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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세부터 역사가 이어져 온 프랑스의 문화도시 낭트(Nantes)를 걷고 있었다. 이 도시는 거리만 걸어도 도시에 축적된 문화적 저력이 느껴졌다. 수많은 노천 카페들과 그 안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낭트 시민들이 골목 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낭트 구시가 골목길에는 역사적인 도시의 문화가 흐른다.
▲ 낭트의 구시가 낭트 구시가 골목길에는 역사적인 도시의 문화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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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시가를 중심으로 산책하면서 낭트의 분위기와 느낌을 받아들였다. 이 거리는 정말이지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이 와서 걷고 싶은 그런 거리였다. 나는 구시가를 관통하여 서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한겨울에도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뿜어내는 큰 분수대가 있는 광장이 나왔다. 낭트시 구시가의 중심인 루아얄 광장(Place Royale)이다.

루아얄 광장을 원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8세기 풍으로 재건된 건물들이다. 프랑스 도시들은 항상 시내 중심에 넓은 광장이 있고 이 넓은 광장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는데, 낭트 역시 루아얄 광장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는 분수대 주변을 돌면서 이 도시의 예쁜 분위기를 계속 사진에 담았다.

낭트 구시가의 중심지로 매년 연말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 루아얄 광장 낭트 구시가의 중심지로 매년 연말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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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이 광장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루아얄 광장 주변으로는 그 이름 유명한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성업 중이었다. 작은 가옥 모양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크리스마스 가게가 진을 치고 있었고, 많은 낭트 시민들이 즐겁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마카롱(Macaron) 같은 디저트를 파는 가게들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프랑스만의 운치를 느낄 수 있어서 나도 마카롱을 사 먹으며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초콜릿과 낭트 과자,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 크리스마스 마켓의 먹거리 초콜릿과 낭트 과자,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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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레몬이 들어간 사람 머리 모양의 초콜릿도 사 먹고, 달달한 낭트 특산 과자도 사 먹었다. 역시 커피 한 잔은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즐기는 먹거리 여행이 동양에서 온 여행자를 흥미롭게 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들떠 있으며, 크리스마스가 프랑스인들의 가장 큰 명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루아얄 광장 주변으로는 서양의 건설사에도 이름을 남길 만큼 유명한 건축물들이 줄을 서 있다.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건축물 중에는 놀랍게도 역사적인 쇼핑몰도 있다. 이 건축물은 쇼핑몰로 지어졌지만 백칠십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문화재이다. 이 역사적 건축물의 이름은 파사주 폼므레(Passage Pommeraye)였다.

사람 북적이는 이곳, 알고보니 170년 넘은 문화재
이 파사주 폼므레는 낭트 시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파사주 폼프레는 주변의 위용 있는 중세시대 건물들과도 외관이 비슷하게 어울리고 있어서 건물의 이름을 확인하기 전에는 이곳이 파사주 폼므레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파사주 폼므레는 아름다운 거리 속에 포함되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19세기 초반, 프랑스는 지하공간이 아닌 지상 위 공간에 지붕을 덮어 아케이드로 만드는 건축기법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아케이드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파사주 폼므레는 J.B. 뷔롱(J. B. Buron)과 뒤랑-고슬렝(Durand-Gosselin)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장식이 화려한 루이 필립(Louis Philippe) 양식의 건축물로 지어졌지만 새로운 파사주 폼므레 양식이라고 할 만한 신세계를 열었다.

19세기 유럽 아케이드 건축을 선도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 파사주 폼므레 중앙 홀 19세기 유럽 아케이드 건축을 선도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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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에서 보기 드문 건축 형태였던 파사주 폼므레는 1840년에 첫 삽을 떠서 1843년에 준공하였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프랑스의 대도시마다 이미 이런 아케이드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이 파사주 폼므레는 20년 정도 뒤에 건설된 이탈리아 밀라노의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와 함께 19세기의 유럽 아케이드 건축을 선도한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파사주 폼므레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평범한 건물 외부와는 다른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진행될수록 마치 왕가의 궁전 안으로 들어선 듯했다. 19세기에 지어진 파사주 폼므레 특유의 구조와 형태가 현대의 시각으로 보아도 너무 놀랍기만 하다.

