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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페미니즘 이슈가 부상하면서 영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아는 페미'는 현재 페미니즘 운동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영페미니스트를 조명하고, 그들의 참신한 활동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무언갈 아는' 페미, '내가 아는' 페미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이 기사 한눈에

  • 강동희 활동가는 '혐오의 타격을' 아는 페미
  • 강동희 활동가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인식한 때'
  • 강동희 활동가의 다음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다음 지방선거에 성소수자 지자체의원이 당선되는 것'
강연자 소개 세바시 851회 출연한 강동희 활동가의 강연자 소개화면
여성가족부와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함께 이름을 올려놓았다.
▲ 강연자 소개 세바시 851회 출연한 강동희 활동가의 강연자 소개화면 여성가족부와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함께 이름을 올려놓았다.
ⓒ 세상을바꾸는시간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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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 851회 녹화 현장에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 활동가 강동희씨는 "성소수자도 분명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십여분 내외의 시간동안 강동희씨는 자신과 지인들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성소수자는 분명히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구성원이며, 타인의 입장과 존재를 지우는 것은 폭력'이라는 이야기였다.

강동희씨는 무사히 녹화를 마쳤고, 해당 강연은 11월 23일 세바시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관련 링크). 그런데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성소수자 혐오 반응과 무분별한 비난이 온라인상에 터져나왔다. 온라인 공간에서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단체와 반동성애 운동단체, CBS 등에서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세바시 제작진은 영상 '비공개 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영상이 공개되고 불과 이틀 뒤인 25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영상이 내려간 직후부터 세바시를 향해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다양한 구성원의 인권에 대해 강연한 사람의 목소리를 '비공개 처리'한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였다. 이틀 뒤인 27일, 논란 끝에 세바시 측은 다시 영상을 공개하며 입장을 내놓았고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우리는 지금 2018년을 앞두고 있다. 성소수자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프로그램 제작진이 문책을 당하고, 발화자의 목소리가 '비공개 처리'되는 일이 2017년씩이나 된 지금까지 일어난다는 것은 한숨 나오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라는 제목을 내건 프로그램이 '아직 바뀌지 않은 세상'의 벽에 부딪쳐 한풀 꺾여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불과 5일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던 사건치고는 영상 재공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울 정도로 조용하다.

이 사건은 세바시 제작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할 일이다. 현재 방송 매체를 통해 다양성에 관해 말할 때 어느 수준의 어려움을 겪는지, 짧게 말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사건이다. 성소수자의 발언권이 침해된 이 사건은, 여성·장애인 등의 목소리가 이 사회에서 지워지는 현상과 맞닿아있다.

지난 5일, 사건의 당사자인 강동희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우리 시대는 앞으로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수자성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성과 연대'가 혐오의 목소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다음은 그와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

'내가 여기 있다'는 말에 쏟아진 비난... "펑펑 울었다"

- 영상 공개 이후, 세바시 제작진과는 어떤 식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제작진을 통해 들은 말이 별로 없어요. 영상 공개 후 있었던 여러 가지 반발에 대해 내부 회의를 진행했을 텐데, 저에게는 상황이 공유되거나 어떤 연락이 오지는 않았고요. 영상이 내려가는 당일에 세바시 측에서 저에게 전화를 하셨는데, 제가 행사에 참여중이라서 받지 못했어요. 행사가 끝나고 확인해보니 부재중 통화가 두 통이 찍혀 있었고, 사정을 설명하면서 '영상을 내리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하는 내용의 메일이 와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 한 번 더 미안하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게 되었어요. 통화에선 대부분 결정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고, 내부 논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어요."

- 영상이 재공개 될 때는 연락받은 것이 없었나요?
"주말에 연락이 왔었어요. '세바시의 내부 입장은 (영상을) 재공개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제 CBS랑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데 그 회의가 월요일에 있으니 거기서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알았다고 하고, 다른 사항이 생기면 알려달라고 하고 통화를 마쳤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연락이 온 적은 없고요. 저도 영상이 재공개된 상황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어요." 

