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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일어난 한 해였습니다. 나라 전체에서는 세계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거대한 촛불 집회가 있었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으며 국정농단의 주역들이 차례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후 헌정 사상 최초로 조기 대선이 실시되었고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이 깊어져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저무는 2017년과 함께 또 다른 역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정리해 봤습니다. 지난 한 해 저와 관련된 사건 중 <베스트 5>입니다.
  
① 충주경찰 헐리우드 액션 피해자 부부, 재심 무죄

첫 번째로 꼽은 <2017년 베스트 5>는 이른바 '충주경찰 헐리웃 액션 피해자 부부 사건'(관련 기사 : 충주 귀농부부 전과자 사건의 잔혹한 전말)입니다. 사건 발생 만 8년만에 이뤄진 10번째 재판 끝에 마침내 재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일입니다.

 박철, 최옥자 부부가 청구한 재심청구서
 박철, 최옥자 부부가 청구한 재심청구서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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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이들 부부의 사연을 알게된 때는 2014년 9월입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연을 한 번만 읽어봐 달라며 청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받아본 자료를 보며 저는 그야말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 부부에게 불행이 닥친 때는 2009년 6월 27일 밤이었습니다. 당시 40대 후반의 박철씨는 충주로 이주하여 귀농 1년 차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유치원 교사였던 부인이 운전하여 과외를 마친 고3 아들을 데리러 갔는데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일단의 경찰들이 상식 밖 음주 단속을 요구했고 이에 박철씨는 무례한 경찰에게 항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찰은 남편 박씨가 자신의 팔을 비틀었다며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하지만 박씨는 경찰의 주장에 반박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이 과정에서 어처구니없게도 같은 사건으로 남편이 2번, 그리고 부인은 1번 기소되는 '괘씸죄'로 고통받게 됩니다. 결국 남편은 모두 4번의 재판을 통해 유죄를, 부인은 공무원 신분이 파면되는 집행유예를 받아야 했습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제보받은 후 저는 2014년 당시 제가 진행하던 팟케스트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렸습니다. 방송을 접한 이들은 '대명천지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경악했고 이러한 분노는 이후 <뉴스타파>를 통해 추가 보도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철, 최옥자 부부와 함께 팟캐 고상만의 수사반장 녹음후 기념사진
 박철, 최옥자 부부와 함께 팟캐 고상만의 수사반장 녹음후 기념사진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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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절한 기원 덕분이었습니다. 2015년 8월 19일, 그러니까 이 사건으로 모두 8번째 재판 선고가 있었던 그날, 청주지방법원에서 박철씨에게 처음으로 무죄가 내려졌습니다. 박철씨가 경찰의 팔을 비틀지 않았다는 선고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어진 이후 대법원에서도 무죄. 박철씨 부부는 이에 따라 지난 4월 재심을 청구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1월 27일이었습니다. 청주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이 사건 재심 1심 재판에서 감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전날인 27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재판이 꼬박 밤을 새고 28일 새벽 5시 50분을 맞이했습니다. 이때 국민 배심원 평결로 이 사건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결과는 배심원 7명의 전원일치 무죄 평결. 이에 따라 판사는 배심원의 평결을 존중하여 무죄를 선고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괘씸죄는 여전합니다. 기뻐하던 이들을 비웃듯 검찰은 1심 결과에 불복, 항소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의 고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날, 밤을 새며 이 사건 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제 심정은 그래서 또 달랐습니다. '과연 검찰은 정의로운가'를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낀 하룻밤이었기 때문입니다.

2018년에는 부디 이들 부부의 고통이 끝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이들 부부와 그 자녀들 모두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미소'가 찾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 2017년에 제가 꼽는 첫 번째 뉴스입니다.
  
② 손형주 이병 등 군의문사 피해자의 잇따른 순직 결정

대표적인 군의문사 사건중 하나로 꼽히는 김훈 중위가 사건 발생 만 19년 만에 순직 결정을 받았습니다. 지난 1998년 5월 천주교 인권위원회 상근활동가로 일할 당시 우연한 계기로 알게된 후 맞이한 기쁜 소식입니다. 허원근 일병 역시 지난 4월 순직 결정을 받았습니다. 만 33년 만의 일입니다.

