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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이건 기자는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소방서 선임소방검열관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현장의 모습.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현장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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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앤스파' 화재는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총체적 부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가슴 아픈 역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번 화재는 제천소방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재난이었다. 그동안 많은 사상자를 냈던 사고들을 보면, 가장 나쁜 요인들이 모여 최악의 결과를 가져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사상자를 낸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현재 여러 가지가 지목되고 있다.

우선은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건물의 구조적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1층 필로티 구조, 건물 내부 방화 구획의 적정성 여부, 드라이비트 마감재 시공 등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건물관리 소홀 및 미흡한 소방점검이다.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시설인 스프링클러가 폐쇄된 점과 유사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 앞에 온갖 장애물을 비치해 놓아 2층에 있던 사람들이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하게 만든 부분이 그 방증이다. 또한 2층의 경우 여성사우나라는 특성상 소방점검 업체의 검사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는 건물 앞 불법 주차된 차량, 화재가 발생했던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2톤 용량의 LPG 탱크도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됐다.

결과적으로 29명 사망자 발생이라는 대참사에 초동대응이 부실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쏟아졌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동안 많은 소방관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다치면서도 국민이 거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대한민국의 재난 현장을 지켜 왔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소방관을 마치 영화 속 슈퍼맨과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소방서의 적은 인력과 노후된 장비는 안중에도 없고, 안전을 위한 투자와 노력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저 안전한 사회에 '무임승차'하려고만 했다.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불이 자주 나지 않으니 소방관을 더 충원하기보다는 소방을 과학화해서 인력을 배치하면 된다는 뜬구름 잡기식의 무책임한 발언들도 수시로 늘어놓았다.

이번 제천 화재의 원인은 그동안 국가가 방치해 왔던 소방관 충원문제, 노후된 장비교체 문제, 그리고 소방을 지방사무라며 지방자치단체에 묶어 두어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또한 경제논리에 현혹돼 안전보다는 규제 완화라는 어리석은 영리함 앞에 사람들의 안전을 타협했다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 될 것이다.

여기에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이중적인 해석도 문제다. 내가 불편하면 안전은 불필요한 겉치레가 되고, 내가 필요할 때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안전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해석도 한몫하고 있다.

주민들의 민원이 두려워 현장 활동을 가로막는 불법 주차 차량도 마음껏 치우지 못하는 나라, 인명 수색을 위해 부순 문을 물어내라는 막무가내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의 소방관들은 너무 많은 제약과 한계 속에서, 좌절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2층 사우나 창문을 개방하는 일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현장 지휘관의 몫이다. 비록 그 판단이 시민들의 기대치에 어긋난다고 해도 전문 영역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아주 오래 전 화재진압을 하고 있던 필자에게 한 시민이 다가와 "나도 한 번 불을 꺼 보면 안 되겠느냐?"라며 묻던 일이 생각난다.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혈압을 재라, 빨리 심폐소생술을 해라"라며 훈수를 두던 사람들도 기억난다.

이번 화재사고를 접하면서 4만 4천여 명의 소방관들은 밤잠을 설쳤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시민의 눈물과 죽음이 바로 소방관의 눈물이고 아픔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소방관도 그런 눈물과 아픔을 원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번 화재사고로 희생되신 분들과 그 유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건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소방서 선임소방검열관
 이건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소방서 선임소방검열관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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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이건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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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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