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16개 지역MBC는 서울MBC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취재한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등은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고, 서울MBC 편집자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MBC 잔혹사를 소개합니다.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최승호 신임 사장이 부임했지만,  지역MBC에는 아직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남아있습니다. MBC가 완전하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지역MBC도 살아나야 합니다. '지역MBC 잔혹사'는 안동MBC 강병규 PD가 연재합니다.

 2012.09.10 지역MBC 자율경영 망살책동 규탄 기자회견

ⓒ 언론노조 MBC본부


2011년 6월 30일 행주산성에서는 국악인까지 불러 흥을 돋운 술판이 벌어졌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국악인 정아무개씨와 유난히 특별한 관계였던 김재철 전 MBC 사장도 참석했던 지역MBC 사장들의 회의 자리였다. 김 전 사장은 이 자리에서 '종편 출범에 따른 본·계열사 결속력 강화'와 '관계회사 브랜드 통일을 통한 MBC 브랜드 가치 상승'을 주장했다. 그러한 논리로 '지역MBC 사명 개정'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재철 전 사장의 지역사명 개정 의지는 충만했다. 그로부터 열흘 남짓 지난 7월 12일, 전남 나주에서 전국 지역MBC 경영국장 워크숍이 소집됐다. 그 자리에서 이진숙 당시 기획조정본부장(현 대전MBC 사장)은 서울MBC 정책홍보국이 추진하고 기획조정본부가 총괄하는 형태로 지역MBC 사명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물론 김재철 전 사장은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것을 준비한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긍희 사장 시절 추진했던 MBC C.I.개정에 1년 6개월 정도가 걸렸던 사례만 봐도 김재철 사장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지역 사명 개정 추진은 졸속 그 자체였다. 김재철 사장 취임 1년 반이 지나도록 회사 내 어느 부문에서도 지역 사명 개정에 대한 준비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지역MBC 사장들을 불러 모은 술판에서, 지역 구성원 의견조사나 지역 시·청취자 의견수렴, 전문가 컨설팅 등 필수적인 절차도 없이 추진한 것이다.

결국 노동조합은 2011년 7월 11일부터 나흘간 전국 19개 지역MBC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956명이 응답한 '전 사원 긴급 설문조사 <사명 변경!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서 '서울에 예속되어 지역 자율성이 사라진다'(40%), '오히려 지역MBC의 브랜드 가치가 사라지게 된다'(33%)는 이유로 88.5%의 구성원들이 압도적인 반대의견을 표명했고 결국 무산되었다. 서울MBC보다 먼저 설립된 우리나라 민방의 효시 '부산문화방송'이라는 이름도 순식간에 사라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지역MBC 사장들의 의견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충성 경쟁 제물된 MBCNET

 2011.03.22 MBCNET 주총 투쟁 사진.

2011.03.22 MBCNET 주총 투쟁 사진. ⓒ 언론노조 MBC본부


이에 앞선 2011년 3월 16일 열린 ㈜지역MBC슈퍼스테이션 이사회에서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슈퍼스테이션 이사인 지역MBC사장들이 서울MBC 출신의 유기철 전 대전MBC 사장을 MBCNET의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한 것이다. MBCNET에는 서울MBC의 지분이 단 1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MBCNET 이사진은 지역MBC 사장이고, 그 사장들은 서울 MBC 사장이 임명한다는 이유로 그 입김이 뻗친 것이다. 지역MBC 구성원들의 반발은 그 어느 때보다 극에 달했다.

