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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전야인 24일, 제천 시내에 비가 내리고 있다.
 성탄절 전야인 24일, 제천 시내에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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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제천체육관에는 종일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제천체육관에는 종일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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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제천은 종일 비가 내렸다. 화재가 남긴 상처와 슬픔은 시민들 가슴 속에 잿더미처럼 겹겹이 쌓였다.

해진 고즈넉한 제천 시내는 성탄을 알리는 반짝이는 불빛도, 캐럴도 멈췄다. 대신 거리마다 대형 참사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거리 펼침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초저녁인데도 음식점 대부분이 불이 꺼지거나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제천 시내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A씨는 "이런 분위기에서 연말 모임을 하겠느냐"며 "남의 일 같지 않아 문을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횟집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은 "바닥이 좁아 숨진 사람들이 서너집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며 "내 친구의 부인도 이번 화재에 그만 목숨을 잃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어제와 오늘 이런저런 모임이 있었는데 모두 취소하고 연일 빈소만 다녀왔다"고 말했다.

실제 제천체육관에 설치된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길게 늘어선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며 몇 걸음에 한 번씩 걸음을 멈춰야 했다. 추모객들이 대부분 여러 사람의 희생자와 인연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은 "여기에 안치된 희생자 중 다섯 분이  잘 아는 사람"이라며 희생자 영정을 가리켰다. 이어 그는 "이게 무슨 난리냐"고 말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캐롤도, 성탄 불빛도 멈춘 거리엔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캐롤도, 성탄 불빛도 멈춘 거리엔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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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현장 주변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화재 현장 주변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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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19명의 희생자 영결식이 엄수됐다. 반면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세 명의 희생자 빈소가 새로 마련됐다. 병원마다 빈소가 부족해 빈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다 늦어졌다.

이날 오후 한 장례지도사가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꾸미던 유가족을 만나러 왔다가 서로 깜짝 놀라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장례지도사가 "어떤 일로 오셨냐"고 묻자 유가족은 영정을 가리키며 "우리 올케"라고 답했다. 해당 장례지도사는 "어떡하냐"며 안타까워하다 "제천 시민 상당수가 유가족"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빈소를 차린 희생자들은 26일 오전 영결식을 가질 예정이다.

화재 현장 주변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주변은 화재 원인을 정밀 조사하기 위해 나온 국과수 관계자와 소방서 관계자, 현장을 통제하러 나온 경찰과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반면 화재현장 부근에 식당과 마트 등이 밀집해 있는데도 오가는 시민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반 시민들의 추모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청주에서 온 송아무개씨(53)는 "큰 화를 입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찾아왔다"며 영정 앞에 흰 국화를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또 다른 시민도 "광명시에서 왔다"며 "다시는 이런 허망한 사고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근규 제천시장이 한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이근규 제천시장이 한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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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충북 제천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스프초센터 화재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부인 장경자씨를 읽은 남편 김인동씨가 오열하고 있다.
▲ 오열하는 제천화재 희생자 유가족 24일 오전 충북 제천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스프초센터 화재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부인 장경자씨를 읽은 남편 김인동씨가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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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뒤늦게 빈소를 차린 고 정희경씨의 남편 윤창희씨는 부인과의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사고 당일 아내가 오후 4시 1분께 처음 전화를 해 '2층에 있는데 건물에 불이 났다'고 하더군요. 조금 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와 '연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빨리 유리창을 깨 달라, 얼른 꺼내 달라'고 하소연했어요. 제가 119에 전화를 해 얼른 2층 유리창을 깨 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어요. 그때가 4시 7분이에요.

제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4시 17분입니다. 그런데 소방관들이 유리창을 깰 생각조차 않더군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왕 좌왕만 하더이다. '얼른 2층 유리창부터 깨 달라'고 했더니 아예 접근을 못 하게 해요. '내가 깨겠다'며 출입구 쪽으로 달려가니 '나가시라'며 잡아끌어요. '내 아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댁 같으면 나가겠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여전히 소방관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중간에 물도 떨어지고……."

잠시 침묵하던 그가 다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소방 인력이 좀 많았다면, 장비가 좀 더 좋았다면 불도 끄면서 동시에 유리창도 깨면서 구조 활동을 했겠죠. 그럼 이렇게 죽어 나가는 사람은 없었겠죠. 누굴 탓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인력도 늘리고 장비도 개선하고, 매뉴얼도 만들고 해서 우리 아내와 같은 허무한 죽음은 마지막이 됐으면 합니다…."

남편 윤씨는 중학교 3학년인 외동딸과 빈소를 지키며 간간히 고인의 영정을 올려다보았다.

저녁 7시 30분. 성탄절 전야인 제천은 여전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제천은 지금 비에 젖고 슬픔에 젖어 있다.

합동분향소에 한편에 남긴 유가족들의 슬픔
 합동분향소에 한편에 남긴 유가족들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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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천화재, #희생자, #영결식, #화재원인, #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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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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