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로 꼽히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표팀이 어느덧 완전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만 남게 됐다. 2002 멤버 중 마지막 현역이었던 현영민이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울산에서 프로에 데뷔한 현영민은 러시아 제니트, 서울-성남 등을 거쳐 2014년부터 성남에서 활약해왔다. K리그 통산 437경기를 뛰면서 9골·55도움을 기록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A매치 15경기에 출전하며 2002 월드컵과 2004 아시안컵 등에 출전했다.

한일 월드컵 당시 23살의 젊은 수비수였던 현영민은 백업 멤버로 분류돼 본선에서는 중용받지 못했다. 당시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들고도 1분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비운의 5인방(김병지, 윤정환, 최성용, 현영민, 최은성)' 중 한 명이었다. 월드컵 이후로도 같은 포지션에서 하필 이영표-김동진 등 쟁쟁한 선수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국가대표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끈끈한 수비력을 앞세워 동갑내기 이동국과 더불어 동시대의 어떤 선수들보다도 장수한 선수로 남았다. 멀티플레이어와 개성 강한 선수를 선호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훗날 현영민이 좌우 측면수비가 모두 가능한 데다 '롱 스로인'이라는 확실한 주특기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그를 최종엔트리에 발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영민을 끝으로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주역들은 모두 현역에서 물러났다. 세월의 무상함을 절로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혈기왕성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축구계를 떠나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2002년 월드컵이 낳은 스타들, 박지성부터 안정환·이영표까지

 지난 2009년 5월 5일 영국 런던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아스널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첫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지난 2009년 5월 5일 영국 런던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아스널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첫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한일월드컵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라면 단연 '두 개의 심장' 박지성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무대에 진출한 박지성은 PSV 아인트호벤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치며 21세기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비록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팀과 현역생활을 정리해야 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경기장 안팎에서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선수생활로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스타의 전형으로 남아있다. 은퇴 후에는 친정팀 맨유의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는 지난 11월 대한축구협회 유소년전략본부장에 선임돼 한국축구의 미래를 설계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아 본인의 오랜 소망이던 축구 행정가의 길을 시작했다.

2002 멤버들의 대부분은 역시 지도자로 변신하여 활약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어느덧 감독으로서 제법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역시 '황새' 황선홍 FC 서울 감독이다. 황 감독은 K리그 부산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으로 포항에서 FA컵 2연패와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고, 2016년에는 서울에서 다시 리그 우승을 추가하며 2002 세대가 배출한 '스타 출신 감독의 성공사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독수리' 최용수 감독도 FC 서울과 중국 장쑤 쑤닝 사령탑을 거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잠시 휴식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프로구단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환 감독은 J리그 사간 도스와 울산을 거쳐 현재는 세레소 오사카의 지휘봉을 잡고 있으며 주로 일본무대에서 더 인정받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유상철 감독이 대전 시티즌과 울산대학교의 사령탑을 거쳐 2018시즌부터 K리그 전남 드래곤즈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코치로 활약하는 인재들도 적지 않다. 비교적 최근에 은퇴한 김남일과 차두리는 현재 국가대표팀에서 신태용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이운재-최성용-김태영 코치는 수원에서 활동 중이며 이을용은 서울, 최은성은 전북의 코치를 맡고 있다. 프로 지도자들은 주로 선수 시절 활약했던 친정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설기현 감독이 성균관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으며, 최태욱 코치는 이랜드 15세 이하 유소년 팀을 지도하고 있다. 이민성 코치는 용인시청과 전남-울산 등에서 활동했고 2017년 중국 창춘 야타이 코치에서 물러난 직후 현재는 휴식 중이다.