MBCNET은 지역전문채널로 프로그램공급업자(PP)이다. 지난 2005년, 방송권역의 한계로 인해 지역에 국한된 수준 높은 지역 프로그램의 전국적인 2차 유통과 그것을 통한 선순환 구조의 확보를 목적으로 탄생한 채널이다. 설립을 준비하던 초기 단계에는 중앙에 집중된 방송문화를 비판하고 지역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 다양성을 구현하겠다는 목적으로 '지역MBC 종합편성PP'를 목표로 하기도 했다. 강력한 뉴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드라마 콘텐츠의 자체 제작까지도 고민했던 당시로써는 논의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도된 바 없었던 종합편성PP에 대해 당시 방송위원회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형국이었다. 방송위 차원의 종편PP에 대한 토론회까지 수차례 열었을 정도이니 방송가에 던진 파문이 작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편채널의 의무전송이라는 위협적인 조건은 서울MBC의 강력한 반대로 이어졌다. 당시 MBC 최문순 사장은 흔쾌히 동의하였으나 서울MBC의 고위직에서 반대의견이 터져 나왔다. 반대 논리는 대부분 '종편을 지상파에 허용해 주는 사례가 생기면 지역MBC에서부터 물꼬가 너무 쉽게 트이는 꼴이 된다'였고, 내부적으로는 또 다른 경쟁자로서의 지역MBC종편PP를 우려했던 속사정도 있었다. 결국 지역MBC종편PP의 설립은 좌절되었고 '종합편성을 지향하는 지역전문채널'로 방향전환을 하게 이른다.

설립 당시 19개 지역MBC와 스카이라이프가 각 1억 원씩 출자해 총 20억 원의 자본금으로 지역MBC 슈퍼스테이션을 출범시켰고 2007년 1월 12일 MBCNET을 개국한다. 안정적인 런칭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지상파 출신이 아닌 케이블 채널에서 잔뼈가 굵은 분을 초대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지상파 경험만으로는 출범 10년을 넘긴 케이블 사업자들을 따라가기에 후발주자로서 역부족이기 때문이었다. 드라마와 예능, 스포츠 등 일부 특정화된 콘텐츠 이외에는 플랫폼 진입 자체가 어려운 전문PP 시장의 경쟁에서 지역 프로그램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했기에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채널 사업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지역에 대한 애정과 지역방송인이라는 사명감이 필요했던 자리였기에 런칭 단계를 지난 시기 역시 지역 지상파 출신 대표를 선임했다. 지역MBC 슈퍼스테이션의 이사와 감사 역시 지역MBC 사장들 중 선임되었고 지역MBC가 생산해 놓은 콘텐츠를 케이블과 위성, IPTV 등의 플랫폼을 통해 2차 유통하면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콘텐츠로 어려운 방송 환경에 맞서 나갔다.

하지만 정권에 의해 낙하산으로 내려왔던 김재철 전 MBC사장은 서울MBC의 지분이 1원도 없던 MBCNET의 대표까지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자리'로 이용했다. 3대 대표이사에 유기철 전 대전MBC사장(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을 선임했고, 2014년부터는 김재철 전 사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정경수 전 MBC경남 사장에게 '자리'를 줬다. 급기야 올해 3월 주총에서는 최승호 PD를 포함한 < PD수첩> PD 6명을 타 부서로 전출시켜 MBC < PD수첩>을 무력화시킨 방송장악의 핵심 윤길용(전 서울MBC 시사교양국장, 전 울산MBC 사장)을 사장에 선임했다. 윤길용 MBCNET 사장은 최근 국정원 방송장악 문건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기도 한 인물이다.

지역에 바탕을 두고 지역에 대한 애정과 이해,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지역전문채널 대표 자리다. 하지만 그 자리에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의 하수인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왔고 심지어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MBCNET의 이사와 감사로 재직했던 자들 역시 지역MBC의 사장들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서울 사장들에게 충성을 다 바친 인물이었지 지역방송을 고민해본 자들은 아니었다. 지금도 대표이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윤길용 사장은 국정원 방송장악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고, 울산MBC 사장 재직시 안광한 전 MBC사장과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에게 업무추진비로 뇌물까지 바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자들이 아직도 지역MBC에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다. 적폐는 결코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 기자 부족하자 "지역MBC 기자 서울로 올리라"  

 2012.05.02. 지역 기자 차출 시도.

