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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초등학교의 교실, 수업시간에 몇몇 학생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포기한 것인지 자고 있는 학생들을 깨우지 않고 수업을 이어갑니다. 교실 맨 뒤에 앉은 학생 둘은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연예 뉴스를 검색하고 있군요. 또, 그 옆의 학생은 열심히 교과서를 보는 줄 알았더니 교과서 속에 작은 만화책을 숨겨 몰래 보고 있습니다.'

위의 초등학교 교실 속 수업장면은 안타깝게도 현실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시절 때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은 존재하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만화책을 몰래 본다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각 시대마다 수업의 모습은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 세월의 변화로 인해 달라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최근의 수업 장면들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학교교육에서 성패를 좌우할 만큼 가장 중요한 활동은 바로 교실에서의 수업입니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은 배우고자 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내용이 전달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 모두 함께 인격적으로 성장해가는 삶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뉴스들을 보면 학생들의 배움이 일어나는 곳은 학교의 교실 속이 아니라 방과후에 가는 학원이거나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책상이라고들 말합니다. 분명히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들의 학력수준이 올라가고 교육내용에 적합한 수업기법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실 속 수업은 외면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사교육의 팽창, 한국 입시제도의 폐해 등 사회구조적인 것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만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면 정작 이 문제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교사와 학생들은 사회구조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와 학생들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을까요?

'수업 전 준비'에만 몰두하면 '활동만 있고 내용은 없는 수업'이 될 수 있다

저는 초임교사 시절부터 '좋은 수업'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내린 결론은 '수업 준비를 재미있게 하자'였습니다. 그래서 수업내용을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로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학습지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캐릭터를 넣어 만들어서 작성하게 했습니다. 또, 무엇을 배우든지 빙고 놀이나 스피드 퀴즈 같은 게임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수업을 마무리하곤 했지요. 

그런데 교사 경력이 쌓이면서 제 수업에는 정말 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분명히 학습자가 재미있어 하고 집중하는 수업이 되었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남는 것이 없는 수업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한 마디로 활동만 있고, 내용은 없는 '빈껍데기 수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재미있는 수업이 되도록 준비만 했을 뿐이지, 수업이 끝난 후에 그 수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학습목표를 달성했는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바둑의 '복기'를 통해 배우다

바둑에서는 게임이 끝난 후에 반드시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기'라는 것입니다. 복기는 자신의 대국을 돌아보면서 어떤 점이 괜찮았고, 어떤 점이 안 좋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말합니다. 프로 바둑기사들은 바둑게임 전에 공부하는 것보다 바둑의 복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바둑에서 복기를 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혼자 하는 복기입니다. 스스로 자신과 상대방의 대국을 하나하나 살피며 반성해보는 것이지요. 둘째, 동료들과 하는 복기입니다. 자신의 대국을 관전했던 다른 동료들과 자신의 대국에 대해서 반성해보는 것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셋째, 대국 상대와 함께 하는 복기입니다. 이 방식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대국이 끝나고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억이 더 잘 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위의 세 가지 방식 중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고 도움이 될까요? 바로, 세 번째 대국 상대와 함께 하는 복기입니다. 그 바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당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기 때문에 가장 많은 점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바둑의 '복기'를 교실의 수업에 비유해본다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수업계획을 짜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그로 인해 어쩌면 더 중요한 수업이 끝난 후에 내 수업이 어땠는지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을 빼먹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교사는 수업에 대해 '복기'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만 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 나 혼자 스스로 되돌아보는 복기나 동료교사들과 서로 수업을 참관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복기의 과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수업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학생이 빠져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수업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교실 속 수업의 주인공들인 교사와 우리 반 학생들이 함께 수업에 대해 복기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경험담입니다. '국토개발'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2시간 분량의 사회수업이었지요. 저는 반 아이들에게 각자 국토개발에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정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인터넷을 통해 조사하여 학습지에 기록하는 데에 1시간을 주었습니다. 나머지 1시간은 첫 시간에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체 토론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업을 모두 마친 후 저는 학생들과 수업복기 시간을 가졌지요. 제 질문들은 간단했습니다. 오늘 수업이 도움이 되었다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었고, 힘들었다면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토론수업을 다시 한다면 어떤 점을 바꿨으면 좋겠는 지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조사를 혼자 하니 어려웠다', '두 명이 한 조로 했으면 좋겠다', '집에서 미리 자료조사를 하고 토론을 길게 했으면 좋겠다', '인터넷 말고 신문이나 책에서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고 싶다'등 실질적인 수업의 개선점들이었습니다. 수업복기를 통해 수업의 주인공인 아이들의 눈높이에 대해 배우게 된 것이지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 나눈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많은 부분을 다음 토론 수업에 반영하였습니다. 수업의 주인공인 학생과 교사가 함께 다음 수업을 디자인한 것이지요. 저는 이 수업에서 아이들이 전보다 훨씬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복기'가 '좋은 수업'을 만든다

교육에 대한 지향점을 이야기할 때 자주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학습자 중심 교육', '자기주도적 학습', '학습자가 주인공인 수업' 등인데요. 저는 이 지향점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업 이 끝난 후 교사와 학생이 함께 하는 수업에 대한 대화로 시작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하는 수업복기를 통해 변화해 가는 수업, 학습자와 교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수업,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꿈꾸는 '좋은 수업'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한국교육신문>중복 송고



태그:#바둑, #복기, #교육, #수업,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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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이 가득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교육이야기를 전하고자합니다. 또,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둑과 야구팀 NC다이노스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사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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