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중 한 장면. 반구 모양의 머리와 구체 모양의 몸을 지닌 로봇 BB-8이 굴러다니는 모습은 귀여움과 액션을 동시에 보여준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중 한 장면. 반구 모양의 머리와 구체 모양의 몸을 지닌 로봇 BB-8이 굴러다니는 모습은 귀여움과 액션을 동시에 보여준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면서 사실 조금은 걱정했다. 이전에 <스타워즈>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 시리즈 분량이 많던데, 줄거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예전에 나온 첫 작품부터 보고 왔어야 하는 건데, 실수 아닐까.'


다행히도 상영관을 나오면서 내가 느낀 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본 것이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관객이 나처럼 이전 시리즈를 하나도 보지 않은, <스타워즈> 팬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잘 만든 영화답게 초반 등장인물 등장에서 이미 캐릭터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고, 기존 세계관 구성이나 이전 줄거리를 알지 못하더라도 영화를 쉽게 즐길 수 있었다.

다양한 인종-종족의 반란군, 저항을 이어가는 줄거리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중 한 장면. 제국의 군대는 획일적인 모습과 권위적 체제를 보여준다. 흰 제복을 입은 모습에서 개인의 개성은 찾아볼 수 없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중 한 장면. 제국의 군대는 획일적인 모습과 권위적 체제를 보여준다. 흰 제복을 입은 모습에서 개인의 개성은 찾아볼 수 없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크린을 통해 내가 본 건 인종과 성별, 종을 뛰어넘어 뭉친 사람들이 획일화된 권위와 억압에 싸우는 이야기였다. 사악한 '슈프림 리더'가 이끄는 제국의 군대는 은하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보여준다. 슈프림 리더는 강력한 무기와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앞세워 온 우주를 통치하려고 든다.

반대편에서는 저항군이 맞서 싸운다. 제국군에 비교하면 비록 소수의 인원이지만 나름 모여서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흰 제복'을 입은 제국군 병사들의 모습에서는 어떤 개성도 찾아볼 수 없다. 겉모습만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권위적 체제에 짓눌린 분위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병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항군은 이와 반대로 다양한 종족과 피부색, 성별을 드러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에서 저항군의 '새로운 세대'로 묘사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다. 우선 적진에 가장 깊숙이 뛰어들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핀(존 보예가)은 흑인 남성이며, 그와 함께 싸우는 로즈(켈리 마리 트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급 조연'으로는 찾아보기 힘든 동양계 여성이다.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로부터 은하계의 영웅 '제다이'가 되기 위해 가르침을 받는 인물, 가장 주요한 등장인물 중 하나로 등장하는 레이(데이지 리들리)도 여성 캐릭터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군대라고 해도, 피부색과 성별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흑인과 동양계 여성이 치열한 전투에 뛰어드는 모습이 그다지 '어색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스타워즈>의 세계관에선 머리에 촉수가 주렁주렁 달려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도 '서로 뜻이 통한다면' 충분히 동지가 된다는 걸 잊어선 안 될 일이다. 생각해보면 제국군에 맞서 싸우는 데 개인의 정체성이 걸림돌이 될 이유가 없다.

 영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의 한 장면. 핀(존 보예가, 왼쪽)은 로즈 티코(켈리 마리 트란, 오른쪽)를 만나 다른 성격의 인물로 변한다. 주인공 레이를 돕는 인물로 흑인과 동양계 여성이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한 장면. 핀(존 보예가, 왼쪽)은 로즈 티코(켈리 마리 트란, 오른쪽)를 만나 다른 성격의 인물로 변한다. 주인공 레이를 돕는 인물로 흑인과 동양계 여성이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성은 캐릭터 조합과 등장인물 캐스팅에서 머물지 않고 줄거리에도 적절히 녹아 있다. 어느 행성에서 노예로 억압받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저항군의 탄생'을 암시하는 장면도 예로 들 수 있다. 휴양지 행성의 부유층 주민들이 흥청망청 마시고 즐기는 동안, 그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이들은 주인공을 우연히 보고 '복종하는 삶' 너머를 꿈꾸게 된다. 같은 행성의 카지노에서 '경마장 속 경주마' 노릇을 하던 외계 생명체를 구출하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로즈가 제국군과의 전투에서 핀을 구해낸 뒤 속삭이는 대사에서도 '조화'를 향한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린 이렇게 이길 거예요. 미워하는 누군가를 파괴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냄으로써."

