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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KBS 스포츠국 PD
 김영민 KBS 스포츠국 PD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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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 올림픽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 30년 만에 치르는 올림픽인 만큼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창 동계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초조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100일 넘게 파업을 이어오는 언론노조 KBS 본부(본부장 성재호, 아래 KBS 새 노조) 소속 스포츠국 사람들이다.

올림픽처럼 스포츠 빅 이벤트는 1년 전부터 분비해 올림픽이 있기 4개월 전에는 중계 캐스터와 해설진 계획이 나와야 하는 데 파업으로 일손을 놓고 있어 속이 타들어 간다고 한다. 더 정확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지난 14일 KBS 새 노조 스포츠국 중앙위원인 김영민 PD를 만나 올림픽 중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오늘(14일)로써 새 노조의 총파업이 102일째입니다. 날씨도 추워지고 파업이 길어지는데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요?
"반팔 입고 파업을 시작했는데 이제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갈 정도로 추운 겨울이 됐어요. 가족들이나 주위에서도 우려하는 분들도 많아요. 늘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던 사람들이 일손을 놓아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기도 해요. 내려놓고 나와서 사랑하는 내 프로그램이 망가지는 모습에 화도 나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그런데도 파업 대오는 전혀 흔들림 없이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면서 유지되고 있어요. 꼭 해야만 하는 싸움이고 또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걸 의심하는 조합원은 없거든요.

저희가 얼마 전 총파업 100일 전국조합원총회를 가졌거든요. 그때 우리가 늘 집회를 하는 장소인 KBS 본관 로비가 가득 찼어요. 제가 입사 15년 차인데 그렇게 꽉 들어찬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집행부가 떡을 700개 준비했는데 그게 모자랄 정도로 많은 조합원이 모였으니 파업 열기는 점점 뜨거워진다고 봐도 맞을 겁니다.

사실 파업이 진행되면 보통은 조합원 수가 줄어드는데 우리는 오히려 조합원 수가 늘고 있어요. 이런 사업장은 찾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지역지부에서는 100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기도 했다고 해요. 파업 100일을 넘긴다는 게 축하할 일이 아닌데 이런 분위기를 보면 피곤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승리를 앞두고 남은 파업을 즐기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 아무래도 감사원에서 일부 이사의 해임을 방통위에 통보하는 등 희망이 보이니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방통위가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받아서 KBS 비리 이사의 해임을 통보한 거잖아요. 이사 해임 통보로 파업의 출구가 마련됐다고 판단하시는 조합원도 계시지만 아직 통보만 됐을 뿐 해임된 게 아니고 사장이 그만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도 많은 것 같아요. 저희 파업의 목표가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의 퇴진이거든요. 그래서 사장 퇴진까지 파업을 지속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거죠.

파업을 접는 명분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일터로 돌아가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간부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은 저희가 볼 때 고대영 사장 체제에서 부역한 사람들이거든요. 그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같이 일하기는 힘들 거예요. 이사해임 통보만으로 파업에서 복귀하면 사장과 간부들이 그대로인 상황이기 때문에 이대로 파업을 접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은 거죠."

- MBC와 함께 파업에 들어갔다가 MBC만 먼저 파업이 끝나 외로울 것 같아요.
"외롭다기보다 부럽죠. 같이 파업할 때는 서로 의지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도 곧 파업을 끝내고 복귀할 거거든요.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이 잘 됐으니 축하해 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임 사장부터 시작해서 MBC의 인사발령 내용을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많은 변화를 보여요. 저희보다 먼저 복귀해서 좋은 선례들을 남기고 있으니 저희는 따라가면서 좋은 건 취하고 안 좋은 건 피해 가면서 실행 착오를 겪지 않으려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 MBC 뉴스에서 KBS 새 노조 파업을 다뤘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광화문에서 '돌리고(돌아오라 리셋 고봉순)' 집회할 때 MBC 뉴스에서 취재를 나왔더라고요. MBC가 이렇게 360도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죠. 최승호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MBC가 KBS 새 노조 파업을 뉴스로 다루는 모습을 보며 정상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영방송이 100일 넘게 파업하면서 많은 방송 프로그램의 파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방송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게 분명히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MBC가 KBS 새 노조 파업을 다루면서 더 많은 시민과 언론사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광화문에서는 조합원들의 '24시간 이어 말하기'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MBC 뉴스 보고 알게 됐다고 시민분들이 음료수를 가져오셔서 응원해주시기도 했거든요."

- 아무래도 이런 이유로 공영방송이 필요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요.
"예. 파업을 통해 더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이번 저희 파업을 MBC가 뉴스로 다뤄주고 그걸 통해서 다른 매체에서도 관심을 갖게 됐죠. 결국, 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공영방송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도 해야 하지만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야 하는데 그동안 공영방송 KBS가 그런 것들을 못 했죠. 그래서 이제라도 바꾸기 위해 이렇게 월급도 못 받고 찬 바닥에 앉아 파업 중인 겁니다."

- 광화문에서는 새 노조원들의 이어 말하기가 이어지고 있잖아요. 김 PD님도 어제(13일)에 참여하셨는데 어땠어요?
"정말 추웠지만, 다행히 바람이 안 불어서 다른 구역이 했을 때보단 괜찮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 좋았고 경이로운 경험이었어요. 처음 '24시간 이어 말하기'에 대해 들었을 때 이런 걸 왜 하냐고 하면서 하기 싫다는 반응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숨 가쁘게 달려오던 파업 중에 잠시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KBS가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국민들께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었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방송되는 것을 보며 조합원들이 다 같이 공감하며 서로의 생각과 다짐을 나누는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새벽 시간 광화문 광장에서 서서 추위에 떨면서 긴 시간 말하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발언 순서를 맡은 사람이 힘들까 봐 일부러 찾아와 응원도 해주고 대신 시간을 메워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눈물겨웠어요. 현업에서 느끼지 못한 동지애를 느끼는 기회였죠."