2002 스타들의 은퇴 후 또 다른 루트는 방송계로의 진출이다. 안정환, 이영표, 송종국, 이천수 등이 지상파와 케이블을 오가며 '축구 해설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들은 축구 중계 이외에도 다양한 방송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비교적 자주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설가로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초롱이' 이영표다. 지난 브라질월드컵을 통하여 KBS 해설위원으로 데뷔한 이영표는 재미나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차분하고 논리적인 언변과 정확한 상황예측을 바탕으로 신문선-차범근의 뒤를 잇는 스타급 축구해설자의 반열에 올랐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스포테이너'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뭉쳐야 뜬다> 등 다양한 방송출연을 통하여 진행자이자 예능인으로서의 숨겨진 내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간간이 축구해설도 맡고 있지만 지나친 말장난 스타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데 비하여, 최근에는 오히려 '예능인'이 사실상 본업처럼 느껴질 정도다.

히딩크, 홍명보 등 최근 부진 겪은 스타들도...

물론 2002년의 영웅들이 모두 은퇴 후에도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최진철 전 포항 감독은 2015년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지도력을 인정받는 듯했지만 2016년 K리그 포항 감독을 맡아 성적부진으로 불과 4개월만에 경질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현재는 재야에 머물고 있다.

김병지도 적지 않은 풍파를 겪었다. 현역 시절 말기에 아들의 학교폭력 의혹 사건에 휘말리면서 큰 고통을 겪었고 이는 결국 김병지의 은퇴로까지 이어지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지난 11월 큰 교통사고로 허리 수술까지 받으며 현재 재활 중이다. 송종국 역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안정환과 공동해설을 맡은 것을 비롯하여 한때 활발한 예능출연 등으로 주가를 높였으나 이후 이혼 등 가정사로 부침을 겪으며 한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파란만장한 행보를 겪은 인물은 역시 홍명보 현 축구협회 전무이사다. 한일월드컵의 또 다른 영웅이자 대표팀의 캡틴이었던 홍명보는 월드컵 이후 행보가 가장 극과 극을 넘나들었던 인물이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2012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수확했을 때만 해도 홍명보는 감독으로서 또 한 번 축구인생의 정점에 서는 듯했지만, 불과 2년 뒤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의리축구' 논란에 휘말리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쓴맛을 보고 사실상 경질됐다. 이후 중국무대로 건너가 항저우 뤼청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첫해 만에 팀의 2부리그 강등을 막지 못하고 이듬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비록 지도자로서는 '용두사미'로 마감한 꼴이 되었지만 '대한축구협회의 황태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최근 협회의 전무로 전격 발탁되어 화려한 복귀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본래 행정가를 지망했던 자신이 원하던 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브라질월드컵의 악몽이 아직 남아있는 데다 행정가로서 별다른 경험이나 실적도 없는 홍명보가 뜬금없이 축구협회 행정을 총괄하는 요직에 오른 배경을 두고 또 다른 '회전문 인사'라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팬들도 적지 않다. '실패한 감독'이 '성공한 행정가'로 부활하는 독특한 사례가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수는 아니지만 2002년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은 역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한일월드컵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히딩크 감독은  이후로도 호주의 독일월드컵 본선행과 16강 진출, 러시아의 유로 2008 4강 진출, 첼시의 2009년 FA컵 우승 등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지도자 경력이 하향곡선을 그렸다. 러시아와 터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모두 성적 부진으로 잇달아 경질됐고, 클럽팀인 러시아 안지 마하치칼라와 잉글랜드 첼시의 임시 감독 등을 맡기도 했지만 역시 눈에 띄는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대표팀의 사령탑 복귀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한국축구가 한동안 큰 소란에 빠지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현재 맡은 팀이 없는 히딩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와는 특별한 보직 없이 필요에 따라 자문을 해주는 역할로 정리가 된 상황이며,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 방송의 해설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호주 등 월드컵 본선진출국의 감독 후보로 거론되며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느덧 칠순을 넘겨 감독직 은퇴와 재기의 기로에 서 있는 히딩크 감독이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고 그라운드를 선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국내 팬들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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