구체의 몸을 데굴데굴 굴리며 이동하는 로봇 BB-8은 귀여움과 액션을 동시에 보여준다. 온몸이 털로 덮인 동물형 외계인 츄바카가 울부짖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전투할 때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저항군의 모습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서로 존중하며 차이점을 이유로 갈라서지 말아야 한다'라는, 당연한 말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낯선 문장 말이다.

흔히 '백인 남성'을 영웅의 모습으로 그리지는 않았나

 영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중 한 장면. 레이(데이지 리들리)는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로부터 은하계를 지킬 영웅 '제다이'가 되기 위한 수업을 듣게 된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중 한 장면. 레이(데이지 리들리)는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로부터 은하계를 지킬 영웅 '제다이'가 되기 위한 수업을 듣게 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짧게 말하자면,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게 됐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좋아하신다고 할 땐 '지루하고 오래된 예전 영화' 같은 인상이었다(물론 지루한 영화가 아니라 그저 내가 미처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에선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핵심으로 이어져 내려온 '제다이' 오래된 전설을 살짝 걷어냈고, 젊은 세대를 토대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 넣었다. 덕분에 시리즈 영화에 대한 '진입장벽'이 허물어졌고. 기존의 팬이 아니던 나 같은 사람도 영화를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이 영화가 새삼 새로운 이야기가 된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의 성별, 레이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제다이'의 가르침을 받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낮은 평가를 하는 '별점 테러'도 있었다. 일부 소셜 미디어에서는 레이 캐릭터를 폄하하거나 영화 자체에 대해 비난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또한, 영화 평가 사이트 '왓챠(WATCHA)'에는 "전통 있는 가문의 집안에 새 며느리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올해부턴 차례 안 지내겠다'란다"라는 '한 줄 평'과 함께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에 '별점 1개 반(5개 만점)'을 채점한 사용자도 있었다. 해당 '한 줄 평'은 트위터 사용자에 의해 갈무리돼 공유되며 '스타워즈가 가부장제 제사란 말이냐' 같은 식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시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개봉 13일째인 26일까지 관객 100만 명을 넘기는 데 실패했다. 크리스마스 연휴까지 지났지만 관객 동원 수는 여전히 91만 명을 간신히 넘긴 상황이다. 이 영화가 명성 높은 <스타워즈> 시리즈라는 걸 감안하면 꽤 충격적인 결과다. 아마 흥행 중인 영화 <신과 함께>에 상영관 수가 밀린 것이 요인으로 보이는데, 27일 영화 < 1987 >이 개봉한 것을 감안하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흥행 부진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이전의 시리즈에서도 여성 등장인물은 있었다. 1970년대 개봉한 <스타워즈> 속 루크 스카이워커 옆에서 적을 향해 용맹하게 레이저 총을 쏘던 레아 공주(지금은 고인이 된 캐리 피셔)를 많은 팬이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관객은 트위터에서 "스타워즈4에서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첫 번째 시퀀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78년에 개봉한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첫 전투 장면에서 제국군과 저항군의 병사들이 모두 '백인 남성'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은하계를 위기로부터 구하는 영웅 서사'가 백인 위주의 판타지에서 흑인과 동양인, 그리고 여성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무려 4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이런 주요 등장인물 구성을 이유로 '별점 테러'와 '제사' 비유가 나온 건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이 자랑스럽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는 흔히 '백인 남성'을 영웅의 모습으로 그리지는 않았나?"

어쩌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던지는 시사점을 위와 같은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일반적인 영웅의 모습'을 남성으로, 혹은 백인으로 떠올리는 건 아니었을까. 장난감 가게에서 남자아이에게는 총이나 칼 장난감을 권하고 여자아이에게는 분홍색 인형을 쥐여주던 그 시절의 감성대로 말이다. <스타워즈> 첫 영화 개봉으로부터 긴 세월이 지나 2017년도 어느덧 끝자락인 만큼, 저 물음 뒤에 다른 물음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 '백인 남성'을 영웅 캐릭터의 '기본형'으로 삼을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라고.

스타워즈 라스트제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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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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