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 뮤지컬 <팬레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히카루' 역을 소화하고 있는 조지승 배우.

지난 11월 2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 뮤지컬 <팬레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히카루' 역을 소화하고 있는 조지승 배우. ⓒ 엄소연


뮤지컬 <원스>에서 뛰어난 바이올린을 연주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매력을 발산하던 레자가 <팬레터> 히카루로 돌아왔다. 약 3년 동안 연극 <엄사장은 살아있다> <백조의 호수> <청춘예찬> 등으로 자신의 내공을 탄탄히 다진 배우. 바로 조지승이다.

<팬레터>는 1930년대 경성 시대 실존하던 '구인회' 단체를 모티브 삼은 작품.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팬레터를 통해 문인을 만나게 된 작가지망생 세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조지승은 히카루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 6일, 조지승을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드디어 이어진 인연

 지난 11월 2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 뮤지컬 <팬레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히카루' 역을 소화하고 있는 조지승 배우.

ⓒ 엄소연


"김태형 연출과 <카포네 트릴로지>로 처음 연이 닿았는데, 시기가 안 맞았다. <팬레터> 리딩 공연 때 출연했지만, 초연 때는 역시 해외에 있어서 출연하지 못했다."

시기가 맞지 않아 출연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쉬울 만큼, 히카루는 조지승에게 딱 맞는 옷처럼 탁월했다, 하지만 조지승은 설렘이나 떨림보다 부담과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캐릭터에 대해 정말 기대가 됐다. 여배우라면 정말 한 번쯤 맡아보고 싶은 캐릭터 아닌가. 다양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고, '누군가의 뮤즈'라는 점도 그렇고. 물론 '뮤즈'라는 것보다 다른 것에 초점을 두기도 했지만, 노래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사실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뮤지컬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원스>는 노래보다 퍼포먼스나 합주가 주였다. 근데 무대에 오르니 정말 재밌더라."

노래 뿐 아니라, 조지승이 또 걱정한 부분이 있었다. 자신감 넘치고 매사에 당당하고 힘 있는 히카루의 면모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관해서다.

"히카루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다. 내가 과연 히카루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준비가 안됐다는 걱정도 앞서고, 부끄럽고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히카루가 돼야 상대도 받아   생각처럼 뻔뻔하지 무대에 오르면 뻔뻔하게 해줘야 상대도 도움이 되니까.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을 수밖에 없는 세훈과 히카루. 서로를 응시하며 하나가 된 안무를 시작으로, 히카루라는 한 인물로 분리된 것으로 그려진다. 조지승이 바라본 히카루는 어떤 인물일까.

 지난 11월 2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 뮤지컬 <팬레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히카루' 역을 소화하고 있는 조지승 배우.

] ⓒ 엄소연


"히카루는 절대 나쁜 인물이 아니다. 세훈과 히카루는 같은 인물이다. 세훈의 아픈 과거, 사랑 받는 것에 자신이 없고, 표현에 약하고. 그런 인물이 원하는 모습으로 탄생한 것이 히카루다. 여인으로 보이는 것은 해진의 시각에서 그런 것이고. '아무도 모른다' 부를 때는 정말 세훈과 한 마음이 된다. 외롭고, 사랑받지 못해 속상하고 쓸쓸한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아프다."

특히 히카루를 향한 의견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하게 세훈의 내면. 즉 세훈이라고만 본다면, 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하게 '흑화냐' 혹은 '아니냐'로 갈릴 수 있다. 조지승이 다가간 지점은 히카루, 인물이 중심이었다.

"히카루로 등장하면 한 몸이지만, 다른 인물이기도 한 것 아닌가. 자신감 있게 리드도 하고, 재능도 넘치고, 분위기를 휘어잡고, 존재만으로 사랑받는 뮤즈로. 누구나 뮤즈를 꿈꾸지만 욕망하는 것에 대해 노력하고 꾸미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영감이 되니 자존감이 생기지 않겠나. 다른 것을 보지 않고 내 글만 보고도 감탄하고 열망하니. 세훈의 자아에 갇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조지승은 히카루가 '누군가의 뮤즈'라는 점보다, 그의 존재에 다가간 것이다.

"뮤즈라는 점보다, 중점을 맞춘 것은 히카루다. 많은 관객이 히카루를 나쁘고..흑화 됐다고 본다. 히카루는 너무나도 순수하고 단순한 인물이다. 그 지점에 끌렸다. '막연히 변해서'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선망하던 누군가의 창작 활동에 힘이 되고, 그 존재 자체로 뮤즈가 되는 인물이 자신의 욕망하는 것을 좇는 과정에서 변모한 것이다.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극 중 히카루는 각혈을 하는 해진에게 펜을 쥐어준다. 어떻게 보면 잔인해보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의 감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만약에 해진 선생님이 기침을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면 히카루도 그러지 않았을 거 같다(웃음). 무대에서도 히카루가 펜을 들면 해진 역 배우들이 눈을 반짝이며, 마치 무언가에 빠진 사람처럼 다가와 글을 쓴다. 히카루는 아마 자신의 행동이 해진 선생님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할 거다.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존경받는 삶이라고 생각하니까."

