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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날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동조합과 함께 대구시 녹색환경국 자원순환과에 면담을 하러 간 날이었다. 나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나온 환경미화원 산업안전 관련 자료를 가지고 갔다. 다른 공공분야보다, 청소환경분야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의 발생률이 높고 다양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으니 감염과 자상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통계를 내밀었다.

하지만 대구시는 그런 자료쯤은 우리도 알고 있으나 제한된 인원으로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더 위험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부담이 큰 야간수거활동이라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민원이 많아서 불가능 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낮에 수거 활동 하는 것이 민원이 적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는 납득하는 듯 했다. 황당했지만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었다. 심야노동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민원발생이 낮다고 주장해야 설득력을 갖는 참혹한 현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이 가지는 화폐적 가치 뿐만 아니라 위험성도 절하되어 있다. 왜 그럴까? 보통 산업재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물리적으로 위험한 실체가 있을 경우라고 상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도 삼성 같은 대기업을 만나면 한없이 초라해지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다. 하지만 노동의 위험은 대단위 화학공장, 제조업현장, 건설현장에서부터 우리가 단순노동이라고 폄하하기 쉬운 반복 노동 일자리까지 노동이 있는 모든 곳에서 발생한다. 마트의 계산대에서, 병원의 청소업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처한 노동의 위험성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은 너무나 손쉽게 인정된다.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측에는 변호사도 많고, 의사도 많고, 이른바 전문가들이 너무나 많다.

 <보이지 않는 고통> 책 표지
 <보이지 않는 고통> 책 표지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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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번역한 <보이지 않는 고통>(2017, 동녘)을 봐도 그렇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는 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산업안전은 늘 공격받고 있다. 비과학적이라는 편견, 선행연구의 부족, 기업과 언론들의 공격, 정부의 예산 삭감에 노동자들의 안전은 늘 위협받고 있었다.

이 책은 캐나다에서 노동자를 위한 과학 활동을 한평생 펼쳐온 캐런 메싱이라는 과학자의 분투기이다. 70년대 말 한 노동조합의 제안으로 시작된 그의 활동은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이룬 과학자의 업적기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제약 속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과학자의 노력에 대한 일대기이다.

또한 과학자와 노동자의 작고 슬프지만 만남의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끊임 없이 우리가 과학 또는 의학이라고 하는 것에 노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외상과염(테니스엘보라고도 알려져 있는 근골격계 질환)을 테니스를 두 시간쯤 쳐서 생긴 결과라고 자신있게 진단하면서도, 반년간 주당 50시간씩 전선을 잡아당기고 벗겨내는 업무(손목을 자주 매우 세게 젖혀야 하는 일)가 정확히 같은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킬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의사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않는다."(p.223)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계층의 문제에 공감한다. 과학자들이 식당 직원들보다 박물관 방문객에서 더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들은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박물관 피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당 직원들에게 의자를 마련해 줄 수 있도록 하는 연구는 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p.97)

왜 과학자들은 노동자와 노동에 대해서 무감각할 것인가? 저자인 캐런 메싱은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공감격차'(Empathy Gap)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노동자들의 입장이나 처지에서 생각하거나 작업해본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가진 노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기업들은 기업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과학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고통은 언제나 비가시적이며 억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에게 공감하는 과학자들은 더욱더 적어지고, 공감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연구하고 증명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선행연구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과학계와 사회에서 인정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저자의 분투에 감탄함과 동시에 갑갑함이 밀려온다. 높은 노동강도에서 비롯된 고통을 잊기 위해 진통제를 먹다가 중독에 걸린 노동자들, 자신을 위한 인간공학적 연구에 대해 냉소적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건 비록 수많은 거리와 시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치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듯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우리의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먼나라의 이야기이건만, 낯설지 않음이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 나오는 청소노동자의 말처럼 '눈에 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누군가 그랬다. 정치와 예술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공감하는 과학자들의 역할도 그렇다. 책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고통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노동자를 위한 연구기금은 줄어들고 있다. 저자의 경험처럼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학예산은 증액시키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예산은 삭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듯이 노동자들을 위한 연구의 발전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 올 것이기 때문에 공감하는 과학연구프로그램과 연구자, 활동가를 응원해 줄 것을 저자는 요청한다. 이러한 저자의 요청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지혁 기자는 대구참여연대 상근활동가입니다.



보이지 않는 고통 -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느 과학자의 분투기

캐런 메싱 지음, 김인아 외 옮김, 동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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