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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전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승광은(62)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 달팽이학교 교장.
 2018 대전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승광은(62)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 달팽이학교 교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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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전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승광은(62)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 달팽이학교 교장은 대학시절 야학교사로서 만난 제자들과의 만남을 '빛나는 만남'이라고 표현하며, 그들과의 만남이 자신을 교사로서 성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전교사협의회 소식지'에 실린 '교육민주화선언'을 읽고 전율을 느껴 '전교조' 활동에 참여했고, '참교육'과 '교육민주화'를 위해 연구하고 노력했던 활동이 37년간의 교사생활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승 교장은 자신이 교육감 선거에 나선 이유를 '입시경쟁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학생, 교사, 학부모들에게 '진정한 교육의 본질적 가치 실현'을 통해 '배움의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저주'를 멈추게 할 '주문'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금의 시대는 교육감의 자질을 평가할 때 기존의 '정치적 역량'이나 '관료적 행정경험'이 아닌, '현장교육 실천 역량'과 '민주적 소통과 리더십'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자신이 바로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교육감 후보라고 자신했다.

공주사범대를 졸업한 뒤, 대전중·문지중 등에서 30여 년 동안 교사로 근무한 그는 대전도덕교사모임 회장과 전교조대전지부장, 새로운학교대전네트워크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또한 현재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장과 학의뜰 작은도서관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15일 달팽이학교에서 승 교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 오셨는지 소개해 달라.
"고향은 경기도 포천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는 의정부종합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학년 담임선생님이 공주사대 출신이셨는데, 교사가 꿈인 나를 공주사대에 가도록 적극 추천하셨다. 당시에는 국립사대가 서울대사대와 공주사대, 경북대사대 등 3곳밖에 없었다. 서울대 갈 실력은 안 되고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공주사대를 가라고 하셨다.

공주사대는 목적대라서 의무발령이었다. 고향 경기도로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주로 대학시절을 야학교사를 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때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50%가 넘었다. 대학생들이 야학교사로서 봉사하는 '상록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가입해서 공주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이인면 '이인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상록회'에 가입해서 야학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 만남이 내가 교사로 성장하는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정말 '빛나는 만남'이었다. 충남 대덕군에서 10년 정도 근무했는데, 대전이 때마침 광역시가 되면서 대덕군 전체가 대전에 포함되어 대전에서 근무하게 됐다."

- 37년 동안 교직에 계시다가 은퇴하셨는데 어떤 학교에서 근무하셨나?
"첫 발령은 충남 홍성군 광천중학교였다. 그 뒤로 신탄진중앙중학교와 대전 중리중, 동아중, 문지중, 전민중 등으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사실 대전으로 와서는 대부분 신설학교로 발령이 났다.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아마도 교장선생님이 저를 받기가 거북스러웠나 보다. 그래서 계속해서 신설학교로 발령이 났다. 신설학교에는 주로 1학년만 있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적었다. 수업이 적어서 좋았지만 여러 행정업무를 많이 맡아서 힘들기도 했다."

2018 대전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승광은(62)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 달팽이학교 교장.
 2018 대전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승광은(62)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 달팽이학교 교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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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활동은 언제부터 했나?
"1988년 2학기 때부터다. 김우성, 가명현, 권종만, 김기정 이렇게 네 분의 선생님들이 대전교사협의회 1세대들이다. 이 분들은 전교조의 시초를 일군 마중물이다. 이 분들이 교사협의회 준비위원회 창립을 위한 소식지를 만들어서 돌렸다. 제가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소식지에 '86년 교육민주화선언'이 실려 있었다. 그 선언을 읽고 전율을 느꼈다. 잠자고 있는 의식의 영혼을 깨우는 가르침 같았다. 그래서 교사협의회에 관심을 갖고 준비모임에 나가게 됐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교사협의회가 창립했고, 다음해에 전교조로 전환됐다."

- 전교조대전지부장도 역임했는데, 그때는 언제인가?
"지부장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했다. 전교조 초창기에는 해직교사들을 후원하는 일을 했다. 전교조가 출범하자 정부의 탄압이 시작됐다. 교육청에서는 '탈퇴각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포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부모님이 대전까지 내려 와서 저를 설득했다. 교육청이 '아들에게 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회유하고 협박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 나는 교사이기에 아이들 곁에 있는 게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교사협의회가 교원노조로 전환되는 것이 불과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교사도 노동자다'라는 의식이 당시에는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나의 역량 부족으로 '탈퇴각서'를 쓰게 됐다. 그 일로 많이 괴롭고 힘들었다. 해직교사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해직교사들을 후원하기 위한 후원금을 모아 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전교조 활동을 계속하면서 국립지회장도 하고, 지부장도 하게 됐다."

- 37년 교사 생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는가?
"전교조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참교육'과 '교육민주화'다. 참교육의 핵심은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었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낼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아이들의 배움과 성정에 어떻게 도움이 되게 할까 늘 고민했다.

