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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의 재합법화 요구가 뜨겁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갑고 당연한 일이다. 전교조 재합법화 요구는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 5월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이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로 이루어지자 전교조 재합법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졌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교육부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보자는 말뿐, 아직까지 별 반응이 없는 상태다. 

인터넷에서 '전교조 재합법화'를 검색해보니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다음 글귀가 눈에 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해고된 교원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수만 명 조합원이 가입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바로잡는다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단결권을 인정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서 향후 노동권 문제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시급히 전교조의 재합법화 선언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탄핵된 정부가 저지른 '만행'이니 촛불 시민혁명으로 새롭게 세워진 정부가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그 방법도 간단하다. 2013년 전교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를 철회하면 전교조 재합법화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헌법재판소도 "교원이 아닌 사람이 교원노조에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법외노조로 할 것인지 여부는 행정당국의 재량적 판단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국제교원단체연맹(EI)도 '한국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 규탄 긴급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많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음에도 왜 유독 전교조 재합법화 논의만 뒷전이 된 것일까? 문재인 정부에게 전교조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국민 여론 상 시기상조라는 판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정부의 판단이 잘못되었거나 지나친 기우였음이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났다.

지난 13일 전교조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서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현재 법외노조 상태인 전교조의 재합법화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찬성 56.8%, 반대 26.1%로 나타났다. 또한 '전교조 조합원 중 해직교사가 9명 있다는 이유로 6만 조합원의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3%가 '전교조 탄압 위한 부당조치'라고 답했다. '법률에 근거한 합당한 조치'라고 여기는 응답자는 19.9%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의외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사실은 나로서도 조금은 의외였다. 결과적으로는 촛불 시민혁명을 전후하여 국민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전교조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깊은 오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전교조는 과격하고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것이 그 오해의 실체다. 정말 그럴까?   

전교조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호주나 프랑스 등 대다수 다른 나라에서는 교사들도 파업을 한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파업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 그동안 전교조는 파업은커녕 정부를 상대로 교사들의 월급을 올려달라고 투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전교조가 투쟁한 내용은 오로지 '교육 정상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런 예는 세계 교원노조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희귀한 일이어서 대한민국의 전교조가 노조가 맞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상당수 국민들이 전교조를 과격하고 이기적인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얼마 전, 모 언론사에 기고한 재불 작가 목수정의 글의 일부다. 교사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프랑스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볼 수도 있겠다. 사실은 나도 조금 놀라면서 읽었다.    
       
"2013년,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법외노조가 된다. 불의한 권력을 향해 싸우다 해고된 교사 9명을 노조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프랑스에서 9년째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로서, 숱하게 교사들의 파업을 겪었다. 정부가 교원 수를 줄이거나, 학교 지원을 축소할 때, 그들은 파업으로 응수했다. 그때마다, 아이 교사가 파업에 동참하는지 확인하고, 안도하곤 했다. 정의를 위해 함께 싸울 줄 아는 교사 밑에서 아이가 배우고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다.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연대하는 시민들의 힘이 살아 있는 한, 사회는 대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나는 전교조 교사가 아니다. 이태 전에 정년 퇴임으로 학교를 떠났기 때문이다. 교직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레 전교조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전교조 조합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교직에 있는 동안 전교조는 나에게 '진실'의 다른 이름이었다. 전교조가 한 일이 모두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전교조 교사로 살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아직도 학교가 입시경쟁의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들이 공부 기계로 전락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슬프고도 불행한 일이 해마다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직을 떠났다고 해서 이 죄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터이다.  

1987년, 6월 항쟁이 있던 바로 그해 나는 교사가 되었다. 내가 첫 교단을 밟은 학교는 전형적인 부패 사학이었다. 이게 학교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그해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전국교사협의회)이 탄생했고, 그 조직적인 후원과 응원에 힙입어 재단과 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바로 그 무렵의 일이다. 나를 유난히 잘 따랐고 나도 좋아했던 K라는 아이가 있었다. 재단과 싸움이 있었을 때 녀석은 눈물로 나를 위로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동료 교사와 식당에서 막 나오다가 K와 마주쳤다.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재단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서 싸워온 이력이 있는 동료교사는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그는 K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오열을 터뜨렸다. 