사랑의 경험, 사랑의 방식

 지난 11월 2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 뮤지컬 <팬레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히카루' 역을 소화하고 있는 조지승 배우.

ⓒ 엄소연


제목이 제목이니 만큼 조지승도 누군가에게 팬레터를 보내본 적 있는지 궁금해졌다.

"다니엘 래드클리프(Daniel Radcliffe)에게 보낸 적 있다. 어렸을 때 <해리 포터>를 보고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귀여운 모습에 반해 정말 좋아했다. 결혼을 꿈꿨다(웃음).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결혼하기 위해 연기를 시작한 거다. 1년 정도 어떻게 결혼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연기해서 함께 촬영을 하면 가능할 거 같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준비를 해 예고(연기과)에 가게 됐다. 영어 사전을 찾아가며 팬레터를 썼는데, 놀라운 건 답장이 온 거다. 중국에 촬영을 간다는 근황과 자신의 사진을 보냈더라. 지금 생각해도 진짜 신기하고 웃음이 나온다."  

누구나 살면서 히카루의 존재를 느낄 법 하다.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행하려고 할 때, 내 자아에 말을 거는 누군가. 시비일 수도 있고 동조일 수도 있지만 불현 듯 떠오르는 그 누군가의 존재가 사상과 생각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지, 히카루로 살고 있는 조지승의 생각은 어떨까.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보다, 갈등이 많고 힘이 들 때, 우울하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책망하게 될 때 나왔던 거 같다. 스스로에게 혼잣말을 하고. 히카루에게 이끌린 것이 아니라, 세훈의 의견과 히카루의 행동이 조율된 거라 생각한다. 세훈이 자신의 모습을 인정했다면 조금 더 괜찮지 않았을까."

그럼, 과연 히카루는 해진 선생님을 사랑했을까. 자신을 뮤즈로 만들어버린 해진 선생님을 향한 히카루의 마음은 어떨까. 세훈의 마음과 같아 보일수도 있지만 그 결은 분명 다르다.

"<팬레터> 리딩 공연 때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대사가 있다.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해. 방식이 다를 뿐'. 히카루도 해진을 사랑한다.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지점은 각자 다르겠지만, 히카루는 해진 선생님이 글을 쓰고, 글을 쓸 때 뿜어져 나오는 눈빛, 에너지를 사랑한 거다. 자신과 교류하는 글을. 인간으로서 성장, 행복한 삶보다, 내가 사랑하는 글을 만들어내는 것. 펜을 건네고 영감을 주고."

 지난 11월 2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 뮤지컬 <팬레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히카루' 역을 소화하고 있는 조지승 배우.

ⓒ 엄소연


오랜만에 선 뮤지컬 무대, 그리고 이루고 싶은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면서 반짝이는 빛을 내고 있는 조지승이지만, 그에게 물어본 '꿈'이라는 단어 앞에서 돌아온 답은 '사랑'이었다.

"물론 배우로서의 성취라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살면서 인연을 맺는 이들을 향한 사랑 등 감정은 다양하지만, 사랑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너무 좋은 거 같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단 하나만 선택한다면? 길게 본다면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게 크지만, 찰나를 보면 나는 사랑을 선택할 것이다.

겁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커지더라. 불특정한 대상을 향해서도 따뜻한 마음이 우러나온다. 두려운 마음에 소망하게 된 거 같다. 나 하나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도 끼치더라. 모두가 힘들지만, 극복하고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나의 모습이 오만해 보일 수도 있는데, 가끔 타인을 보면 눈물이 날 때 있다. 스스로 행복하다는 생각도 하고, 사랑받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책 읽는 것이 좋고 좋아하는 대본을 찾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상처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과 심장이 누구보다 가까운, 그래서 몸이 아닌 감정으로 움직이는 배우 조지승. 때문에 동기 변요한이 불러준 별명이 '짐승'이라고 말하며 깔깔 웃는다.

"가슴 뜨거운, 감정이 끓는, 심장이 말랑거리는 감정이 좋다. 상처를 받아도 사랑하는 게 좋다. 상처받기 두려워서 사랑을 못한다는 사람들도 봤는데, 난 하나도 두렵지 않다. 짝사랑도 많이 하고, 사랑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너무 좋다. 만약에 상처받은 것이 두려워져 아무것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지만, 상처받는 것은 두렵지 않다."

 <팬레터>히카루  조지승

ⓒ 라이브(주)


해외에 자주 나갔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외국에서 작품을 하고 싶어서였다. 액션도 하고 싶었고..재밌고 멋있는 스토리가 정말 많지 않나. 영국에서 한 10개월 정도 지냈는데, 막상 갔을 때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러다, 단편 영화도 찍게 됐고, 우연히 도브 광고 제안도 받았다. 몸이 있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촬영한 영상을 에이전시 쪽으로 돌려볼까 생각 중이다."


조지승 팬레터 히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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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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