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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주사 와불(臥佛). 아직 누워있는 사랑,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랑.
 운주사 와불(臥佛). 아직 누워있는 사랑,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랑.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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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화순에서는 늘 여기가 끝이자 시작이었다. 아니 고달프고 쓸쓸한 날엔 항상 여기로 밀려왔다 여기서 다시 일어났다.

사람들은 여기를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며 운주사(雲住寺)라고 했다. 더러는 '배가 가는 길'이라며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했다. 구름이든 배든 한 곳에 영원히 머무는 법이 없다. 정주하지 않고 유랑하는 것들의 거처, 운주사.

우리 사랑도 머물 데 없이 떠돌다 잠시 이곳에서 쉬어가기도 했었다. 수더분한 언덕에, 마음 너른 들에 우리 세상살이처럼 이모양 저모양으로 널브러져있는 석불과 석탑들. 그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신탁했었다. 그것은 그냥 돌이 아니라 고향집 어머니였고, 든든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우리들 눈물이 뚝뚝 떨어져 석불의 눈이 되었다. 우리가 안긴 한숨이 너무 무거워 몇몇 석불은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몇몇 이야기는 꽃을 피워 탑이 되었다. 그것이 천년의 설화인지, 백년 된 이야기인지, 지금 이 순간 자체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운주사 천불천탑(千佛天塔)은 여전히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으리.

운주사의 주인은 구름도, 배도, 사람도 아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이 잠시 머물다 갈 뿐.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고, 배는 물결을 흘러가고, 사람은 생(生)을 흘러간다. 모두 우주의 작은 배 같은 존재들이다. 애초에 주인이 따로 정해져 있는 절이 아니다 보니 창건설화도 여러 갈래다.

 운주사 석불들은 친근한 미륵의 형상을 하고 있다.
 운주사 석불들은 친근한 미륵의 형상을 하고 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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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도 핑매바위 설화를 갖고 있는 마고 할미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핑매바위 설화는 마고 할미가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함께 할 요량으로 200톤 넘는 돌을 치마폭에 싸고 가다가 다 만들었다는 말에 빈정 상해 확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다. 200톤이 넘는 돌을 빈정 상해 던져버릴 능력을 갖춘 할미니 하룻밤 사이에 절 하나 짓고 천불천탑 만들어내는 것쯤이야....

다음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다. 기록에 따르면 도선국사는 이 땅에 지어진 사찰 중 79개를 창건했고, 17개 사찰의 중창에 간여했다. 도선국사는 우리나라 지형을 떠가는 배로 보았다. 태백산·금강산은 뱃머리, 월출산과 한라산은 배꼬리, 부안 변산은 배의 키, 지리산은 삿대이고 운주사가 있는 땅은 선복(船腹, 뱃구레)라는 것이다. 배가 균형을 잡고 솟구치지 않으려면 선복에 짐을 실어 무겁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선복 자리인 운주사 일대에 절을 짓고 천불천탑으로 무게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운주사 창건설화 중 가장 널리 퍼진 게 도선국사 창건설이다. 하지만 까칠한 연구자들은 도선국사 창건설에 바로 이의를 제기한다. 도선국사는 9세기에 살았던 인물인데 운주사 유적들은 12~13세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궤를 같이하는 것이 13세기 창건 설이다. 고려를 쳐들어온 몽골은 고려인들의 저항의식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려 불교의 상징이었던 황룡사 구층목탑을 불태워 버린다. 황룡사 구층목탑을 대신할 항몽의 상징물을 급히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운주사와 천불천탑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여 기만이 남아 있지만 1942년까지만 해도 석탑은 30기, 석불은 213기가 있었다고 한다. 중종 25년(1530)에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의 능성현(綾城縣) 편에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 개 있다고 기록돼 있다. 능성현은 지금의 능주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 있다.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사랑의 내력이 다르듯 창건설화도 다르다. 기대하는 사랑의 내용이 다르면 관계의 형상도 달라지듯 운주사와 천불천탑에 기원했던 마음도 여러 갈래였으니 당연한 이치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그 무엇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운주사 일주문 전경.
 운주사 일주문 전경.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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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주사에선 의례의 관문이 없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석불 석탑들의 행렬이 시작된다.
 운주사에선 의례의 관문이 없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석불 석탑들의 행렬이 시작된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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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에는 보통 사찰이 강요하는 의례의 관문이 없다. 사천왕문(四天王門), 해탈문(解脫門) 같은 사전 의례의 구간이 없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석불과 석탑들이 구름처럼, 배처럼 밀려온다. 저마다 모양이 다르게, 저마다 크기가 다르게, 저마다 사연이 다르게 밀려오는 저 징한 것들. 사랑이다, 사랑은 느닷없는 벼락처럼 밀려온다.

벼락처럼 찾아온 사랑은 하나같이 통념을 깬다. 운주사 천불(千佛)이 하나같이 다른 형상을 한 미륵불인 것처럼. 사랑하므로 희망한다. 사랑하므로 기도한다. 사랑하므로 반역한다. 저 돌을 깨야 미륵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사랑은 통념을 깨고서야 비로소 찾아왔다.

그리고 우린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넌다. 일제히 노 저어 나아가는 배들, 은하수 건너 기슭에선 그대가 피리를 불고 있다. 마중하는 그대는 마고의 딸, 수천 톤 넘는 돌을 깎아 별을 만들어 뿌리고 있다. 은밀한 사랑의 씨앗이다.

와불(臥佛), 아직 누워있는 사랑,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랑이다. 마고의 딸이 뿌린 사랑의 씨앗들이 대지를 적신다. 천년 동안 잠자고 있던 와불이 슬며시 눈을 뜬다. 헛기침 슬쩍 하며 옆지기도 깨운다. 함께 서서히 일어나 걷는다. 세상 센 것들은 납작 엎드려 절을 하고, 세상 못난 것들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춤을 춘다. 천년의 사랑이 다시 시작하는 여기는, 운주바다.

 천불천탑은 매우 친근한 모양을 하고 운주사 일원에 자리잡고 있다.
 천불천탑은 매우 친근한 모양을 하고 운주사 일원에 자리잡고 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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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을 피우듯 사람들의 기원이 석탑으로 쌓인 운주사 천불천탑.
 연꽃을 피우듯 사람들의 기원이 석탑으로 쌓인 운주사 천불천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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