-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이 강연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강연은 여성가족부랑 양성평등교육진흥위원(아래 양평원), 그리고 세바시가 함께 청년폭력예방차원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한 거였어요. 기획 내용 아래 대학생과 청년을 대상으로 자문위원회가 꾸려졌고, 거기서 패널을 추천했어요. 추천된 패널들이 원고를 써서 양평원에 보내면 양평원에서 원고를 뽑아서 진행을 하는 식이었고요. 저도 자문위원회에서 추천을 받아서 원고를 보냈고, 원고가 채택돼서 녹화까지 하게 되었어요."

- 방송출연이라는 것에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전부인 것처럼 비춰질까봐 걱정을 했어요. 아무래도 세바시 측에서는 '공감'에 대한 부분을 부각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퀴어로서의 경험이 다 같은 것이 아니고 퀴어라고 다 슬픈 건 아니잖아요.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감정적인  얘기로 시간을 채워버리면 퀴어가 전부 그런 것처럼 비춰지지는 않을까 고민이었죠.

그래서 저는 다른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는데, 원고 수정과정을 거치다보니 잘 되지 않았어요. 우선 저도 퀴어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가지기도 했고, 시간은 한정적인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넣으려다보니 어려웠어요. 그러다보니 감정적으로 가볍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넣게 되더라고요. 결국 슬픈 이야기가 한 가득이었죠. 원래는 '내 친구들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이런 얘기도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겠네요.
"아쉽죠. 심지어 그 원고에는 내 얘기인데 내 얘기가 아닌 것처럼 쓴 이야기도 있었어요. 주제는 '성소수자도 분명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라고 잡아놓고, 정작 사람들 앞에서 내 경험을 내 것이라고 밝히는 것도 어려웠어요. 당사자로서 내 얘기라고 했을 때 받을 공격과 혐오가 두려웠기 때문에, 내가 들었던 혹은 내 지인의 경험이라는 식으로 돌려서 이야기했어요.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결과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될 거였다면 그냥 지를 걸 그랬다 싶기도 해요.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더 얘기하자면, 저는 영상에서 제가 성소수자 당사자라고 밝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제가 당연히 당사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당사자이긴 하지만 공개된 영상에는 그렇게 밝히는 내용이 하나도 없거든요. 원고에는 쓰여 있었고, 당일 녹화하는 자리에 있던 청중들에게는 밝혔지만 채널에 올라온 영상 속에는 그 부분이 없어요.

그런데 영상에 대해 공격을 받고, 여러 대응들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제 정체성이 그냥 뭉뚱그려졌어요. 세바시의 영상 비공개 결정에 대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짓밟은 세바시'라는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유통이 되기도 하고요. 저는 오묘하게 아웃팅(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성소수자임이 공개적으로 밝혀지는 것 -편집자주) 아닌 아웃팅을 당한 거죠. 제 소개에 QUV활동가라고 쓰여 있으니까 사람들이 당연하게 당사자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퀴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당연히 그 사람이 퀴어란 법은 없잖아요."

세바시 입장 영상을 재공개하면서 세바시측에서 공개한 입장
▲ 세바시 입장 영상을 재공개하면서 세바시측에서 공개한 입장
ⓒ 세상을바꾸는시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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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도 분명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 입니다'라는 주제는 굉장히 간단하고 쉬운 명제라고 생각했는데, 이에 대한 혐오 반응이 너무 거세서 개인적으로 놀랐어요. 며칠 사이에 휘몰아쳤던 사건의 흐름 때문에라도 짧은 시간동안 생각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거죠. 사실 처음에는 '악플이 달려봤자 얼마나 달리겠어'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막상 영상이 올라가고 나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혐오발언들을 보게 되니까 힘들었어요. 흔한 동성애 혐오 발언들이 모두 있었어요. 그런 것에 직접적으로 맞닿으니까 멘탈이 탈탈 털리더라고요.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법적 대응이 가능한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일단 댓글을 캡쳐하고 있었어요.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그런데 그 와중에 세바시 측에서 영상을 비공개해버렸어요. 당황스러웠죠.

