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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숨가쁘게 지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안온하게 누일 집을 짓지 못한 이들처럼 휘둘리는 마음 한 자락 놓을 곳이 없다.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평정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삶의 시간을 영혼을 팔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연일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 사고를 접하며 그 많은 사건 사고의 대부분이 사람의 탐욕과 부도덕성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과연 다른 동물보다 더 나은 이성과 마음을 지닌 생각하는 존재인 '사피엔스'인가 자문하게 된다.

대부분의 나날을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원초적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때로 자기 자신에게 "지금 뭐하며 사는 거지, 내가 인간으로 사는 거 맞나"라는 '사피엔스'로서 존재의 물음을 던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사피엔스의 마음> 어떻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살 것인가
 <사피엔스의 마음> 어떻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살 것인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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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마음>(안희경 지음/위즈덤하우스)은 12명의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나 묻고 답한 인터뷰를 정리한 글이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이라도 연말이나 연초, 혹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비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죽음과 만나는 순간에 자문했을 법한 의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이는 프롤로그 말미에 이렇게 썼다.

'들판을 뒤덮는 강아지풀처럼 세상에 왔다 간 이들의 생각, 그들의 행동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놓았음을 확인하게 됐다. 사려 깊게 길러낸 생각들, 졸인 마음 다잡고 옮겨낸 행동들이 세상의 억압을 녹여온 힘이었다. 살기 위해 살았다 하더라도 무수한 나들이 살아낸 일상이 오늘을 움직이는 관성으로 이어진다.

그들인들 알 수 없이 들이친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사람답게 살려고 버둥거린 그 힘에 오늘 나 또한 인간으로 사는 시간을 희망한다. 언젠가 억압이 소멸된 시간이 만들어지고 내 일상도 그 안에 고임돌이 될지 모른다 생각하니 어금니에 힘이 실린다. 정성껏 살아보자. 눈이 뜨인다. 과거의 힘이 나의 오늘을 살리듯 내 마음이 내일 누군가의 일상으로 이어지리라.' - 11쪽

사는 게 버거워 매일 악귀처럼 싸우며 살던 지옥 같은 어둠의 시간이 내게 있었다. '내가 인간이 맞나 짐승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매일 내 자신에게 되묻던 시절이었다. 다스려지지 않은 타인을 향한 미움과 증오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더 용서되지 않던 시간들, 그 시절의 나를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었을까. 인간이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는 인간의 뇌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참 어중간한 만듦새로 나왔어요. 그게 인간의 비극입니다. 인간의 뇌는 세 층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동족도 먹어치우는 파충류 뇌, 거기에 제멋대로인 원숭이 뇌를 덧썼고, 가장 위에 높은 지능의 뇌가 있습니다. 세 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요.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위의 뇌는 쓰지 않고 파충류 뇌와 원숭이 뇌만 쓰며 평생을 삽니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지능적 뇌가 왜 인간에게만 주어졌는지는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지능적인 뇌를 최대한으로 쓰며 산다는 것입니다. 마루야마 겐지' -178쪽

과거의 내 일상은 미래의 인간 누군가의 고임돌이 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인간의 마음으로 살아내지 못한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풍랑이 잦아든 순간에 이 책을 집어 든다면 아마도 자신의 일상도 누군가의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미래의 내 아이에게 내 일상이 고임돌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느낌을 가지리라.

가난하지만 영혼만은 팔지 않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 인간의 시간을 인간으로 살아야 할 이유, 마음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물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내달리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향한 질주를 멈춰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가.

인터뷰어가 만난 이들은 진화 심리학자, 시인, 환경운동가, 뇌 과학자, 뇌 생물학자, 수녀, 사회학자, 작가, 현대미술가, 스님, 철학자 등 물질적 관점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이와 정신세계를 궁구하는 이가 어우러져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 모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며 인간의 시간을 살기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찾아 마음의 집을 세울 고임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집이 없는 이들은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고 열매에 단맛이 스며 익어가도록 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달라 기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어진 생의 황혼녘이 다가올 때까지 '마음의 집'을 세울 고임돌을 찾아 헤매는 발걸음은 멈추지 못할 것이다. 누가 생각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인간의 삶을 포기하지 않듯, 우리 모두는 생각하는 동물, 인간이라 불리는 마음을 지닌 '사피엔스'이므로.

가을날 /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 시계詩計)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 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길을 헤맬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사피엔스의 마음/ 안희경 지음/ 위즈덤하우스/ 15,000원



사피엔스의 마음

안희경 지음, 위즈덤하우스(2017)


태그:#사피엔스의 마음, #마루야마 겐지,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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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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