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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젤> 1막이 끝나자마자, 오른쪽 뒤편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젤> 1막이 끝나자마자, 오른쪽 뒤편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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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나게 못생겼네, 지젤이!"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젤> 1막이 끝나자마자, 오른쪽 뒤편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큰 남자 목소리가 극장의 음향학적 설계 덕에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특히 그가 힘주어 내뱉은 'X'이 묘한 공명을 만들어 냈다.

그날 지젤 역을 맡은 예카테리나는 널리 사랑받는 탁월한 무용수였고, 앞의 '10자평'이 나온 시점은 실연으로 넋을 잃은 지젤이 쓰러져 막 숨을 거둔 순간이었다. 곧 남자 옆에 앉았던 일행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동료들과 함께 러시아로 여행 온 듯했는데, 그는 무용수의 외모를 집중 조명하는 '공연평'을, 그것도 걸쭉한 언어를 동원해 늘어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낯선 환경은 타인의 마음을 '날 것' 그대로 관찰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학 교정을 걷고 있는데, 익숙한 투의 말이 들려왔다.

"와, 저거봐... 다 벗고 누워 있네."

초여름이었고, 교정의 푸른 잔디에 학생들이 담요를 깔고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그중 꽤 많은 이들이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여학생 몇 명은 상의 비키니 끈을 푼 채 엎드려 누워 있었다. 일광욕을 하면서 등에 수영복 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강간해 달라는 거야, 뭐야?"

남자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옆에서 걷던 친구가 그 '농담'을 웃음으로 받았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가 '원정 재생산'되는 순간이었다. 앞의 상황은 온라인 대화방에서 자주 일어나는 성희롱 발언의 '실사판'이라 할 만했다.

"가슴만 만져도 리스펙"
"예쁜 애 있으면 술 먹이고 쿵떡쿵"
"맞선 여자 첫 만남에 강간해 버려 ㅎㅎ"
"시XX나 섹스하자! 라고 해라 싸XX 꼭 갈기고"


'마음 통하는' 친구들과 익명의 공간에 있다고 믿는 순간 이처럼 '진솔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온다. 발언들이 외부에 드러나면, '농담이었다'거나 '친한 사이여서 그랬다'는 항변을 해명이랍시고 내놓는다. 학생부터 현직 기자들까지 똑같았다.

강간이 농담거리가 되거나 '친목'을 다지는 수단이 되는 상황, 그게 바로 강간문화다.

'여성혐오'와 '강간문화'가 한국에 없다고?

남자들 가운데 '강간문화'라는 말에 극심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본래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화란 되풀이하면서 자연스럽고 당연해진 '생활양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성혐오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강간문화를 인정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꼭 여성을 증오해야 여성혐오가 되는 게 아니듯, 강간범들 사이에서만 '강간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 때문에 오해되기 쉽지만, '여성혐오(misogyny)'란 여성들에 대한 배제, 차별, 무시, 성적 대상화, 물리적·정서적 폭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들이 '여성혐오'다.

'강간문화(rape culture)' 역시 마찬가지다. 강간문화란 성폭력을 가벼이 여기거나 더 나아가 낭만화하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림으로써 여성의 안전과 행복을 위협하는 사회 환경을 뜻한다. 법, 제도, 미디어가 강간문화의 존속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국 마샬대학교의 여성센터는 '강간문화'를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 공포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남성들 가운데 밤거리를 걷거나, 택시를 타거나, 혼자 집에 있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런 일상적 상황에서조차 두려움을 갖고 산다.

그 중심에 강간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이로 인해 여성의 사회생활과 개인의 삶이 위축되고 제약받지만, 남성 다수는 마치 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하며, 심지어 유희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가해자가 속한 집단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때, 그 문제가 지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성폭력이 만연한 상황에서 느끼는 당연함, 자연스러움, 무감각. 이것이 바로 강간문화다.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없을까?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 뒤인 지난 2016년 5월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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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만연한 강간문화