안 그래도 댓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영상이 내려가서 폭발해버렸어요. 주말에 춘천에 있는 퀴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가 영상이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더 속이 상해 있는데 또 그 행사에도 기독교인들이 찾아와있어서 속이 뒤집혔죠.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저에게 오더니 기도를 해주겠다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돌아오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화가 많이 났어요.

이 얘기는 친구들이 알면 다 웃을 텐데, 그 행사가 끝나고 춘천에서 집에 올라오는 버스에서 방송을 보는데 김치의 다양성에 대한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갑자기 너무 서러운 거예요. 김치도 저렇게 다양성을 광고하고 그러는데 '나는 김치에게 밀렸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말한 주제는 정말 별 거 없어요. 그냥 '나도 여기 있다, 나도 한 존재다, 존재를 지우는 건 폭력이다' 이런 말을 불과 십분 여 간에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집에 오는 그 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어요. 속상하기도 하고 허망하더라고요. 영상 올라가고 불과 3일 만이었어요. 그리고 이틀 뒤에 다시 영상이 공개된다고 통보 받았어요. 정말 폭풍 같았던 5일이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달라졌나' 회의감도 들었지만, '속단했구나'

- 폭풍처럼 몰아치던 5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수많은 연대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연대의 손길들을 보면서는 어떤 심경이셨나요?
"정말 고마웠어요. 고맙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영상에 달리는 혐오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반박하면서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영상이 내려갔을 때 자기가 당사자라고 글을 쓰면서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용기가 많이 났고, 힘을 많이 얻었어요.

자기가 당사자라고 밝히면 더 직접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해주신 거니까요. 영상에 달린 혐오댓글도 굳이 안 읽고 모른 척 하면 상처 안 받을 수 있는데 다 읽으면서 다 반박해주고, 그런 분들을 보면서 많이 고마웠어요. 그래서 더욱 이 일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구나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손아람 작가나 그 밖에 여러 유명 연사들이 자신의 영상도 내려달라며 연대를 해준 일도 있었고, 이 이야기를 보도하던 언론들도 기억에 남아요.

제 영상이 내려갔을 때, 제가 너무 허망해서 SNS에 '우리의 시대는 달라졌나요?'라는 글을 썼는데, 이어지는 연대를 보면서 '내가 너무 속단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조금은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어쨌든 세바시가 다시 영상을 공개하게끔 했잖아요. '달라진 것은 작지만 분명 있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 사건은 짧은 시간동안 일어났지만, 사건이 남긴 생각들은 결코 얕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하고 있는 고민이나 이번 사건이 남긴 과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세바시에게만 너무 책임이 과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 프로그램을 세바시 혼자서 기획한 게 아니니까요.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했던 양평원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알려지지 않았어요. 애초에 저의 원고를 뽑은 건 양평원이었거든요. 사실 세바시보다도 양평원은 국가기관이라는, 더 큰 책임이 있는 기구인데 이 부분은 조명되지 않은 지점이 아쉬워요.

저는 양평원이 이런 기획을 함께하고, 제 원고를 채택했다는 것을 보고 국가기관이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려 한다는 것에서 고무됐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문제가 터지고 아무런 입장이 없는 걸 보면 다시 의아해져요. 제작진에게만 비판이 향했어요. 국가기관이 더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BS도 입장문을 내기는 했어요('세바시'는 원래 CBS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지만, 현재 독립된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세바시의 대주주가 CBS다. -편집자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요. 근데 이 내용이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건강한 가정은 남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는 요지였어요. 이도저도 아닌 태도라 실망스러웠습니다. CBS는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상태로 사건이 일단락돼 버렸어요.

CBS의 입장도 너무 아쉬운 부분이에요. 건강한 가정을 이성애 중심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인데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에는 반대한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어요. 여론을 신경쓴 것 같긴 한데, 분명한 입장은 없는 거죠. 이 사건에서 정작 중요한 단체들은 이미 책임을 다 벗어버린 것 같아요. 남은 과제라면 그들을 변화하게 만드는 게 될 것 같아요."

