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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바윗덩이처럼 무겁게 누르고 있는 군대 문화가 있다. 군대 '갑질' 이야기가 떠도는가 하면, 노예병, 농사병 등의 모멸감을 느낄 만한 말들에 우리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또한 군의 최고위급 지휘관들이 방산 비리 등 각종 문제로 법정에 기소되고, 구치소에 감금되는 상황이 수두룩했다. 상당부분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이만하면 '도덕 강간'이라 부를 만하다.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의 평화와 안전을 번드르르하게 입에 담지만, 속으로는 제 잇속 챙기기에 정신이 없다. 도덕이 사라지는 일이다. 남과 북의 휴전 상황에서 국민의 안보를 볼모로 잡고, 국가의 기강을 겁탈하는 행위다.

표현이 거칠고 세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도 군에서 자녀를 잃은 어머니는 찢기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살아가고 있다. 산다는 표현조차도 그들은 고개를 도리질 쳤다. 숨만 겨우 쉬고 있다는 어감이 더 적확한 것은 아닐까. 더불어 국민의 세금은 여전히 국방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김진형,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김진형,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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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군에 대한 언급은 지금껏 금기 되어왔던 영역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세태가 변하고 국민의 자각이 성숙됨에 따라 금기의 영역은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군의 바깥이 아닌, 군에서 일평생 생활하고 전역한 사람의 입에서 '군대 문화를 되짚어 보자'라는 내용을 담은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바로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이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사관학교 시절을 포함하여 38년 동안 군에 몸담았다고 했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군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일생은 군대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를 보면, 저자 김진형은 해군 군수사령관, 합동참모 본부 전략기획부장, 제1함대 사령관, 청와대 국가위기 관리 센터장(비서관), 정보사령부 제2정보여단장, 구축함<문무대왕함>과 초계함<제천함> 함장을 지냈다고 적혀 있었다. 

관습처럼 이해하면 별 문제 없을 군대문화에 대해 저자는 오랫동안 생각한 듯 했다. "왜 이런 행사를 해야 하는지, 행사의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꼭 이렇게만 해야만 하는 것인지."(4쪽). "이후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3년여 근무하면서 미국 군대문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5쪽)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단다. 

일방적인 어휘, 교감할 수 없는 명령과 통제를 표상하는 군대의 문화는 무엇일까. 저자는 '단문화'라고 했다. 모두가 잘 보일 수 있게 간부는 구령대를 오른다. 그리고 연병장에 도열한 병사들에게 차렷 열중셧 쉬어를 외친다. 실제로 쉬어를 듣고 짝다리를 짚는 병사는 없다. 열중셧 했던 어깨의 힘을 살짝 빼는 것 정도였다. 

군대 문화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도열문화였다. "좌우로 줄"이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병사 개개인을 위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간부의 위상과 명예를 위해, 병사들이 서 있는 것은 아닌가. 강한 군대의 표상은 언제나 반듯해야 했다. 그것이 설혹 개인정비 시간이라 불리는 휴식시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감정의 이완보다는 상대적으로 긴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2년이었다. 

책 내용 중에, 군함이 부두에 입항한 후 수병들이 함께 홋줄을 당겨 배를 육지에 고정시키고 있다. 군의 인권보호는 곧 이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과도 직결된다. (110~111쪽)
 책 내용 중에, 군함이 부두에 입항한 후 수병들이 함께 홋줄을 당겨 배를 육지에 고정시키고 있다. 군의 인권보호는 곧 이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과도 직결된다. (110~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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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역시, 소통에 있어, 특히 지휘관의 훈시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폭염 속에 뜨거운 열기가 훅훅 올라오는 아스팔트 위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생도들의 애처로운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오직 연설의 마지막 단어인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기색이 역력"(130쪽) 하다며, 공감할 수 없는 일방적 식사(式辭)법에 대해 지적했다.

외국의 경우와 대조하며, "단상에는 행사와 관련된 최소한의 인원이 올라가고, 초청 귀빈이라 해도 단상 앞자리에 앉아서 경청한다", "발신자인 지휘관 자신만의 일방적 만족이 아니라, 수신자인 장병이 듣고 공감할 수 있는 훈시 문화가 진정한 소통의 시작"(131쪽)이라고 했다. 도열이라는 단어 속에 뻣뻣하게 부동자세로 서서 듣는 긴장감 속에는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책을 피상적으로 읽고 싶지 않았다. 왜 저자는 지금 이시기에 이런 글을 대중에게 선보인 것일까. 명예와 권위에 대한 가치가 변하여 충분히 대중적으로 이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일까.

책을 관통하는 군대문화의 키워드는, 배려, 존중, 소통, 그리고 정직이었다. 군대의 행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에게 초점이 가야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배려다. 저자가 말한 작은 단문화였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무명용사를 국가는 어떻게 대우하는가. 그것이 존중의 문화였다. 일방적인 훈시가 아닌 편안함 속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문화가 소통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군대에 대한 불신은 정직하지 못한 사건사고 처리였다. 군부대의 은폐 문화는 생각해 볼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군대에는 사고를 대할 때마다 언론 보도와 국민적 반응의 격차에 따라 처벌과 책임 수위가 결정되는 문화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신뢰 할 수 있는 조사를 통해 분명한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이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182쪽)며 2000년 10월에 있었던 예멘의 아덴에서 재급유 중이던 콜(Cole) 함 피격 사건의 사후 처리 과정을 예로 들었다.

사건 발생 두 달 후, 클라크 해군 참모총장은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테러리스트라고 밝히고, 함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병력보호 조치를 합리적으로 시행했다며 함장과 승무원에게 징계 조치를 내릴만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181쪽)는 것이다.

김 제독의 글을 보고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는, 사건의 전후 발생 과정, 처리 과정이 투명했을 때 전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군은 투명은 손사래 치더라도 무조건적인 사건 크기 줄이기에 여념이 없는 듯 한 모습을 여러번 보여 왔다. 따라서 김 제독의 말한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는 병사의 죽음으로 육군참모총장까지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182쪽)라는 말은 쉽게 동의 되지 않았다.

병사의 죽음이라는 추상성이 아닌, 병사의 어떤 죽음인지에 대한 구체성이 곁들여 졌을 때, 정말로 육군참모총장까지는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군은 변화를 이야기했고, 마땅히 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탁상공론식의 이미지 변화만을 모색해서는 결코 안 된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직도 군에 대해 애증을 직,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는 자랑스러워'를 백번 말하는 것보다, '너는 자랑스럽다'를 국민에게 듣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자, 지금부터 어떻게 하실래요?

덧붙이는 글 | 김진형,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맥스미디어/2017), 전체 268쪽, 값 15,000원.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김진형 지음, 맥스미디어(2017)


태그:#김진형,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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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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