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디'  고 종현의 모습.

'쫑디' 고 종현의 모습. ⓒ MBC 라디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에게 어느 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사진작가는 주저없이 입을 열었습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일단 렌즈뚜껑부터 열어야겠죠?' 일단은 렌즈뚜껑부터 열어라. 지금 저에게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푸른 밤, DJ, 샤이니 종현. 쉽게 상상이 안 되는 이 단어 속에서 저는 계속 그 생각만 했거든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잘 하는 걸까? 계속 그렇게 결과만 생각하고, 결과만 고민하고, 결과만 집중하다 보니까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이 생각만 할까 합니다. 일단은 시도해보기, 그리고 부딪혀보기. 2월 3일, 오늘과 내일 사이. 여기는 <푸른 밤>입니다." - <푸른 밤 종현입니다> 첫 방송 오프닝

2014년 2월 3일 그가 처음 우리 곁에 왔다. 그는 자미로콰이의 'Cosmic Girl'을 선곡하며 푸른밤의 5대 DJ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내지는 '진정성이 없을 것이다'라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종현은 1대 DJ였던 성시경, 4대 DJ였던 정엽 못지 않은 친근하고 보드라운 모습을 보이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쫑디'라는 애칭도 붙었다. 새벽감성이 꽉 차오르는 시간대 답게 위로를 요청하는 청취자들에게 쿨해 보이는 어투 뒤로 진솔한 위로를 덧붙이는 모습이 돋보였다. '무심한 듯 시크한', '츤데레' 등의 수식어도 같이 붙었다. 혼자 있을 때에는 외로웠을지라도 게스트와 함께라면 분위기가 붕 떠올랐다. 선배 DJ인 배철수가 '참 잘하는 친구'라며 추어올렸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쫑디는 1155일 동안 청취자들의 곁을 지켰다. 인기에 힘을 받아 게스트로 출연했던 백영옥 작가가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가게 되었을 정도였다. 쫑디 역시 바쁜 해외 공연 와중에도 라디오를 계속했다. 라디오 사연을 바탕으로 한 노래가 나왔고, 앨범이 나왔고, 라디오 그 자체를 주제로 한 <1000>도 있었다.

마음에 깊이 박힌 두 날 사이 그의 말

 쫑디는 라디오 콘솔까지 직접 만지며 방송했다.

쫑디는 라디오 콘솔까지 직접 만지며 방송했다. ⓒ MBC 엠라대왕


디어클라우드 나인
: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어요?
종현 : 저는 최대한 하루여도 갖고 싶어요. 하루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도 갖고 싶어요. 하루 딱 살고 돌아가서 후회되는 것 있으면 고치고, 한 번은 그대로 살아보고 후회되는 일 있으면 돌아가고, 후회되는 일 없으면 그대로 넘어가고...
(중략)
디어클라우드 나인: "미래에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지어주고 싶은 이름 생각해놓은 것 있어요?
종현 : "있는데 말하기 싫어요. 나만 할 거야. 10년 기다리세요! (웃음) "
- 2017년 2월 3일 <푸른 밤> 3주년 방송, 친구인 디어클라우드 나인과 함께


쫑디가 라디오에 갖는 애착은 매우 컸다. 여느 DJ들처럼 PD가 음악을 켜고 멘트를 조절하지 않았다. 라디오 부조의 콘솔을 잡는 법을 배워 직접 움직였고, 생방송으로 노래를 선곡했다. 사연을 읽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1155일 동안 사회에 대한 이야기부터 날씨에 대한 걱정까지, 청취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엄청나게 많았다.

친한 친구였던 디어클라우드의 나인과는 '고독씨 Club'이라는 라디오의 코너를 같이 진행했다. 나인이 선곡하는 노래 사이사이로 이어지는 서로의 수다는 따뜻하게 밤 공기를 채웠다. 초대가수의 라이브를 할 때에는 가수들 사이의 진솔한 이야기가 공간을 채웠고, 여러 코너에서는 서로 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쫑디의 진가가 드러난 때를 고르라면 단연 혼자 부조를 지키고 있었을 때라 할 수 있다. 오늘과 내일 사이라는 모토답게, 그 간극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듣고 그에 맞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냈다. 하지만 그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역시 남을 치유하면서 자신을 복돋웠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았다.