"너 인마! 네가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선생님을 미행해?"

나는 내 귀를 의심했고, 그다음은 분노와 슬픔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녀석은 멱살이 잡힌 채 펑펑 울면서 이렇게 말을 토해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요.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취업 안 시켜준다는데요."

K는 나중에 그 일을 진심으로 뉘우쳤고 나와의 우정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한순간이나마 악마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 학교를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재단과의 생사를 걸다시피 한 치열한 싸움은 진실의 승리로 귀결이 되었고, 그로 인해 재단이 뒤바뀌면서 학교는 점차 학교로서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누구보다도 학생들에게 좋은 일이었는데 전교조(당시 전교협)와의 조직적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게 전교조가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고백하자면, 내가 전교조 교사가 된 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교사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을 지라도 그 시작은 교사로서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교육 정상화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무엇보다도 내가 첫 교단에서 만난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 '고백하자면'이라는 수사를 덧붙인 이유가 있다. 내가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원노조에 가입을 한 것이 꼭 타당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교원노조에 가입한 첫째 동기가 교사인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교원노조의 설립 목적은 교사의 권익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는 대다수 전교조 교사들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민주적이지 못한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 교사로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상의 평화를 포기하고 고통스럽게 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그런 불편함을 무릅쓰고 전교조 교사로 살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진실 회복과 정의 구현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해서다. 그리고 당시의 열악한 현실 속에서는 그 길뿐이었노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잘못된 교육구조 속에서 언제나 최종 피해자는 학생들이었고, 개인 교사의 순정한 열정과 진실만으로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런대도 집단 이기주의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면 허탈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남의 일 같아서다.      

전교조가 출범한 1989년 여름, 한 시사 월간지는 당시 문교부가 대외비로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보낸 공문 하나를 입수해 공개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다. 내용은 이렇다.   

*촌지를 받지 않은 교사.
*학급 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신문반, 민속반 등의 특활반을 이끄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아이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
*자기 자리 청소를 잘 하는 교사.
*학부모 상담을 자주 하는 교사.
*사고 친 학생을 정학이나 퇴학 등 징계를 반대하는 교사.       

물론 이런 전교조 교사들을 식별해내어 상을 주자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교장이 왕인 학교에서 눈엣가시인 '벌떡 교사', 권위주의적 정치 권력의 지배 아래 숨 막히는 학교의 '민주 교사'를 교육 당국과 일선 학교의 관리자들은 학교 현장에서 본 바를 아주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본의와는 전혀 상반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겠지만 모처럼 정직한 일을 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30년 교직 생활 동안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용기를 내서,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학생들을 위해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좀 더 열심히 하고 나올 걸 하는 아쉬움도 크다. 그럼에도 내가 교사의 삶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에게 전교조가 없었다면 모든 것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많은 것이 아쉽고 부끄럽지만, 교직에 있는 동안 내가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는 전교조 조합원이 된 일이고, 또 하나는 첫 담임을 맡았던 해부터 생일을 맞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삶을 엮어 생일 시를 써준 일이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하며 부족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무쪼록 전교조 재합법화가 조만간 이루어져 교육선진국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작은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지금은 새벽 4시, 잠에 깨어나자마자
너에게 편지가 왔을까 궁금했는데
'사랑하는 선생님께…'라는
반가운 글씨가 눈을 즐겁게 하는구나

대학에도 가고 싶고, 취업도 하고 싶고
돈도 디따 많이 벌고 싶고
미용도 배우고 싶고, 춤도 배우고 싶고
그러나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것이 우리 수미의 현주소구나
그런데 넌 알고 있을까?

대학에 가든, 돈을 디따 많이 벌든
무엇이든 한순간에 이룰 수는 없다는 거

무엇이든 아픔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거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거

수미야,
너의 열일곱과 열여덟의 사이가
깊고 푸른 강 하나는 건너듯
그렇게 큰 걸음이었으면 좋겠다

강을 건너와서는
후회 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을
너의 그 환한 미소로
예쁘게 환송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그때 나는 네가 발 딛고 건너는
작은 징검다리였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일부 내용이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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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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