 허원근 일병 아버지 허영춘 님
 허원근 일병 아버지 허영춘 님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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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많은 분들에게 분노로 기억되는 그 사건, 손형주 이병 역시 지난 11월 24일 국방부로부터 순직 결정을 받았습니다. 사건 발생한 2011년 3월 이후 무려 만 6년이 지나서야 이뤄진 결과입니다. 처음 <오마이뉴스>를 통해 제가 처음 세상에 알린 이 사건은 그야말로 우리 군의 총체적 야만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잔혹함이었습니다. (관련기사 :  "군 입대 석 달 만에 20kg 강제 감량... 결국 사망")

군이 총체적으로 잘못한 사건임에도, 그래서 군 헌병대 조차도 그 책임을 인정했는데도 순직 심사기구가 손 이병 3년 탈상일에 최종 순직 기각 처리한 사건. 그날 아들의 탈상일에 이 소식을 듣고 그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로인해 손형주 이병의 부모님이 겪은 고통은 또 말로 다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손형주 이병이 2018년 1월 6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됩니다. 의무복무를 위해 군에 보냈던 장남을 만 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떠나보내는 부모님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러 저 역시 그날 안장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한편 이외에도 여러 군의문사 사건에서 순직 결정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난 5월 1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순직 심사에서 단 한 건의 기각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유족 입장에서, 그리고 사망 군인의 입장에서 순직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인권 친화적인 정부로 교체한 덕분입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촛불을 들어준 여러분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③ '그 유명한' 변희재와의 3년 민사소송, 최종 승소

2017년의 문을 여는 2월 20일이었습니다. 저로서는 힘들고 괴로웠던, 그래서 애타게 기다렸던 소식이 거짓말처럼 전해져 왔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3년 전인 2014년 11월의 일이었습니다. 이날 저는 '그 유명한' 변희재씨와 관련하여 기사를 하나 썼습니다. 이게 사달이 나고 만 것입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변희재씨가 직원을 고용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고용노동부가 조사후 변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입수한 공문서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실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게 쓴 것입니다.

예상처럼 저는 이후 변희재씨로부터 제기된 민형사 소송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변씨가 자신이 가진 매체 등을 통해 제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거명하며 각종 소송을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담담하게 대응했습니다. 이후 형사 고소는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아 빠른 시간내에 종결되었습니다.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된 것입니다. 문제는 민사소송이었습니다. 이때 참 많은 분들이 저에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모두가 다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과 소송을 관련한 조언을 주고 받으며 법적 대응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민사소송 1심에서 제가 이겼습니다. 재판부는 제가 쓴 기사가 공익적 목적이 있다며 "임금체불 부분은 사실과 다르지만 기사 중심 내용은 변씨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됐다는 것으로 객관적 사실과 맞다"며 제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또한 제가 쓴 기사를 트위터로 공유했다며 변씨로부터 저와 함께 소송당한 코미디언 김미화씨 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변희재씨는 기사를 쓴 저와 오마이뉴스사에 대해서만 각각 5000만 원씩 총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항소를 다시 합니다.

1심 판결 후 별일 있겠나 싶었던 이 사건에, 그러나 긴장감이 닥쳐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이번에는 변씨 주장이 인정된다며 둘이 연대하여 2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선고된 것입니다. 재판부는 "임금 체불 혐의가 사실이 아닌데도 썼다"며 이는 "고씨 등이 변씨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려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며 변씨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판결이 내려진 후 그 당황스러움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습니다.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고난 후 저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2심 선고 내용이 그간의 대법원 판례와 동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또 긴박감 넘치는 시간이 지나가던 바로 올해 2월 20일, "기쁜 소식"이라며 오마이뉴스로부터 벨이 울렸습니다.