<푸른 밤> 떠났어도 라디오가 그의 상징이었던 이유

 8개월차 현직 DJ 탤런트 정유미(오른쪽)가 4년 경력의 전직 DJ  고 종현씨에게 '고민상담'을 하였다. 이 방송은 지난 5월 12일 송출되었다.

8개월차 현직 DJ 탤런트 정유미(오른쪽)가 4년 경력의 전직 DJ 고 종현씨에게 '고민상담'을 하였다. 이 방송은 지난 5월 12일 송출되었다. ⓒ MBC 라디오


"사실, 상처받을 필요는 없는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 2015년 12월 16일 <푸른 밤 종현입니다> 클립

"아마도 너와 난 꼭 그 때가 아니었더라도 / 너와 난 분명 만났을 거야 / 시간이 꽤 지났지만 처음과 다르진 않아 / 여전해 난 복받은 사람이야" - 종현이 <푸른 밤> 1000일을 맞아 작곡, 작사한 <1000> 가사 일부

김신영은 <정오의 희망곡>에서 그의 목소리를 성대모사한 '붉은 낮, 종현입니다' 코너를 계속 선보였고, 정유미는 <푸른 밤> 하차 후 < FM데이트 > 초대손님으로 온 쫑디에게 'DJ를 8개월간 하니 목이 아프다, 선배 DJ가 알려주는 좋은 방법이 없겠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에게 라디오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항상 진지하게 라디오DJ에 임했다. DJ를 맡은 지 1년만에 '내일도 쉬러 와요'로 끝인사를 정하는가 하면, 라디오를 하는 내내 치유받고, 외로움에서 해방된다는 이야기를 라디오에서도, 언론 등의 인터뷰에서도 했다. 청취자들 역시 종현 앞에서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배철수 DJ가 농담조로 "종현 군 라디오는 모범생만 듣나봐요"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영원한 '쫑디', 덕분에 새벽이 즐거웠어요

"마지막 인사,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진짜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하던대로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신 그 앞에 한 마디 덧붙여서 인사를 하려고요. 지금까지 푸른 밤 종현이었습니다. 저도 쉬러 올게요. 여러분도 여전히, 그리고 안녕히. 내일도 쉬러 와요. 사랑합니다." - 2017년 4월 2일 <푸른 밤 종현입니다> 마지막 방송 클로징

눈이 펑펑 오는 날 떠난 쫑디를 위해 MBC 라디오는 그의 AOD와 보이는 라디오 클립을 한 데 모아 추모 영상을 내보냈다. 자신도 쉬러 오겠다는 인사를, 언젠가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쫑디를 위한 마지막 인사였다.

1155일 동안 그와 함께했던 새벽은 행복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라디오에 나타나 DJ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라디오를 했을 때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보며 괜시리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짧고도 야속한 두 시간 동안 접한 다음에는, 이제 영영 안녕을 고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쫑디 덕분에 행복했다는 인사를 먼저 남기고 싶다. 밤 공기의 차가운 칼날에 다쳤던 많은 이들을 치유해주었던 그였기에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인사도 말이다. 마지막 추모방송을 끝으로 그를 놓아주고 싶지만, 가끔 괴롭고 힘들 때 그의 방송을 들으며 청승맞게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쫑디'의 마지막 방송 모습. '쫑디 잠시 자리 비움'이 씌인 플래카드가 야속하게 보인다.

'쫑디'의 마지막 방송 모습. '쫑디 잠시 자리 비움'이 씌인 플래카드가 야속하게 보인다. ⓒ MBC 라디오



라디오 MBC 종현 푸른 밤 종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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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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