일부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간문화는 꽤 뚜렷한 징후를 갖는다. 마샬대학교는 웹사이트에 강간문화의 전형적 사례를 제시한다.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기 ("당할 만 했네")
*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기 ("혈기 왕성한 남자다 보니")
* 성적인 농담하기
* 성폭력 가해 행위를 눈감아 주기
* 강간 허위신고 통계 부풀리기
* 남성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고, 여성에게 강간 조심하라고 가르치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혐오'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많은 남성들이 이에 대한 논의 자체를 불편하게 여겼다.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2017년 '미투(#MeToo) 운동'으로 '성폭력 침묵 깨기'가 시작되었을 때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런 태도는 강간문화의 전형적 사례에 해당한다. 여성에게 성폭력은 '실재적 위험'인데도,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당한다'는 '기분'의 이유로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여자가 알아서 강간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여성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자 때리기'를 위한 준비 작업이다. 성범죄의 원인을 '조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비난하기'와 '기해 행위에 눈감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한국에서 '강간 허위신고율 부풀리기'는 '꽃뱀'이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다. 이들은 성폭력의 낮은 기소율이 '허위신고'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예컨대 2016년 상반기 성범죄 기소율은 34.5%였고, 아동·청소년 성범죄 기소율은 33.4%이었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미성년자 성폭력 사건의 66.4%가 '아동·청소년 꽃뱀'의 자작극이 되는 셈이다. 강력범죄 가운데 방화의 기소율도 50%미만이니 절반이 '허위 신고'인 셈이고, 폭력범죄 또한 40% 이상이 불기소 처분되니, 이 또한 '허위신고' 때문일 것이다.

폭력범죄의 경우, 남성이 피해자 비율이 65% 이상이다. 이 경우 가해자가 불기소되면, 남성 신고자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구렁이'? 폭력이나 교통사고를 당한 뒤 가해자 측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남성은 '살모사'쯤 될까?

군대의 폭행 기소율은 아예 한 자릿수다. 군대에 뱀이 많아서가 아니다. 집단의 위계적 환경이 신고와 기소율에 지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도,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꽃뱀' 운운하는 기막힌 짓들을 하고, 심지어 언론까지 피해자 때리기에 가담한다.

'명시적 동의법'으로 강간문화를 바꾸자

그동안 5편의 기사를 통해 '명시적 동의법'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동의해야 동의한 것'이라는 기본적 상식에 근거한 것이다. 이미 캘리포니아가 2015년에 입법화했고, 현재 스웨덴이 명시적 동의법 도입 절차를 밟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 사회는 한참 과거에 머물러 있다. 법원은 여전히 '완강히 항거하지 않으면 동의'라는 지난 세기의 판례를 경전처럼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캘리포니아나 스웨덴에 비해 두 단계나 뒤쳐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발전의 모델로 삼는 북미와 유럽 국가들은 강간의 판단에서 '항거'를 폐기한 지 오래다. 상대가 '하지 말라'거나 '싫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성행위는 강간으로 간주된다. 약물이나 알코올 등으로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거나 나이 어린 미성년자는 합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말로 거절하면 강간'에서 '말로 동의하지 않으면 강간'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여성의 성적 결정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여성에게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유익하다.

상대의 의사를 분명히 확인함으로써 오해로 인한 비극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관계가 일방 행위가 아닌 '관계'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 동의법에 관한 기사가 나간 뒤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독자들 사이에 벌써 대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댓글 1: "연애 시 남자가 관계해도 되냐고 물어보면, 이걸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여자는 얼마나 될까요."

댓글 2: "원래 피임 방법이랑 임신 시 대처 방법까지 상의하고 관계해야 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제 주변 친구들은 다 그러던데.."


댓글 3: "원래 관계 전에 관계해도 될까? 피임은 어떻게 할래? 상의하고 하는 거 아닌가요? 분위기로 밀어붙이면 그게 데이트 강간 아닌가요?"

 나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름대로 안전하게 섹스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대개 남자에게 배우는 섹스는 그 자체로 한계적이다.
 그들이 지닌 비현실적 공포는 자신이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을 생략해왔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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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적인 공포... 좋은 관계는 '동의'에서 나온다  

이미 3년 전 명시적 동의법을 통과시킨 캘리포니아의 학교에서도 비슷한 대화들이 오갔다. <뉴욕타임스>는 한 고등학교의 성교육 시간에 학생들이 명시적 동의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관찰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매 순간 허락을 구하는 일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10분마다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거냐"고 한 학생이 묻자, 교사는 "그런 셈이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시작하는 사람이 질문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답한다.

이 교사는 20년간 성교육을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새로 마련된 강간 기준을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했다. 당장 어떤 말로 허락을 구할지부터 애매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토론을 거쳐 "괜찮겠어요?"가 가장 좋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고, 대화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사는 본래 성관계가 항상 매끄럽게 흘러가는 게 아니며, 어색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해준다.

어떤 학생은 성관계 후 상대가 마음을 바꾸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교사는 그래서 '파트너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꽃뱀 공황' 상태에 있는 일부 남성들이 귀담아들을 이야기다. 그들이 지닌 비현실적 공포는 자신이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을 생략해왔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간의 기준을 '항거'에서 '동의'로 바꿔야 하는 이유]
① '꽃뱀론'으로 성폭력을 지지하는 당신에게
② 담뱃불 협박당하고, 싫다고 말해도 '강간'이 아니라고?
③ 성범죄 18~50%가 '꽃뱀 자작극'이라고?
④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저항 안했나" 묻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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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