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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년분류심사원 정문
▲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정문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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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사건 등 지난 9월 초에 발생한 10대들의 잔혹한 폭력사건 이후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대체로 즉각적이고 격렬했다. 논점은 다음과 같다.

1. 보호처분, 10호 처분(소년원 장기 2년)도 비행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비해 너무 가볍다.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더욱 무거운 처분이 필요하다.

2.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이다. 사람은 2년 만에 바뀌지 않는다. 관용없는 엄벌만이 해답이다.

3. 요즘 아이들은 매우 영악하기 때문에 만 14세 미만은 살인, 강도, 강간 등의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다. 따라서 소년법을 폐지해서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만 14세 미만의 초등학생까지도 형사 처벌하여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

소년부 판사, 범죄심리학자, 교수, 보호직 공무원 등 전문가들의 견해는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과 대체로 일치한다.

1. 형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지 않는다. 소년법 폐지와 형벌 강화보다 청소년 범죄 예방이 더 중요하다,

2. 소년범들이 건전하게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고 복귀할 수 있도록 보호처분을 활성화, 실질화, 다양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3. 소년범죄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점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므로 단순하게, 한 방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기성세대의 각성과 성찰, 지속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소년3' 이야기

'소년3'의 꿈은 요리사였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절실했다.
 '소년3'의 꿈은 요리사였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절실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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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년분류심사원 상담실에 앉은 '소년3'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비행명은 '특수절도'와 '환각물질흡입'. 친구들과 마트에서 담배를 훔치고 모텔에서 본드를 흡입했다. 어머니는 소년3이 3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 중이다. 소년3의 할머니는 건물 청소와 식당일을 하면서 소년3을 홀로 키웠지만, 소년3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동네 노는 형들과 어울리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가출해서 생활비가 떨어지면 절도를 일삼았다.

장래희망은 요리사, 꼭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다.

"할머니가 혼자 저를 키우셨어요. 근데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끼니 때마다 제 밥상을 꼭 차려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른이 되면 요리사가 돼서, 할머니한테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 거예요."

보호처분은 거리를 헤매던 아이들의 주머니를 뒤져 훔친 장물을 저울에 매달아 벌주는 것이 아니다. 소년3이 본드를 흡입하는 이면의 아픔과 환경에 주목하는 것이 소년법의 이념이자 목적이다. 소년3은 담임교사,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상담교사, 전문분류심사관과 함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비행을 진심으로 반성한 후 다시 법정에 섰고, 보호관찰처분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소년3은 전문대학 한식조리학과에 진학했고, 군대를 갔다와서 호텔 한식당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다. 소년3의 할머니는 난생처음 호텔에서 손자가 차린 밥상을 받으셨다.

사건만 터지면 엄벌만 요구하는 사회

지난 기사('법정 대기실서 짜장면 먹는 아이들, 무슨 일이?')가 나간 이후 '비행청소년, 가해자들을 옹호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필자는 비행청소년들을 '미화'하거나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기사를 쓴다. 특정 사건만 터지면 진지한 사회적 성찰이나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위한 토론 없이 엄벌만을 요구하는 언론과 대중들에게 '팩트'를 알리는 것이 기사의 목적 중의 하나다.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이나 부산 여중생 사건처럼 치밀하고 계획적인 살인사건이나 흉포하고 지속적인 폭력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와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은 당연한 것이다. 법무부는 소년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현행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고, 미성년자유기, 살인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소년부 송치를 제한하고 형량을 상향 조정하는 등 청소년 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엄벌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법감정을 고려한 법률 개정이다.

만약, 강력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형사 처벌하기 위해 소년법을 폐지하는 극단적인 방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단순 절도 등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도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아이들이 한 번의 비행으로 교정·교화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가정법원 소년부 법정에 서는 범죄소년은 연간 4만여 명이다. 연간 4만여 명의 소년범을 수용하기 위해 몇 개의 교도소를 새로 지어야 할까?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학부모가 무릎을 꿇는 나라에서 교도소가 들어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정작 문제는 어른에게 있는데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소년원 송치처분 기간을 세분화하는 소년법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 최단기(1개월), 단기(6개월), 장기(2년)으로 나뉜 소년원 송치처분이 소년범에게 충분한 교화의 기회를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그 기간을  최단기(1개월), 단기(6개월), 중기(2년), 장기(5년)로 세분화하고 중기와 장기는 법원 결정으로써 상한 내에 기간 연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은 소년범의 교화를 위한 수용시설의 증설과 인력 증원을 전제로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개의 소년원과 1개의 소년분류심사원이 있는데, 대부분이 정원을 훨씬 초과한 과밀수용으로 교정·교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의 성인범죄로 인해 발생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일부로 소년원 증설과 전문인력의 증원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 또한 사회적으로 다소 혐오도가 있는 시설이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년원에 재원 중인 보호소년의 70%는 결손가정, 가정이 해체된 아이들, 무의탁자다. 유년시절의 가정폭력이나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로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품행장애 등의 정신질환으로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상당수다.

학교는 이들을 문제학생으로 규정하고 폭탄돌리기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으로 만드는 데 급급하다. 가정에서 탈출하고 학교에서 퇴출된 아이들은 거리를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만,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등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는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에게 술과 담배, 유흥업소를 제공하는 자들은 물론 어른들이다. 밤거리를 헤매는 소녀들과 조건만남을 통해 욕망을 채우는 자들도 대부분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이 있는 기성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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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 있는 그들이건만... "우리집 주변은 안 돼요"라니

소년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가두라' '혼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게 최선일까.
 소년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가두라' '혼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게 최선일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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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 늘 함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심리학자 마샤 스타우트의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나 비행청소년들을 마주치고 있다. 식당, 주유소, 편의점, 배달 오토바이, 물류센터...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지만, 주변인으로서의 소외와 상실감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비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소중한 꿈'이 있다. 요리사, 사회복지사, 경찰, 자동차 정비사, 유치원 교사, 직업군인, 청소년 상담사...

아이들은 자신들처럼 방황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이끌어주고, 소외된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도덕과 윤리, 자존감이 채 수립되기도 전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생존이 시급한 환경에 내몰린 아이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의 문제일까?

'범죄소년' 혹은 '비행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렇게 말이다.

'싹수가 노란 아이들은 교화의 가능성이 없으므로 사회방위를 위해 소년교도소에 격리해야 해요. 소년원 처분도 가벼워요. 형사처벌 연령을 낮춰서 엄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에 교도소가 들어오는 건 허용할 수 없죠.'

'그렇다면 보호처분을 내실화해서 소년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합시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비행예방센터,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 등의 시설 증설과 전문인력의 증원이 절실하겠죠. 하지만 혐오시설이니까 우리집 뒷마당을 내줄 순 없어요.'

두 다른 생각의 교집합은 '그런 시설은 우리집 주변엔 안 돼'다. 이제 그들, '소년'의 이름을 불러주자. 비행청소년들이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보호처분의 활성화 및 내실화가 실현된다면, 소년범죄의 예방과 재범 방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니, 이제 뒷마당의 문을 열어달라.


태그:#소년법, #소년원, #학교폭력, #청소년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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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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