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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山頂)에서 바라보는 길, “길은 주인이 없어 그 위를 걷는 사람이 주인이다”
 산정(山頂)에서 바라보는 길, “길은 주인이 없어 그 위를 걷는 사람이 주인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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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수 떨어진 낙엽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찬 바람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스산한 겨울 거리를 황량함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파릇파릇 돋았던 청춘의 봄이 엊그제인데 어느새 무성한 여름의 녹음을 보내고 만산홍엽, 불타는 가을을 지나 허무하게 떨어져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헤매고 있다. 잎새의 한 세상살이가 이렇듯 우리의 삶도 나고 멸함이 이렇게 짧고 허망함을 바람에 불려 가는 한 닢의 나뭇잎에서 반추해보는 계절이다.

겨울은 일년의 끝과 새로운 일년의 시작이 겹치는 계절이다. 하루, 한 달, 일년 사계절도 영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매듭이며 단락일 뿐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일 년 열두 달을 자기들만의 언어로 독특하게 말하고 있다.

크리크족은 12월을 '말을 아끼고 한 해를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침묵하는 달'이라고 부른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진혼곡처럼 부르며 백인 기병대에게 쫓겨 가던 체로키 족은 '다른 세상의 달'이라고 한다 '나뭇가지 뚝뚝 부러지는 달'. '무소유의 달'. '늑대가 달리는 달'이라고 부르는 종족들도 있다.

12월을 순우리말로 '매듭달(Knot moon)'이라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끄트머리 달'을 의미한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매듭과 새로 시작될 날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는 12월은 어떤 이들에겐 회한과 후회가 어떤 이들에겐 다시 이어질 새로운 순환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이라는 환한 힘을 담고 있을 것이다.

잎새를  떨군 채 서있는 겨울나무는 다 비우고 벗어도 아름다운 게 무언지를 설파 하고 있다
 잎새를 떨군 채 서있는 겨울나무는 다 비우고 벗어도 아름다운 게 무언지를 설파 하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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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년을 되돌아보며 준엄한 심판대에 서는 심정으로 겨울산에 오른다. 봄과 여름 가을의 산들은 저마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겨울의 산은 독특한 매력으로 나를 이끈다. 겨울 산의 풍경은 솔직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계절에 맞춰 옷을 바꿔 입는 숲은 겨울이 되면 비로소 속살을 드러내며 내밀한 신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산의 솔직한 고백을 듣는 듯하다. 진실한 교감을 나누는 순간이다. 겨울산은 많은 사색에 빠져들게 한다. 이 모두가 겨울산이 주는 매력이다.

잎을 다 떨군 채 서있는 겨울나무는 오히려 본질적이다. 잎사귀에 가려져있던 본성을 드러낸다. 앙상한 가지 끝에 한겨울의 삭풍이 스산하다. 생(生)이 있으면 멸(滅)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잎이 지듯 저렇게 삶을 마감하리라. 겨울나무가 비감(悲感)에 젖게 한다. 겨울나무는 다 벗어버리고 비워내도 아름다운 게 무언지, 절망에서 어떻게 일어서는지, 다시 피워낼 꽃과 잎새들을 위해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역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삶이란 화투판에서 밑천 다 날리고/ 새벽, 마루 끝에 앉아 냉수 한 사발 들이켜는 것/ 몸뚱이 하나, 혹은 불알 두 쪽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 저 겨울나무들을 바라볼 일이다/ 스스로 벌거벗기 위해 서 있는 것들/ 오로지 뼈만 남은 몸 하나가 밑천인 것들/ 얼마만큼 벗었느냐, 우리도 절망을 재산으로 삼을 도리밖에 없다··· (안도현의 '겨울나무에게서 배운다' 중에서)

낙엽이 수북이 깔린 푹신하고도 평탄한 비단길이다
 낙엽이 수북이 깔린 푹신하고도 평탄한 비단길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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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까악 까악 울어대는 산 까마귀의 공명(共鳴)이 겨울산의 적막감을 더해준다. 발밑에 깔려 바스락 거리는 낙엽들은 '동병상련'이라는 원초적인 연대감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고 온기를 더하고 있다. 밟히고 뭉개져 기꺼이 다른 나무들의 거름이 되고, 때론 곤충들의 따뜻한 이부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운 '이타(利他)의 삶'이 무언지를 보여주고 있다.

낙엽이 수북이 깔린 푹신하고도 평탄한 길을 지나니 가파른 산길이다. 무릇 우리 세상사는 이치가 이러할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힘든 길이 차츰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다. 추운 겨울날 왜 산에 가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육신의 고통이 점차 평화와 고요함을 지나 평정의 순간으로 변해가는 이 아름다운 '승화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땀과 함께 미움과 집착을 버린다. 차가운 바람으로 눈을 씻는다. 깊은 들숨으로 폐부를 씻어낸다. 겨울 산은 정화수와 같다.

산비탈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있는 소나무, 정체성을 지키며 산다는 건 명예로운 일이다
 산비탈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있는 소나무, 정체성을 지키며 산다는 건 명예로운 일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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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있는 소나무를 만난다.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군 후에도 자신만의 푸른빛을 지키고 있다. 휑하고 허허로운 산속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우뚝 서있는 푸른 소나무는 쉼 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어떻게 중심을 잡는지를 설(設)하고 있다. 홀로 푸르게 산다는 건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척박한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려 근본을 잃지 않고 자아를 지키며 살아가는 건 명예로운 일이다. 소나무가 있어 겨울산은 더욱 아름답다.

산기슭을 돌아서 일련의 암릉과 조우한다. 눈이 시리게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팔 벌리고 서있는 입석들이 경이롭다. 바위 사이사이 억새들은 피와 살을 다 말린 채 흔들리고 있다. 흔들린다는 건 유연함이다. 유연함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가끔은 흔들려도 괜찮다. 바위 아래 양지바른 평지에 무덤이 있다. 따뜻한 햇볕 아래 편안히 누워계시는 님은 누구 시길래 이렇게 아름답게 삶을 완성하셨을까.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세상은 한 큰 도시, 너는 이 도시의 한 시민으로 이때까지 살아왔다. 아, 온 날을 세지 말며, 그 날의 짧음을 한탄하지 말라. 너를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부정(不正)한 판관이나 폭군이 아니요, 너를 여기 데려온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 대로 무대에서 나가듯이.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3막으로 극 전체가 끝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작자(作者)의 상관할 일이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기쁨을 가지고 물러가라. 너를 물러가게 하는 것도 혹은 선의에서 나오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양하 '페이터의 산문' 중에서)

삼광대 입석 밑 양지바른 곳의 무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삼광대 입석 밑 양지바른 곳의 무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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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山頂)에 올라선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본다. 까마득하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평탄하고 푹신한 비단길도 있었다. 왜 이 길을 택했을까 후회도 했다. 때론 죽을 힘을 다해 헐떡거리기도 했다. 걸어왔던 험난한 길 위에 나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할까. 보잘것없는 여정이었기에 후회와 회환이 남는다.

산정에 서서 저너머 미지의 길을 바라본다. 산정은 종점이 아니다. 또 다른 출발점이다. 길 너머 길이 있고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눈에 어리는 저길은 평탄할까. 울퉁 불퉁할까. 하늘을 본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건 매서운 겨울바람 탓 만은 아니다.


태그:#겨울산, #겨울 나무, # 겨울 소나무, #길은 주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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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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