선생이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것을 고민하면서 아이들과 협력해서 학급문집도 만들고, 학급신문도 만들었다. 다양한 교과활동도 했고, 공익광고도 같이 만들었다. 예화각색하기도 해 보고, 청소년잡지도 만들어 봤다. 나의 주장 발표회도 열어서 아이들의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진취적인 사고를 키우는 활동도 했다. 또 그런 것을 저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대전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도덕교과문집을 만들었다. '얘들아 교과문집 만들자'라는 책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겨울방학 때 글을 쓰고 해서 어렵게 만들었다. 정말 그 일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과 그렇게 함께 하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 선생으로서 정말 가장 보람 있고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교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도 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교사가 성장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교과연구회'를 만들고 계속해서 활동했다. 1995년 대전도덕교사모임을 처음 만들었다. 대전에서의 교과모임은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그 모임이 12년 동안 12회의 회지를 발간했다. '열린도덕교육'이라는 회지인데, 그 속에는 초·중·고 선생님들의 수업지도 사례, 학생지도실천사례 등이 담겨 있었다.

문지중에 있을 때는 교사연구모임을 만들었다. 뜻 있는 선생님들이 모임을 만들면 교육청에서 연구비를 지원해 줬는데, 문지중에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교사연구회를 만들어서 일종의 '공동연구실천활동'을 했다. 수업연구가 핵심활동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아이들과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선생님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문지중에서 '통합교과교육연구회'였고 회덕중에서도 '회덕중통합교과교육연구회'를 만들었다. 또 '회덕중도서관활용교육연구회'도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수업비평연구회'도 만들었다. 수업에 대한 전문성을 신장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으로 만들었다. 교사가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다. 연극이나 영화는 비평가가 있는데, 수업에는 비평가가 없다. 우리도 수업을 비평적 관점에서 살펴 보자는 뜻이었다. 다만 영화비평처럼 비평하는 게 아니라 상대 교사의 수업을 보고 나는 무얼 배울까를 생각하고, 서로 질문하면서 서로 성장하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따뜻한 비평'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함께 고민했다. 2006-2008년까지 수업비평연구회 3년을 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수업비평문을 쓰게 됐다. 수업을 비평적 관점에서 보고 수업비평문을 쓴 사례가 없었다.

2018 대전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승광은(62)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 달팽이학교 교장.
 2018 대전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승광은(62) 대전홈스쿨링지원센터 달팽이학교 교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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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전교육감에 출마하실 예정인데, 교육감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은 왜곡된 입시경쟁교육 속에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에게 진정한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행복한 배움과 성장'을 드리고자 함이다. 한 해 6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전은 학생 수에 비례해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순위에 해당한다. 저는 그러한 '저주-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일'에서 벗어나게 할 '주문'을 알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아이들과 수없이 경험했고, 증명했다.

둘째는 시대의 당위성과 가치에 입각해 이제는 교육감 후보 선정 기준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교육감 후보를 정치적 역량을 기준으로 선정하기보다는 현장 교육실천 역량을 기준으로 선정해야 한다. 또 정치적 권력과 권위에서 민주적 소통과 리더십을 기준으로, 교육 관료 행정 경험에서 평생교사 교육 실천 경험을 기준으로, 어른 눈높이에서 아이들 눈높이를 기준으로 교육감 후보를 선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사회적 경력도 중요하겠지만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교육감이 되어야 한다. 교육감은 무엇보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저는 그러한 기준에서 교육감 후보로 평가받을 자신이 있다.

셋째로 저는 평생을 교육현장 최일선에서 늘 아이들과 함께 했고, 선생님들 곁에 있었다.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참교육과 교육민주화 실현을 위해 앞장 서 왔다. 37년을 평생교사로서 배움과 실천으로 일군 '수업혁신', '학교혁신'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이제는 교육감의 자리에서 진보교육의 대안을 연구하고 실천하려 한다. 타 시·도의 진보교육감이 하고 있는 교육혁신을 대전에서도 이루어 보고자 출마를 결심했다."

- 진보교육감을 자처하고 있다. 진보교육감이란 무엇이고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진보교육감은 '달빛요정'이다. 햇빛 같은 존재인 아이들의 빛을 받아 이를 한층 더 감동의 빛으로 승화시켜 모두의 행복한 성장을 가져다 주는 달빛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진보교육감은 '돌다리'이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은 '넘나들며 배우기'다. 폐쇄된 학교교육의 문을 활짝 열고, 마을의 인적·물적 자산과 교류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기본 정신을 전제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어른들의 삶은 아이들의 거울이다. 어른의 성장하는 삶, 올바른 삶의 모습이 아이들의 미래 모습이다. 어른이 책을 잡을 때 아이들도 즐겁게 책을 대하게 된다.

따라서 진보교육감은 달빛요정처럼 친근하면서도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대비하는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시골 돌다리처럼 이 변화를 이끌어 갈 추진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 모두가 성장하는 '배움의 공동체학교'로 '아이들에게 쉼표를, 선생님에게 책을, 학부모님에게 교육비를 되돌려 드리는 희망의 대전교육'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태그:#승광은, #대전교육감, #대전교육감선거, #진보교육감, #달팽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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