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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외교활동을 하기 때문에 청와대에 대한 비판은 자중하겠다. 이게 예의에 맞다.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청와대에 대한 비판은 우리가 자제하도록 하겠다." (2017년 7월 6일)

#2.
"문재인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데 정상외교 기간에는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안 하는 게 관례다. 의원들은 이 점을 참착해서 대통령 해외순방 기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유보했다가 대통령이 돌아오면 하도록 하자." (2017년 11월 8일)

놀라지 마시라. 이는 제1야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이다. 그땐, '웬일인가' 싶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일이라면 건건이 반대와 비판만 일삼는다 지적받아온 홍 대표가 아니던가. 그랬던 그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는 비판을 자제할 것이라 천명했으니 의아할 수밖에. 더군다나 앞뒤 가리지 않는 '막말'로 같은 당 동료 의원들에게조차 비판받고 있는 홍 대표가 '예의와 '관례'를 말하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 일제히 비난한 한국당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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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홍 대표의 변신(?)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 몇 달 여 만에 예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바다 건너 일본에서다. 홍 대표는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황제를 알현하러 가는 조공외교"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해외순방 중에는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예의이며 관례라더니, '알현', '조공' 등 봉건적 수사를 동원해가며 작심하고 폄훼한 것이다.

한국당의 평가 역시 홍 대표의 인식과 다르지 않았다. 15일 정호성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은 '국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준비과정에서부터 홀대, 굴욕외교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성과는커녕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짓밟힌 문 대통령의 방중은 '삼전도의 굴욕'만큼이나 치욕적이다. 문 대통령의 방중에 '알현'보다 더 잘 맞는 단어는 없다"며 홍 대표를 두둔했다.

하루 뒤인 16일에는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나섰다. 장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3불 정책 모두를 내 주고 얻은 것이라고는 밥자리·공동성명·경제사절단 패싱 등 3대 패싱과 공항 영접·하나마나 4대 원칙·기자단 폭행 굴욕 등 3대 굴욕을 골고루 당하고 왔다. 외교참사를 넘어 '국치'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것"이라 맹비난하며, 외교라인과 참모진을 전면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방중 전부터 시작된 공세가 정상외교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사드배치로 촉발된 한중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의미가 있었다. 사드 갈등을 풀기 위한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우리 정부는 중국 측의 입장을 고려해 신중하게 외교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당 등 야당과 보수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공동발표문이 없다'는 둥, 중국 측이 공항영접 등 의전을 소홀히 했다'는 둥 비판에 더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야당의 공격은 공식 일정이 시작된 이후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중국 당국의 홀대와 결례, 기자 폭행 사건 등을 계속해서 문제삼더니, 심지어 문 대통령이 '혼밥'(혼자 밥먹는 것)을 하고 있다고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급기야 '알현', '조공', '국치' 등의 막말을 섞어가며 중국방문의 성과를 깎아내리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외교에 대한 평가는 정파적 입장에 따라 서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알맹이 없는 뻥튀기 외교였다고 판명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동 해외순방이 그 비근한 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중동 해외순방을 통해 체결한 양해각서(MOU)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 박 전 대통령의 '중동특수'는 빈수레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 시절의 자원외교는 부정·비리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그럼에도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바른정당)은 갖은 미사여구로 해외순방 성과를 한껏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야당이 역대급 굴욕외교라 비판하는 이번 중국 순방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야당의 비판과는 달리 이번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 전쟁 불가 입장을 재확인하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공감했다. 정상 간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합의하고, 경제·무역부처의 채널 역시 재가동하기로 했다.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조치 철회 의사를 이끌어 낸 것도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번 정상회담은 사드갈등 이후 경색돼 있던 양국 간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누가 대중국 관계 악화시켰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4일 도쿄에서 일본 아베 총리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4일 도쿄에서 일본 아베 총리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 일본내각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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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이번 정상외교를 평가절하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물론 비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국빈방문에 걸맞지 않는 중국 당국과 현지 언론의 태도는 국민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긴 것이 사실이다. 기자 폭행 사건으로 이번 정상외교에 흠집이 생긴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당이 '삼전도의 굴욕' '알현' '조공외교' '국치' '굴욕외교' 등의 막말로 대통령의 인격을 폄하하고, 방중 성과를 깎아내려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군다나 한국당은 바른정당과 함께 박근혜 정권 당시 사드도입을 주도한 장본인들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외 상황과 국내 여론은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적으로 사드도입을 강행해 대중국 관계를 악화시킨 주역이 바로 한국당이었다.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냉철한 평가대신 흠집내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한국당을 향해 외려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들이 문제 해결에 나선 사람의 등 뒤에서 어깃장을 놓는 격이니 어찌 그러하지 않겠나.

한국당이 '알현', '조공' 등의 수사로 문 대통령을 맹비난하자 온라인 상에서 한 장의 사진이 급속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홍 대표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진이다. 알현은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 뵘'이란 사전적 의미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총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홍 대표의 처신이야말로 '알현'의 뜻과 딱 맞아 떨어지는 행동이라 할 테다. 그것이 아니라면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표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일본 총리에게 고개를 숙일 까닭이 없지 않은가.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왕에게 고개를 숙여 국민의 자존심을 짓뭉개더니, 이제는 홍 대표가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문 대통령을 공격해야 하는 정파적 입장은 이해한다 쳐도 여전히 궁금하다. 자신들이 초래한 외교적 난맥상을 풀어보려 애쓰는 자국 대통령에게는 갖은 막말을 퍼부어대면서, 일본 총리 앞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깍듯이 예의를 차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아니 도대체 '치욕'스럽고 '굴욕'스럽게 고개는 왜 숙이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홍준표 아베, #한중 정상회담, #문재인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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