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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을 위시한 가상화폐를 맹렬히 지지하는 '사이퍼펑크(Cypherpunk)'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상화폐를 널리 사용하는 것이 프라이버시의 보호는 물론 정치적, 사회적 변혁을 가져온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가상화폐를 통해 금융시스템을 변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의 공동저자 마이클 케이시와 폴 비냐가 그런 사람들이다.

유튜브에서 데니스 쿠시니치(Dennis Kucinich)의 미국 의회 연설 동영상을 검색해 보라. 연방준비위원회(Federal Reserve)는 택배회사 페덱스(Federal Express)와 마찬가지로 '연방(Federal)'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동영상이다. 그것은 그냥 이름일 뿐이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위원회는 놀랍게도 정부 기관이 아니다.

금융서비스는 공공재여야 한다. 거래를 손쉽게 하고, 가치를 측정하고 저장하는 시스템을 일부 사람들의 손에 쥐여주고 수수료를 받게 하는 것은 경제학자 리카도가 증오해마지않던 '지대'에 불과하다. 봉이 김선달에게 대동강물 사용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권리가 있었던가?

유니온페이 송금 수수료는 최대 11%에 달한다. 비트코인 송금에는 거의 수수료가 들지 않으며, 속도도 훨씬 빠르다. 과연 유니온페이가 가상화폐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쉽지만, 아마도 살아남을 것이다. 역사는 변혁을 통해 진화해 왔지만, 잘 조직된 기득권층은 언제나 자신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상당 부분 성공해 왔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춘 적은 없지만, 그 회전속도를 줄이는 데 성공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베타맥스는 VHS보다 크기도 작고 기술적으로도 우월했지만, 비디오테이프로서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문제는 정부가 기득권층과 함께할 경우다. 미국 정부가 달러를 디지털 형태로 발행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디지털 달러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국경 통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가 상당한 수준의 자본통제를 하고 있다. 국제경제학의 트릴레마(3중딜레마)란, 안정된 환율(고정 환율), 통화정책의 독립성, 그리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등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원리다. 중국과 같은 나라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하여 독립적 통화정책과 고정 환율을 유지한다. 그런데 디지털 달러의 이동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디지털 달러가 도입될 경우 중국은 환율의 널뛰기를 수용하거나, 독립적 통화정책을 포기하여야 한다. 이는 러시아나 아르헨티나와 같이 과거 수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본통제를 시도하였던 나라들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디지털 달러의 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미국의 주권 사항이겠지만, 세계 각국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둘째, 사람들의 소비 행태를 직접 조작할 수 있다. 디지털 달러의 세상에서 중앙은행은 진정한 마이너스 금리를 강제할 수 있다. 돈을 쓰지 않으면 계좌 잔액이 줄어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디지털 달러는 현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은행에서 인출하여 침대 밑에 쌓아 놓을 수 없다. 따라서 마이너스 금리에 직면한 국민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이 줄어드는 것을 보느니 소비나 투자에 나설 것이다. 그야말로 꿈의 경기부양책 아닌가.

마이클 케이시와 폴 비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달러가 다른 가상화폐들과 경쟁해야 할 것이므로, 안심해도 좋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과연 그럴까? 정부가 직접 발행하고 보증하는 가상화폐가 사적 계약에 의해 발생한 가상화폐와 같은 수준에서 경쟁을 벌일까? 예컨대 정부는 디지털 달러로만 세금을 내도록 강제할 수 있다.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정부의 비중만 보아도, 즉 정부를 하나의 거대한 거래 주체로만 생각해도 정부가 발행하는 가상화폐는 사적으로 발행된 가상화폐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나는 '블록체인은 우리 미래의 일부지만 비트코인도 그럴까?'라는 기사를 통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의 운명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말한 적이 있다. 블록체인은 살아남지만, 비트코인은 사멸하는 가장 강력한 시나리오가 바로 디지털 달러의 발행이다. 사실 달러가 아니더라도 정부 발행 가상화폐는 비트코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예컨대 중국이 디지털 위안을 발행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는 비트코인보다 안정적인 디지털 위안으로 온라인 거래를 통해 컴퓨터를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에 있어서도 비트코인에 비해 디지털 위안이 나쁠 것은 전혀 없다. 판매자들도 최소한 현재 상황에서는 비트코인보다 위안화 결제를 더 반길 것이다. 노동자로서 월급을 디지털 위안 또는 비트코인으로 받아야 한다고 상상해 보자. 선택은 뻔하다.

금융서비스는 공공재여야 한다. 아무런 혁신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제도에 의해 보장된 지대를 갈취하는 현재의 금융 권력은 경제의 비효율성에 기대어 살아간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혁신은 이 비효율성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기득권층은 반발할 것이다. 심지어 정부가 직접 가상화폐를 만들거나, 기존 통화를 디지털 형태로 발행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단결하여 비트코인으로만 거래하자고 약속하지 않는 한, 이 게임에서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시민들이 이길 가능성은 너무나도 낮다. 금융서비스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싶다면 비트코인을 사기보다는 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태그:#금융혁신, #비트코인, #가상화폐, #블록체인, #디지털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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