고전적인 장식으로 꾸며진 실내는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웅장한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19세기 중반에 이런 우아한 아케이드를 생각한 것을 보면 프랑스는 역시나 예술적 감성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마치 미술관 같이 이어지는 회랑은 깔끔하고 웅장하다.
▲ 파사주 폼므레 1층 회랑 마치 미술관 같이 이어지는 회랑은 깔끔하고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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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푹 꺼진 듯한 내부 중앙계단 아래로는 3개 층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3개 층을 이어주는 중앙계단이 한눈에 들어오는 내부구조는 마치 굴속으로 들어가는 듯이 드라마틱했다. 아래에서 보나, 위에서 보나 수직으로 상승하는 미감이 너무나 대단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각 층에는 주홍색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강렬하게 인상적으로 반짝거리는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초록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에서 오는 것 같았다. 붉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색상에 대한 이러한 파격도 크리스마스가 전통인 프랑스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후손들이 문화적 역량을 더 키워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유리로 만들어진 천장은 시원스럽게 탁 트여 한낮의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천장이 온통 유리로 되어있다는 것이 건설 당시로써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었다. 석재로 육중하게 막혀있던 천장을 깨지기 쉬운 유리로 바꿔 버린,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이 전환을 통해 어두운 시장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밝은 광장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실제 영화 촬영지였던 쇼핑몰

중앙 홀을 둘러싼 계단 난간에는 노란 나트륨 등에서 약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은은한 불빛은 마치 최근에 설계된 예쁜 미술관 조명처럼 빛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이 조명등에는 마치 낭트의 풍경이 담겨있는 듯했다. 낮을 지키던 해가 지면 이 조명등은 더욱 환하고 강하게 빛날 테니 빛을 받아들이는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잘 지어진 건물이다.

하얀 천사들이 낭트 시를 수호하고 있는 듯 하다.
▲ 소년, 소녀상 하얀 천사들이 낭트 시를 수호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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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등이 달린 기둥에는 우아한 조각상들이 각각 하나씩 세워져 있다. 아름다운 조명등을 등에 지고 있는 것은 모두 어린 소년, 소녀들이다. 수많은 대리석 소년상, 소녀상들이 상반신을 드러낸 채로 중앙 홀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은 낭트 시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품들을 들고 서 있었다. 마치 하얀 천사들이 이곳 낭트 시를 수호하려는 듯 굳은 의지를 가지고 서 있는 듯하다.

파사주 폼므레는 에펠탑이 지어지던 당시 파리의 만국박람회장과 유사한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그래서 최대한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인 것이다. 또한 이 건축물은 밝고 건강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파사주 폼므레를 보고 있으면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옮아가는 19세기 프랑스의 표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다.

파사주 폼므레의 계단을 내려서면서 드는 생각은 언젠가 이곳을 영화 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세련되게 잘 꾸며진 이곳은 영화 세트장보다 더 화려하기만 하다. 19세기가 재현된 영화세트가 아니라 19세기 모습 그대로 보존된 곳에서 촬영되는 영화 무대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 든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전통의 가게들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 파사주 폼므레 가게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전통의 가게들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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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역사만큼이나 유서 깊은 이 아케이드는 역시 프랑스의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이곳은 수많은 영화의 실제 촬영현장이 되었다. 프랑스 영화감독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오랜 세월 전에 <롤라(Lola)>, <하얀 귀부인(La Dame Blanche)> 등의 작품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파사주 폼므레의 중앙 홀을 보고 있으면 영화 세트장보다도 더 영화 세트장 같은 프랑스의 명소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낭트의 압도적인 중세 건축물들 사이에서 19세기에 지어진 이 파사주 폼므레가 비교적 최근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이러니하다. 낭트에서 비교적 젊은 이 건축물이 다른 중세 건축물보다도 더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직도 쇼핑 아케이드로 낭트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건축물은 죽어 있는 유적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도 이용하는 살아 있는 박물관인 것이다.

