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의 블록 뮤직비디오 <뷰티플 투머로우> 포스터

박효신의 블록 뮤직비디오 <뷰티플 투머로우> 포스터 ⓒ 김유경


내 컬러링은 박효신의 '눈의 꽃'이다. 족히 10년 이상이다. 그러니 박효신의 <뷰티플 투모로우>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하루 1회만 상영하는 시간에 맞추느라 일정을 바꿔 CGV 객석에 앉는다. 지난 11월 28일, 화요일에 보러 갔는데 평일 대낮인데도 썰렁하지 않다. 청년층과 중년층이 엇비슷한 비율로 훈김이 돌 만큼 들어서 있다. 견고한 팬심이다.

<뷰티플 투모로우>는 박효신의 블록 뮤직비디오(Block MV) 영화다. 블록 뮤비는 앨범에 수록된 각각의 곡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스토리 있는 영상으로 아우른 뮤비를 일컫는다. 영화는 2016년 발매된 7집 앨범 'I am A Dreamer'에 깃든 꿈의 메시지를 약 1시간 10분간 풀어낸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콘셉트에 맞추어 초반부 영상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음악은 나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그림자"라는 내레이션에 어울린다. 뮤비 감독 장재혁은 쿠바의 허름한 건물, 길거리, 소극장, 바다 등을 무대 삼아 박효신의 노래를 증폭시킨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들리는 나의 노래, 그리고 노래하며 다시 행복한 나"의 형상화다.

주변 환경을 살린 연출은, 어디서든 자유롭게 음악작업을 하며 앨범을 완성해가는 박효신과 뮤지션 장재일의 어우러짐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사실 둘의 존재감이 없으면, 쿠바가 아니라 더 낯선 별세계가 눈을 호사시켜도 초반부 버벅대는 영상을 감내하기 어렵다. 특히 각본에 녹아들지 않은 박효신의 어조·표정·몸짓이 어색해 처음에는 객석조차 삐걱댄다.

다행히 노래가 흐르며 공기처럼 삽시간에 스크린을 장악한다. 그때부터 영화는 듣는 음악에서 듣보는 음악으로 차원을 확충하며 객석에 즐거움을 안긴다. 게다가 쿠바 소년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도 흥을 돋우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박효신과 라파엘(에드가 킨테로 분)의 꿈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전개된다.

박효신은 쿠바에서 음악적 소울메이트 정재일을 만난다. 둘은 고장난 차를 도로변에 세워둔 채 트렁크를 끌며 기진맥진 상태로 숙소에 다다른다. 고단해도 잠 못 들던 박효신은 결국 새벽 거리로 나가 배회하며 '숨'을 부른다. 세파에 찌들지 않은 "어린 마음"의 숨쉬기를 연출한 영상은 노랫말만큼 관념적이다.

'숨'의 숨은 숨통이 트여야 얻는 생기다. "꿈이 지친 맘을 덮"어 "마른 줄 알았던 오래된 눈물이 흐르면", 다시 살 힘이 생긴다. 하지만 유통기한은 딱 "하루", 일회성이다. 황폐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자기답되 함께 살려면 꿈꾸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그것은 6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음악적 재개를 하는 <뷰티플 투모로우>와 디지털 싱글 앨범 '야생화'를 관통하는 "봄(春)"의 지향이다.

박효신과 라파엘의 만남은 그런 숨쉬기의 배턴 터치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다음날 늦게 일어난 박효신은 환전을 한다. 가게에서 우유값을 치르려다가 거리에서 붙들린 물건 파는 애들에게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걸 알고 낭패감에 젖는다.

그 뒤를 잇는 장면은 앓아누운 아버지와 어린 동생 둘의 생계를 맡은 소년가장 라파엘의 정황이다. 라파엘이 타악기(봉고) 연주자 즉 퍼커셔니스트를 꿈꾼다는 것도 암시한다. 감독 장재혁은 쿠바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라파엘을 통해 전하는 한편, 좌절하지 않는 라파엘의 의연한 대처를 연출하여 이방인의 어쭙잖은 평가를 비켜 간다.

박효신은 패거리들로부터 매 맞는 라파엘을 우연히 구해주다가 그 애가 소매치기범인 줄 알아채지만 얼떨결에 놓친다. 도망친 라파엘이 거리에 주저앉아 봉고를 두드리는 모습을 발견한 박효신은, 정재일과 노래 부르며 라파엘의 끼를 부추겨 자연스레 합주하게 한다. 음악으로 하나 되어 셋이 주고받는 미소는 서로에게 응원가다.

"누구도 상상 못 할/ 내일이 또 오겠지/ 소나기에 자라난 무지개를 빌려다/ 포켓 속에 가득 꼭 넣어두렴." - 노래 'Happy Together' 중에서

인생철학이 밴 가사, 그의 새 앨범을 기대하며

노래 'Home'은 "불확실한 삶"에 뿌리내리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변해가고/ 그 안에 있는 너와 나의 모습도 변해가"는 현상은 꿈이 실현될 긍정적 조짐이다. 그 꿈은 "나의 세상은 너/ 너의 세상은 나인 거야"처럼 더불어 사는 세상에 속한다. 라파엘의 꿈을 알아챈 박효신이 소매치기 라파엘을 초보 퍼커셔니스트로 끌어안는 이유다.

박효신과 정재일의 선의와 음악성을 이해한 라파엘은 낡은 피아노가 있고 공연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두 사람을 이끈다. 또한 음악회 개최를 위해 길거리 뮤지션들을 섭외하여 끌어 모은다. 성황리에 음악회가 진행되는 중에 연주하던 라파엘이 여동생의 호출로 사라지고, 그 뒤를 좇아 박효신과 정재일이 뛰어나와 찾는다.

소매치기 패거리에서 벗어나 퍼커셔니스트가 되고자 변화하는 라파엘에게 패거리는 앙갚음으로 왼손에 상해를 입힌다. 박효신은 반지를 팔아 붕대 감은 라파엘에게 새 봉고를 선물한다. 그리고는 콘서트 준비를 위해 의욕적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박효신에게 라파엘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준 넌/ 사랑이 고팠던 내게/ 선물 같은 너"(노래 '리라' 중에서)에 다름 아니다.

꿈과 희망을 전하는 <뷰티플 투모로우>를 듣고 보니 고집 센 대장 박효신이 더 좋아진다. 그에게 음악은 "넌 나의 영원한 너"(노래 'Beautiful Tomorrow 중에서)이다. "꼭 내가 불러야 하는 그런 노래"로써 그는 "이미 누군가의 별"(노래 'The Dreamer' 중에서)이 되어 있다. 지난 11월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빈만찬 공연에서 '야생화'를 불렀듯이.

그러나 '숨'이 그렇듯 박효신의 노랫말들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7080세대가 즐겨 듣던 팝뮤직이나 김민기의 노래처럼 관념적이면서도 연상하기 쉬운 인생철학이 밴 가사를 그의 새 음반에서 기대한다. 그래야 사람 자체가 명기여서 가능한 그의 절창이 더 너른 세계에서 울려 퍼질 수 있으리라.

 지난 11월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야생화'를 부른 박효신.

지난 11월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야생화'를 부른 박효신. ⓒ 청와대



박효신 뷰티플 투모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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