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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나이 오십 넷. 전보다는 몸의 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져서 듬성듬성해지고, 하얀 머리도 많아 염색을 하지 않으면 봐줄 수 없을 정도이다. 얼굴과 목에 주름도 많이 생겨 나이가 든 티가 팍팍 난다. 시력도 많이 가서 돋보기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몸의 기능이 약화되었다고 해서 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고, 책을 보지 못할 정도도 아니고, 잠을 못 자거나 음식을 먹지 못 하거나 하지 않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상 생활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나이가 들면 하드웨어는 약화될 지라도 소프트웨어는 더 강해진다. 몸의 근육은 약화될지 라도 정신의 근육은 더 단단해진다. 예전에 흔들렸던 것들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며, 예전에 부러웠던 것들이 더 이상 부럽게 되지 않는다. 물론 부러움의 대상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예전처럼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살아보니까 성공이란 것이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예전에는 부와 명예가 인생의 목표가 되었지만 지금은 잘 사는 것이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잘 사는 것이란 굳이 부와 명예가 없어도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성공이 큰 의미를 갖지 못 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을 못 하더라도 부와 명예가 없더라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이 듦이 나쁘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정신적인 근육이 단단해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이런 느낌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느껴지는 것이다. 젊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이해할 수가 있을까? 성공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성공한 삶을 살았던, 실패한 삶을 살았던 이 나이가 되면 정년이 가까워져 모두 내려놓아야 하거나, 이미 내려놓았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문제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축된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누구
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지고, 일 년은 365일이 주어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하지만 이 나이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다.

이 나이가 되면 건강이 복병이 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누구도 모르게 되는 나이이다. 오늘 건강하다가 내일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물론 젊은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나이는 그 확률이 젊은 사람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곳에 이제껏 구축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것인가? 그것은 즐겁게 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성공하려는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부와 명성과 삶의 보람을 가져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우리 나이가 되면 부와 명성은 어느 정도 확정이 된 나이가 된다. 많이 가지거나 적게 가지거나 남은 생애 동안 크게 변동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보람된 삶이 가장 큰 의미가 되는데 그 보람된 삶이라는 것의 궁극적 목적은 즐거운 삶을 사는 데에 있다.

그런데 즐거운 삶이란 돈이나 명성이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즐거워지는 것을 하면 된다. 낚시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나처럼 글을 쓰거나. 돈은 좀 못 벌면 어떤가?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는 것인데. 내 생애 쓸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되고 못 벌면 안 쓰면 되는 나이이지 않은가. 아이들을 들먹일 수가 있겠지만 그것은 지금처럼 그냥 해나가면 된다.

우리 부부는 토요일마다 바닷가 카페에 와서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대화를 나눈다. 서로의 일에 대해서, 아이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지나간 일에 대해서, 오늘은 무엇을 먹고 내일은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 나는 그것이 즐겁다. 이런 삶이 즐겁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태그:#CYYOU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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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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