파사주 폼므레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가게들이 담겨 있었다. 파사주 폼므레의 다양한 가게들은 오늘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 이 19세기의 건축물은 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입주한 가게들이 당대에 맞게 계속 바뀌어 왔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실제 사용되는 건물로서의 놀라운 가치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픈 파사주 폼므레

어릴 적 추억을 소환시키는 가게들에 소중한 우표들이 전시 중이다.
▲ 우표 가게 어릴 적 추억을 소환시키는 가게들에 소중한 우표들이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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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은 가게들이 있지만 나는 역사 오랜 노포(老鋪)들을 찾아다녔다. 그중에는 나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우표 가게도 있었다. 우편물 발송을 위한 우표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 취미로서 수집한 희귀한 우표들을 파는 곳이다. 이 오래된 우표 가게는 낭트의 신문에 게재된 자기 가게 기사를 가게 입구 유리창에 자랑스럽게 붙여 놓았다.

우표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어린 시절 우표를 열심히 모으던 추억이 머릿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 상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우표가 많았는데 프랑스에서도 프랑스 위인들을 기념하는 우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박물관의 유물을 보듯이 우표들을 둘러보면서 고향 집에 두고 온 어릴 적 우표 책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우표를 구경하던 기분으로 한동안 즐겁게 가게 안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많은 찻집을 지나 제일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마치 미술관 복도 같은 긴 회랑이 이어지고 있었다. 회랑 옆으로는 조잡하지 않고 깔끔한 19세기의 간판들이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랑 벽을 연결해 주듯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줄을 지어 머리 위 공간에 걸려 있었다. 나는 내가 쇼핑센터에 들어와 있는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 미술관에 들어와 있는지 시종 헷갈렸다.

나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서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을 대표하는 디저트인 쿤냐만(Kouign Amann)과 함께 낭트 특산과자와 초콜릿을 다양하게 샀다. 특히 쿤냐만은 프랑스 다른 지방에서는 찾기 어려운 디저트여서 이 가게를 지나치면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슈퍼마켓에서도 판매하고 있는 대중적인 디저트이지만 나는 이왕이면 역사 오랜 이 가게에서 쿤냐만을 맛보았다. 버터와 설탕, 그리고 소금까지 섞인 오묘한 빵의 맛은 소박하면서도 신비한 맛이 났다.

다양한 소품이 화려한 프랑스 디자인으로 빛나고 있다.
▲ 팬시 가게 다양한 소품이 화려한 프랑스 디자인으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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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색상이 너무나도 화려한 한 가게도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디자인 강국 프랑스의 명성이 가게 여기저기에서 묻어나는 팬시(fancy) 가게였다. 나는 아내와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아기자기한 잡화와 소품들을 둘러보았다. 우산, 여행가방, 머그잔, 와인 잔, 조명등, 주전자, 우산, 디퓨저(Diffuser) 등 생활 필수품들의 표면이 현란한 프랑스 디자인의 경연장이 되어 있었다.

이 가게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이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인 데다가 제품의 모양과 아이디어도 기발해서 가게 안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아무리 흔하게 보이는 물건이라도 예쁘게 디자인하면 잘 팔릴 수 있다는 마케팅의 명제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곳이다. 이러한 디자인과 건축의 수월성은 프랑스와 같은 문화강국의 오랜 전통에서 나왔음을 이곳 낭트에서 느끼게 된다.

프랑스 건축과 디자인의 저력을 보여주는 명품이다.
▲ 파사주 폼므레 전경 프랑스 건축과 디자인의 저력을 보여주는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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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사주 폼므레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한 나라의 문화를 담은 건축물과 디자인은 세월이 지나도 파괴되지 않고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문화를 담은 기발한 문화재들은 수백 년 세월이 흘러도 현재에 만든 듯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파사주 폼므레를 정말로 눈 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브르타뉴, #낭트, #파사주 폼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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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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