2012.05.02. 지역 기자 차출 시도. ⓒ 언론노조 MBC본부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012년 김재철 퇴진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MBC 노동조합의 총파업 투쟁이 몇 달째 이어지던 때였다. 1년짜리 임시직 기자였던 시용 인력들로 조합원들의 공백을 채워가던 서울MBC는 지역MBC로 '지시'를 하달한다. 이는 '서울의 기자가 부족하니 어떻게든 끌어모아 뉴스를 제작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위기만 모면하면 된다'라는 김재철 전 사장 특유의 일회용 단기처방이었다.

4월 24일 지역MBC 사장단회의에서 내린 김재철 전 사장의 지시에 따라, 이진숙 당시 기획조정본부장은 지역MBC 사장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지역MBC 사장들의 대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이미 경력 기자 1명을 파견한 MBC경남은 한숨 돌린 상황이었고, 인력도 없는 상황에 서울의 압박이 강하면 어쩔 수 없지 않겠냐는 반응도 있었다. 춘천MBC 김재형 전 사장이나 목포MBC 김성수 전 사장처럼 "지금 서울로 차출 가면 기자 인생 망가진다"는 소신 발언으로 반발한 사장도 있었지만, 대전MBC 김종국 전 사장처럼 비조합원 고참 기자 한 사람을 찍어 놓고 보도국장을 통해 해당자를 압박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기자 차출에 동조한 이도 있었다.

당시는 서울MBC가 1년 계약직 취재기자 및 PD 등 총 30여 명을 채용한다고 공지한 가운데 언론사 입사 준비생들이 'MBC 입사 거부'를 선언해 주목받던 시기이기도 하다. 예비 언론인들조차 'MBC 땜질 입사를 거부하는 언론사 시험 준비생들의 선언'을 발표하던 때에, 당시 지역MBC 사장들은 서울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지시'에 반발하기는커녕 눈치 보기로 일관했다. 노동조합은 소신 없고 무능한 지역MBC 사장들을 향해 'MBC뉴스와 지역MBC 경쟁력을 파괴하는 위해행위(危害行爲)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지역MBC 사장들은 당시 지역MBC사장협의회 대표였던 안동MBC 이윤철 사장에게 취합된 의견을 서울로 올리는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해 보자는 것이었다.

 2012.09.10 지역MBC 자율경영 망살책동 규탄 기자회견

2012년 9월 10일, 언론노조 MBC본부는 김재철 사장이 지역MBC 자율경영을 말살하고 있다며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언론노조 MBC본부


반발에 부딪혀 당시 지역 기자 차출 시도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파업이 지속되면서 서울MBC는 '경력기자 채용'이라는 방식을 통해 지역MBC의 기자 상당수를 빼내 갔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서울MBC에 올라가 전국부 데스크나 해외 특파원 등의 요직을 차지했고, 국민과 시청자들을 외면하는 정권홍보방송의 부역자가 되었다.

지난 9년여 동안 지역MBC는 철저히 농락당해 왔다. 국정원이 기획하고 언론부역자들이 실행했던 방송장악 농단에 무너져 내렸다. 비열하고 천박한 자들의 지역MBC 장악시도에 약한 고리 곳곳이 터져나갔다. 중앙 집중적인 사회구조에 지역분권은 생각지도 못한 채 정권의 나팔수들이 쏟아 놓은 낙하산들은 우리 사회 지역 곳곳을 피폐하고 척박한 땅으로 만들어 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MBC의 언론노동자들도 시대에 부응해 가려 다짐하고 있다.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지역MBC 역시 제 자리를 찾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 강병규 PD는 1996년 안동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2005년~2007년까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직국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2011년~2012년은 MBC본부 안동지부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면서 김재철 퇴진을 위한 총파업 당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습니다.


지역MBC 잔혹사 지역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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