재공개된 영상 초입의 안내화면 영상이 재공개될 때 안내화면이 생겼다. 해당 영상이 CBS와 '전혀 관련없음'을 밝히고 있다.
▲ 재공개된 영상 초입의 안내화면 영상이 재공개될 때 안내화면이 생겼다. 해당 영상이 CBS와 '전혀 관련없음'을 밝히고 있다.
ⓒ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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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논리로 누르면, 다양성과 연대로 이겨내야"

- 이번 사건이 대부분 SNS를 통해 퍼진데다 5일 동안 벌어졌던 일이라 다각도로 조명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 해주신 부분을 저도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아는 페미'의 공식질문을 드릴게요. 본인의 '페미니즘 모먼트'는 언제였나요?
"처음에는 위로받기 위해서 페미니즘을 만났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계속 겪었던 질문과 압박들 때문에 저는 계속 제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의심하게 되고, 부담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근데 페미니즘이 제일 먼저 저에게 '그건 구조의 문제'라고 말해줬어요. 그때부터 '이건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거고, 나는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난 뒤에는 더 복잡하게 페미니즘을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몇 년 전의 저에게 페미니즘은 퀴어와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이었거든요.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이 더 크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다보니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는 조금 조심스러운데, 지금까지 페미니즘이라는 한 단어 안에 너무 많은 개념이 뭉뚱그려져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그땐 회의감이 들기도 했죠. 지금까지도 트랜스젠더의 여성성에 대한 논쟁 같은 것들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논란이 많은 만큼 아직 제 입장도 정립하기는 어렵지만, 그 시기의 고민을 거치면서 좀 더 퀴어 페미니즘, 퀴어 이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게 되었어요. 페미니즘 관련해서 제 인생에는 두 번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던 거죠."

- 다음 '페미니즘 모먼트'는 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음 지방선거에 성소수자 지자체의원이 당선되는 것?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보다 정치적인 입지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한 명의 정치인이 탄생한다고 해서 엄청난 변화가 생기기도 어려울 것이고, 제가 강연을 준비하면서 고민했던 것과 같이 어느 한 당사자가 대표성을 가져버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찌됐든 당사자가 그 자리에 존재해야 그 공간에서 목소리를 더 낼 수 있을 테니까요. 퀴어 당사자들이 정치적인 활동에 더 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오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겠지만요. 조금씩이라도 바꾸려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나는 ~를 아는 페미니스트다', 스스로 정의해본다면?
"나는 '혐오의 타격'을 아는 페미다. 따라서 더 적극적으로 혐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페미다. 이전이라고 혐오에 대해 전혀 모르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방대한 양의 혐오를 받아본 적은 없었거든요. 이걸 당해보고서야 알다니 스스로도 허망하긴 하지만, 어쨌든 저는 그 속에서 단단한 연대의 끈을 봤고, 조금이지만 변화한 우리 사회의 모습도 봤기 때문에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는 페미가 된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시대는 앞으로 더 많이 달라져야 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수자성의 연대가 필요해요. 세바시에서 다양성을 가치로 두고 프로그램을 구성했기 때문에 플러스 사이즈 모델, 다큐멘터리, 장애 여성, 성폭력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서로 만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하니 비로소 보수기독교인의 혐오를 이겨낼 만큼의 힘이 가동되었던 것 같아요. 혐오는 힘이 매우 세요. 항상 힘의 논리로 사회의 다양한 가능성을 압박하죠.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알았어요. 힘의 논리로 우리를 찍어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다양성과 연대로 이겨내면 돼요.

이번 일을 통해서 연대가 힘의 논리를 이겨낼 수 있다,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희망을 봤어요. 한국 사회는 계속 변화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원래 모습을 유지하려는 저항을 이겨내야 하잖아요. 저는 그 희망을 연대에서 찾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 일이 남긴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면 좋겠어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단체들도 문제고요. 세바시는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이름은 걸었지만 책임은 지지 않았던 국가기관과 방송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이런 고민을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연대해주시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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