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소민의 인생 그래프를 그린다면, 2017년은 매우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16년 연말부터 시작된 시트콤 <마음의 소리>를 시작으로, <아버지가 이상해>, 그리고 최근 종영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까지. 바쁘게 보낸 만큼이나 화제성이나 시청률 면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사이 촬영한 지 2년이나 된 <아빠는 딸>도 개봉했고, 영화 <골든 슬럼버> 카메오 촬영도 했다. 쉴 틈 없이 보낸 탓일까? 지난 12일 만난 정소민은 "올 한 해가 너무 길게 느껴져, 연말이라는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생은>은 꿈은 있지만 집이 없는 '홈리스' 드라마 보조 작가 윤지호(정소민 분)와 현관까지만 자기 집인 '하우스 푸어' 집주인 남세희(이민기 분)가 한집에 살기 위해 '계약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 뒤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계약 결혼'이라는 만화적 설정으로 시작됐지만, 드라마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신랄한 대사와 현실적인 스토리로 'N포 세대'라 불리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춘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번 생은>... 운명적 끌림 느꼈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배우 정소민이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배우 정소민이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번 생은>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일곱 시간 이상 푹 잤어요. <이번 생은> 팀이랑 제주도 단합대회 다녀온 이후로는 별다른 일정 없이 그냥 휴식에 집중했어요. 책도 읽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면서요."

<아버지가 이상해>를 마칠 당시에도 연이은 작품 출연으로 이미 지쳐있던 상태. 하지만 <아버지가 이상해> 촬영을 마치고 딱 하루 휴식을 취한 뒤 바로 <이번 생은> 촬영을 시작했다. 지쳐있던 그를 다시 촬영장으로 이끈 건, 운명과도 같은 끌림 덕분이었다.

"정말 끌리는 작품이 아니면 무조건 쉬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놉시스를 보니 윤지호와 제가 신기할 정도로 닮아있는 거예요. 경상도 출신이라는 배경에 나이, 가족 구성,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해온 삼총사 친구들과, 그들 사이에서의 제 역할까지 똑같았어요. 지호를 둘러싼 많은 설정이 저랑 비슷했어요. 운명인가 싶었죠."

특히 극 중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교대에 가라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드라마 작가를 꿈꾼 윤지호와, 발레를 하다 갑자기 연기가 하고 싶어 아버지 몰래 연극과에 지원해 상경한 정소민의 스토리. 둘은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고 직진하는 성격까지 닮았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어요. 아빠는 당연히 제가 무용과를 갈 거라고 생각하셨죠. 하지만 전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엄마에게만 살짝 이야기하고 몰래 연기과에 지원했죠. 실기 때는 아빠에겐 무용과 시험 보러 가는 것처럼 하고 서울에 올라왔고요. 사실 떨어지면 끝까지 말 안 하려고 했어요. 합격하고 말씀드렸는데 거짓말한 것 때문에 아빠가 배신감을 크게 느끼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엄마보다 더 제가 연기하는 걸 좋아하세요."

정소민의 데뷔 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배우 정소민이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터널에 갇힌 것 같은 순간이 있다. 혼자인 것 같은 기분,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 들 때. 과거의 정소민이 그랬다. ⓒ 이정민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아래 한예종) 연극원이다. 몇 년씩 준비해도 합격할까 말까인 그곳에, 연기레슨 몇 번 받아보지도 못하고 지원한 정소민은 덜컥 '수석 합격자'가 됐다. 한예종 출신 배우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시기, '한예종 수석 합격자'라는 프리미엄은 정소민의 연기력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장난스런 키스> <스탠바이> 등 초기작에서 보여준 연기는 대중의 기대에 못 미쳤고, 이는 정소민에게 더 큰 혹평으로 돌아왔다.

"<이번 생은>에서 가장 공감하고 가슴에 오래도록 남은 장면이 2화에 나온 터널신이었어요. 대사가 너무 와 닿았죠. 데뷔 무렵의 제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사실 그때도 지금만큼 노력했어요. 분명 노력하고 있는데 보이는 건 없었죠. 방법이 틀린 건지, 내가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재능이 없는 건지... 언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긴 오는 건지 걱정됐고 막막했어요."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2회 중 한 장면.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2회 중 한 장면. ⓒ tvN


누구에게나 터널에 갇힌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혼자인 것 같은,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 들 때. 과거의 정소민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분명 끝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차곡차곡 쌓이는 노력의 힘을 믿는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오늘의 노력이 바꿔놓을 미래를 믿기 때문에, 전처럼 조급해하지 않는다.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기까지는 최소 5년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좋은 평가를 듣고 있다면, 그건 5년 전 노력 덕분일 거예요. 칭찬을 들으면 기분 너무 좋죠. 제 노력이 조금씩 다른 분들께도 전달되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고요. 그래도 만족하며 안주할 수가 없어요. 지금 또 열심히 달려야 5년 뒤에 또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역시 지호와 닮은 부분이다. 그래서 정소민은 '닮은꼴' 지호를 연기하며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혼자 상처받고 끙끙대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상처는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내놓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저는 혼자 끙끙대며 묻어두는 스타일이에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바로 이야기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지호는 상처받았을 때 '나 지금 아파요'하고 꺼내 놓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이런 점이 너무 부럽고 멋있더라고요. 나의 불만이나 아픔을, 무례하지 않고 상대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전달한다는 건 굉장한 일이잖아요. 무엇보다 남에게 미움받아도 상관없다는 용기가 필요하고요.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지호를 연기하면서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처음엔 '나도 이러고 싶다', 정도였는데, 이제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도로 바뀌었어요."

이번 생은 처음... 하지만 오늘에 만족한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배우 정소민이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소민은 지금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진짜 나의 행복이 뭔지 고민하고 있다. ⓒ 이정민


해가 바뀌면 정소민은 서른이 된다. 지금 정소민의 기분은 "서른?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네?"라고. 막연히 서른이 되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스물 되던 해의 임팩트에 비하면 별다를 게 없는 것 같다면서.

"3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정도의 소소한 기대나 설렘 말고 별다른 감정은 없어요. 꼭 서른을 앞둬서라기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진 건 있죠. 행복의 기준 같은 것들. 전에는 남들이 정해 놓은 행복의 기준이 제게 큰 영향을 줬어요. 몇 살에 결혼해서 몇 살에 아이 낳고... 이런 틀에서 벗어나면 이상하게 보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스스로 그런 시선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진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진짜 나의 행복이 뭔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아직 정답을 몰라요. 어려운데 계속 답을 찾고 있어요."

드라마 제목처럼, 정소민에게도 이번 생은 처음이다. 혹시 이번 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번 생에서 아쉬운 점은 없는지 물었다.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싶다? 이거 말곤 없어요. 지금 생에 되게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분명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 힘들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중간중간 고비가 있었지만, 길을 틀지 않은 덕분에 지금의 저로 올 수 있었다고 믿어요. 그 시간들이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만둔 발레에 대한 아쉬움은... 그냥 몸이 더 굳기 전에 장기를 살릴 수 있는 역할을 맡아 보고 싶다는 정도. 몸이 뻣뻣해지는 거에 예민해서 지금도 가끔 스트레칭하면서 몸 푸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요. 쉬는 동안 다시 발레를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고요. 기회가 한 번은 오지 않을까요?"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배우 정소민이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간중간 고비가 있었지만, 길을 틀지 않은 덕분에 지금의 저로 올 수 있었다고 믿어요.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이정민



정소민 이번 생은 처음이라 아버지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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