- 얼마나 하셨어요? 한 사람당 한 시간 정도씩 하는 것 같던데.
"저희 스포츠 구역은 3시간을 배당받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지원자를 받았는데 많지 않았어요. 제가 우리 구역 중앙위원이라 혹시 빌지 모르는 시간을 메우러 나갔거든요. 애초 지원자는 4명 정도였는데 다들 저 같은 생각을 했나 봐요. 동료들이 고생할까 봐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현장에서 지원해 10명이 조금씩 시간을 쪼개서 메워줬어요. 대부분 10~30분 정도씩 했고 정작 저는 2분밖에 못했어요. 날씨는 추웠지만, 서로서로 위하는 마음을 통해서 온기를 느껴서 그런지 마음은 정말 따뜻했어요."

- 스포츠국 소속 PD이시잖아요. 내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이 있는데 파업 중이라 올림픽 중계에 대한 걱정이 클 것 같은데.
"평창 동계 올림픽은 88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거든요. 제가 KBS에 근무할 동안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언제 또 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잖아요. 올림픽은 스포츠국의 PD, 기자뿐만 아니라 캐스터와 엔지니어 등 스포츠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라면 누구나 경험해보고 싶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거든요. 그래서 KBS 스포츠국에서는 G-1년 특집도 준비해 방송할 정도로 다른 방송사보다 빨리 준비를 시작했었는데 정작 대회 임박한 중요한 시기에 손을 놓고 있게 돼서 걱정도 되지만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찢어집니다. 담당하는 프로그램 제작자 입장에서는 방송을 안 하면 안 했지 프로그램이 망가지고 잘못 나가는 건 참기 힘들거든요."

-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과 해외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의미가 다른가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커야 정상이거든요. 국가적 행사이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해야 할 역할도 있겠지요. 현재 평창 동계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적은 것은 지금 KBS가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스포츠국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요?
"말씀드린 대로 평창 동계 올림픽 중계방송은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이고 공영방송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못하고 있어서 시청자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파업이 길어지고 평창 동계올림픽이 다가오니 조용히 올림픽을 준비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지요. 하지만 파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 강규형 이사가 해임되면 사장도 곧 교체될 것이기 때문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자는 의견이 나올 법도 한데.
"말씀대로 이제 고대영 사장 퇴진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 파업의 목적이 사장 퇴진인데 사장과 보직자들이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저희가 올림픽 준비에 들어가면 자칫 파업 동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될까 우려하는 부분도 있어요. 고대영 사장이 퇴진해야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경영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인데 그런 사장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잖아요. 국가적인 행사인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를 하나도 못 할 정도로 능력이 없는 사장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준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많아요."

- 어쨌든 공영방송이 자국에서 열리는 국가적 스포츠 이벤트 준비를 안 하는 건 직무유기로 볼 수도 있는데.
"사실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중계하는 것이 KBS 스포츠국의 존재 이유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러나 스스로 우리의 존재 이유를 지워가면서도 파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 KBS를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이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한 번의 올림픽 방송은 좀 더 잘할 수 있겠지만 KBS가 정상화되고 국민에게 돌아가는 과정에 방해가 된다면 국민의 관점에서도 오히려 더 큰 걸 잃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해요."

-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무언가요?
"아무 준비도 못 하고 있는 게 제일 큰 문제죠. 소치 동계 올림픽을 기준으로 10월에는 올림픽 방송 관련 계획이 사장에게 보고됐거든요. 이제 12월도 다 지나가는데 사장이 방송 계획 관련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방송 캐스터, 해설을 포함한 방송단 규모는 물론이고 방송 계획 중 확정된 부분이 거의 없거든요. 부사장 주재 TF도 파업 전에 1번 회의하고 못 하다가 오는 28일에 다시 회의한다고 해요. 스포츠국의 취재·중계 등 제작 실무인원 중 취재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업 중이니 회의가 제대로 될 리 없을 거라 예상하고 있어요. 이제 두 달도 안 남았는데 방송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다니 큰 문제지요."

- 파업 끝나면 바로 복귀해서 평창 올림픽 중계방송은 해야잖아요.
"물론이긴 하지만 질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려면 사전 인터뷰도 하고 선수들 훈련 모습 등 영상자료도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니 중계방송과 경기 하이라이트만 보내주는 정도로 최소한의 방송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고 사장이 나가야 그게 가능합니다. 올해를 넘기고 올림픽이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기본적인 방송도 못 할 수 있어서 초조합니다."

- 이에 대해 사 측의 대안이 있나요?
"아마 스포츠 기자와 PD가 못 들어가면 대체로 자회사인 KBSN 스포츠를 투입한다든지 프리랜서 PD들을 모아 방송을 임시방편으로 방송을 때우려고 시도할 겁니다. 그러나 그건 제대로 된 방송이 아니고 단지 올림픽을 방송한다고 생색내기 위해 파행 운영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그럼 전망은 어떻게 하세요?
"지금 강규형 이사의 해임통보로 일정이 나온 거라고 봐요. 행정 절차만 남은 거로 보고 다들 파업 종료 시점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방통위가 한 명의 이사 해임을 제청하면 파업을 접을지 아니면 고 사장이 해임될 때까지 파업을 이어갈지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치열하게 논의 중이지요. 빨리 해결되어 파업을 접고 들어가 올림픽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태그:#김영민, #KBS 새노조, #평창 동계 올림픽, #스포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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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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