 저녁은 시어머니표 떡국. 멸치 다시마 우린 물로만 끓여도 뽀얀 국물과 쫄깃한 떡이 오메, 맛나다. 앞에 앉은 남자가 두 그릇이나 비우니 떡국 만든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팍 생기네.

"이야, 잘 먹네! 맛있나 봐! 어떡하지? 나, 아무래도, 떡국 잘 끓이는 사람이 됐나 봐."

"나 원래 떡국 좋아해. 떡만둣국이면 더 좋고."

"피이. 입으로 천냥 좀 벌지 않구선, 김새게."

시어머니표 떡국. 멸치 다시마 우린 물로만 끓여도 뽀얀 국물과 쫄깃한 떡이 오메, 맛나다.
▲ 시어머니 사랑과 고생이 담긴 떡국 시어머니표 떡국. 멸치 다시마 우린 물로만 끓여도 뽀얀 국물과 쫄깃한 떡이 오메,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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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좀 미안하긴 하네. 이 남자가 만두 깨나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만두 넣으면 기름기랑 고기 맛 우러난다고 내가 떡만둣국은 절대 안 끓이니까. 가게에 파는 만두도 고기 냄새가 많이 나서 아예 먹지도 사지도 않으니 안 됐긴 했지. 그래, 고기 못 먹는 여자랑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게야.

고기 맘 놓고 못 먹는 안쓰러운 남자를 낳아주신, 시어머니의 사랑과 고생이 담긴 떡국. 올겨울 첫 떡국을 새해가 오기 전부터 잘 먹었으니 나잇살 하나 더 먹은 셈치고 다짐 두 가지 해본다.

하나, 다음 장에 갈 땐 만두를 사자. 두울, 다음 떡국엔 만두를 넣자. 왠지 그러면 받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는 이 죄송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것 같은 느낌이…. 

산산이 깨진 그릇 따라 조각 날 뻔했던 내 마음. 어머니 택배 덕분에 차곡차곡 꿰매진 기분이다.
 산산이 깨진 그릇 따라 조각 날 뻔했던 내 마음. 어머니 택배 덕분에 차곡차곡 꿰매진 기분이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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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설거지하다 아끼는 그릇 하나를 깼다. 이 덜렁이, 없는 살림살이 또 축냈다고 혼자 주눅 들었건만 먹을거리 살림 가득 생기려고 그랬나 보다. 산산이 깨진 그릇 따라 가늘게 금이 갈 뻔했던 내 마음. 어머니 덕분에 차곡차곡 꿰매진 기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며느리 잘 보신 게 아니라, 내가 시어머니를 잘 본 듯. 그것도 아주 많이!        


태그:#시어머니, #며느리, #택배, #떡국 ,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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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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