"방금 전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깨고 원고(변희재)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다시 돌려보내라는 선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며 "기사 표현 방법이나 어휘 등 전체적으로 살펴보더라도 그 내용이 악의적이거나 경솔한 공격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사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위법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4일. 서울 고법으로 파기 환송되었던 이 사건에서 저는 마침내 3년 만에, 그리고 모두 4번째 재판 끝에 최종적인 원고(변희재) 패소 결정을 받아냅니다. 그날 변씨가 대법원에 상고를 포기함으로서 소송이 완전히 끝났기 때문입니다. 변씨와의 '역사적인 민사소송'은 이렇게 제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쓰면 소송 당한다'는 공부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하튼 변희재와 이어진 3년간의 소송을 최종 마무리한 사연, 제가 꼽은 올해 중요한 사건 세 번째입니다.
  
④ 연극 '이등병의 엄마', 대한민국 장성들을 울리다

2017년 5월 18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서울 대학로에서 한 편의 연극을 개봉했습니다. 바로 <이등병의 엄마>입니다. 군의문사 유족들의 사연을 소재로 실제 유족 9분과 전문배우가 함께한 이 연극은 연이어 기적같은 일을 만들어 냈습니다.

2016년 11월 1일, 다음 스토리펀딩과 오마이뉴스에 공동 게재하며 연극 제작비를 모았습니다. 이 호소에 2800여 후원자가 국내외를 넘어서 화답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 연극협회장 출신의 박장렬 감독님 도움으로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서울 대학로에서 11일간 모두 14회 공연될 수 있었습니다.

 이등병의 엄마
 이등병의 엄마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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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 언론 시사회가 있었던 올해 5월 18일, 저는 "이 연극을 누가 꼭 봤으면 좋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영부인께서도 아드님을 군에 보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심정으로 김정숙 여사께서 이 연극을 보러 오셔서 이 군의문사 유족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터무니없는 욕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만 꿈이 기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5월 22일, 공연이 시작되고 8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께서 정말 거짓말처럼 낡고 허름한 지하 1층의 연극 공연장을 찾아와 주신 겁니다. 경호원과 비서관만 대동한 채 아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보러 와 주신 것입니다. 그날의 그 고마움은 제 인생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이후 또 다른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영부인께서 방문해 주신 이후 군의문사 유족의 초청에 송영무 국방부장관님이, 그리고 서주석 국방부차관님이 공연을 관람하러 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지난 10월 10일에는 우리나라 군의 총 본산인 계룡대에서 육·해·공군 참모총장의 초청을 받아 이 공연이 열렸습니다.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그 휘하 영관급 장교 700명이 꽉찬 무대에서 군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그 억울함을 외치며 울었습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그리고 그 아들들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외침에 영관급 장교와 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내 공연이 끝난후 그 정적을 뚫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을 필두로 모든 참모총장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영관급 장교 700여명이 모두 일어나 이 어머니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국방부로 달려가 한번만 만나달라며 애원해도 철문부터 걸어 잠그던 군이었습니다. 그 철문을 어머니들이 부여잡고 울면 안에서 후려치며 잔인하게 대하던 이들이 그동안의 군이었습니다.

 10월 10일 계룡대에서 있었던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후 다과회. 김용우 육군 참모총장님이 인사하고 있으며 좌우로 해군과 공군 참모총장.
 10월 10일 계룡대에서 있었던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후 다과회. 김용우 육군 참모총장님이 인사하고 있으며 좌우로 해군과 공군 참모총장.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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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면 맞은 손가락이 아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울던 어머니들이 이번엔 그 군인들의 기립 박수에 모두가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날 이어진 다과회에서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은 한분 한분의 어머니들 손을 잡으며 다시한번 약속했습니다.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없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책임지는 군대로 거듭나겠다고 했고, 억울한 죽음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하고 대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임기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에 한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공연을 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고마운 분들은 이분들 뿐만이 아닙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에서 외쳤던 염원 법안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9년, 예산 낭비라며 이명박 정부가 해산시켰던 '대통령소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다시 만들어 달라며 연극에서 외쳐 왔습니다. 그런데 그 법안이 현재 국회 국방위 소위를 통과하여 전체회의에 계류중입니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님이 대표 발의해 주신 덕분입니다.

또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님이 대표 발의한 <이등병의 엄마> 법안 역시 고맙습니다.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을 순직 결정하는 '군 인사법 개정안'과 또 이렇게 순직 결정된 병사의 형제 중 한 명은 대체 복무가 가능하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김종대 의원님이 발의해 주셔서 현재 국방위 법안 소위에 계류중입니다. 누구보다 진심으로 유족 분들을 도와주시는 이들 국회의원님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내년에도 그 기적을 이어갈 것입니다. 보다 더 큰 변화로 의무복무 제도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억울하게 죽어가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힘은 바로 2800여 이 연극 후원자 덕분입니다.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제가 꼽은 2017년 네 번째 뉴스였습니다.
  
⑤ 군 적폐청산위, 의무복무중 사망 군인 순직 권고가 수용되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제 오래된' 꿈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군의문사에 관심을 갖게된 때는 지난 1998년의 일입니다. 그때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사건 이후 500여 명의 군의문사 유족을 만났습니다. 제각각 가족을 잃은 사연을 가진 그 분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참혹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은 국가 책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의무복무 제도를 헌법상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국민이 군에 입대했다면, 그 다음엔 국가가 그의 생사를 책임지는 것이 옳다고 저는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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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지난 20여 년간 쉬지 않고 외쳐 왔습니다. 방송을 통해, 그리고 기고와 강연을 통해 '이 당연한 원칙이 수용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위대한 촛불집회로 불의한 권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부하에서 적폐청산을 위한 각 부처별 기구가 출범했고 저는 운이 좋게도 지난 9월 말경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위원회에서 제가 맡은 의제는 '군의문사'와 '인권침해'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있었던 지난 12월 14일, 저는 군의문사와 관련하여 제가 간직하고 있었던 오래된 정책 염원을 국방부에 권고했습니다.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강지원 위원장 이하 9분의 위원과 논의하여 최종 권고안으로 결정된 이날 군의문사 관련 정책 권고는 모두 7가지였습니다.

1) 사인 규명을 위한 '군사망사고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지원
2) 수사의 독립성 확보 등 군 수사기관 결과 제고 방안 마련
3) 미인수 영현 등 군의문사 군인의 우선적 순직 여부 심사
4) 타 국가기관에 의한 군인 순직권고 전면 수용
5) 보훈신청 업무 원스톱 처리 시스템 구축
6) 유족연금, 전우사랑 위로금 보상 제한제도 전면 개선

이 하나 하나가 사실은 그동안 군의문사 유족들이 가장 요구해온 정책이었습니다. 특히 5번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국방부로부터 어렵게 순직 결정을 받고도 다시 유족은 국가보훈처에 신청서류를 다시 만들어 보훈 심사를 요청해야 했습니다. 이때마다 행정절차도 잘 모르고 또한 사망한 아들의 자료를 다시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족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이런 업무를 군이 대리하여 한꺼번에 처리하도록 개선한 것입니다.  유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한 결정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뛰어 넘는 정말 중요한 권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일곱 번째 권고였던 '의무복무 중 사망한 사병은 기본적으로 순직 처리하고, 그 유해를 현충원에 안장한다'입니다. 이 권고를 준비하며 사실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정말 이 선언이 국방부에 의해 최종 수용될 수 있을까.

그런데 마침내, 이 선언이 국방부 기자실에서 대변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브리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에서 의무복무를 위해 입대한 군인은 그 명예를 국가가 책임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병사들의 생사를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은 '자살로만 처리하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표리부동이 명백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무조건 군이 책임지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징병도 이전보다 더 신중하게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징병한 군인이 입대후 어떤 경우에도 죽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이전처럼 자살이면 괜찮은 것이 아니라 자살이든 타살이든 '무조건 죽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는 군의 책임성이 마침내 구현되는 역사적 결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20년간 제가 주장해온 이 정책이 마침내 국방부에서 공식 수용된 감격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꼽은 2017년 최고의 뉴스입니다.

이 모든 기적, 2017년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온 이 성과를 2018년에는 더욱 풍성하게 이어 가겠습니다. '꿈이 꿈으로만 끝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길, 이제 여러분들과 또 다시 가겠습니다. 2017년,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모두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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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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