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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사랑하는 잉글랜드 남자와 책을 사랑하는 미국 여자가 결혼했다. 둘은 각자의 관심사를 합쳐 빅토리아 시대의 오래된 기차역에 서점을 차렸다.

책장 선반 위에는 시를 적어 두고, 예전 대합실 공간에는 석탄 난로를 놓았으며, 역장 사무실은 차를 마시는 곳으로 단장했다. 책장 위로 모형 기차가 지나다니게 하는 센스까지 더해서,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매력을 느낄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바로 '바터 북스'다.

강 위를 '떠다니는 서점'도 있다. 길이 18미터의 배를 서점으로 바꾼 '북 바지'다. 이 배는 책을 싣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홍차와 비스킷이 있고, 아침 식사도 할 수 있다. 서점 여기저기에 앤티크 타자기가 멋지게 장식되어 있고, 책장 어딘가에 직접 만든 책 쿠폰이 숨어 있다.

'북 바지'는 강 위에 떠 있는 서점이니, 그 특징을 이용해 반년 동안 영국 운하를 도는 여행을 하기도 했다. '북 바지'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독서 토론회 등의 이벤트가 펼쳐지고, 사람들은 이 서점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도 이색적인 서점으로 유명하다. 서점의 주인 조지 휘트먼은 작가들이 서점에서 지낼 수 있도록, 책장 사이에 침대 13개를 숨겨 놓았다. 그가 대가로 작가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야기를 써서 남기고 갈 것'뿐이었다.

작가들의 이야기가 풍부한 이 서점에서는, 책을 살펴보다가 책 속에서 쪽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괴짜 동지! 책 고르는 취향이 훌륭하군요!"라는 식의 쪽지를. 이 서점을 애용하는 손님이 언젠가 책장에서 책을 꺼낼 누군가에게 쪽지를 써서 남긴 것이다.

서점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었을 때 누군가 남긴 이런 쪽지가 나온다면, 예기치 않은 선물 덕에 입가에 미소가 생기지 않을 수 없겠다! 이들은 최근 출간된 <북숍 스토리>(젠 캠벨 지음)에 나오는 서점 이야기들이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표지
▲ 북숍 스토리 표지
ⓒ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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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숍 스토리>는 일반적인 서점 여행기와는 다르다. 작가는 실제 서점을 운영하고 이용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전해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동네 서점 운영자와 이용자들의 역사와 추억이 담긴 짧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서점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사연 정도는 넘쳐난다. 작가들이 어린 시절 서점에서 꿈을 키워나가던 이야기는 물론이고 서점에서 자신의 '첫사랑 책'을 발견하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도 저마다 책과 서점에 대한 흥미로운 추억담을 펼쳐 놓는다.

잉글랜드의 '스카신 북스'(중고서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 서점에서 누군가 사간 책이 다시 서점 책장에 꽂혀 있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야기는 이렇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41년에 발간된 <야생 새의 노래>(Songs of Wild Birds)라는 책이 있었다. 책 안쪽에는 "이 책을 펼치면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라는 낙서가 있었다. 낙서를 쓴 연도는 1944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2010년 어느 날, 어떤 손님이 그 책을 구입해 갔다. 그런데 며칠 뒤 서점 매니저 데이비드 부커는 책장을 살펴보다가 제자리에 다시 꽂혀 있는 <야생 새의 노래>를 발견했다. 데이비드는 그 책이 팔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책은 서점에 한 권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여겨 책을 꺼내 펼쳐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새 소리가 서점에 울려 퍼졌다.

알고 보니 그 책을 산 손님이 책을 집으로 가져가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새소리가 들리도록 특별한 장치를 설치한 뒤 다시 서점 책꽂이에 꽂아 둔 것이었다. "이 책을 펼치면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한다"는 1944년의 낙서 아래에 새로운 낙서가 덧붙었다. "이제 정말 노래한다""(69~70쪽)

이렇게 동네 서점은 뜻밖의 선물이 있는 곳이다. <북숍 스토리>에는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이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풍성해서, 읽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저자가 서점 판매원이 되는 날, 책 뽑기 기계 등 다양한 모색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한 동네 서점을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거대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세계의 많은 동네 서점들은 힘든 상황에 처했다. 이 책에서도 동네 서점 주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며 얼마나 분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북숍'에서는 작가들이 일일 판매원이 되는 '솔직히 책 팔러 왔어요' 행사를 한다. 작가들이 자신이 서점 주인이 된다면 팔고 싶은 책을 준비해 손님에게 권한다. 작가들은 "제가 만약 책 파는 일을 한다면 손님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아주 많아요"라고 말하며 기대감에 차서 이벤트에 참여한다.

이런 이벤트를 한다면 작가가 권하는 책들을 직접 소개받기 위해 서점을 찾고 싶어질 것 같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책을 정말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일 서점 주인'을 맡겨 자신이 권하고 싶은 책들을 판매한다면 그것도 참 재미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특이한 생각을 한 서점도 있다. 캐나다의 '몽키스 포'라는 중고 서점은 '경이롭지 않은 책은 없다'는 모토를 내세워 '책 뽑기 기계'를 들여놓았다. 기계에 2달러를 넣으면, 아무 책이나 나온다!

이 엉뚱해 보이는 일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홍보 효과도 컸고, 책도 전보다 많이 팔렸다. 1년 내내 일주일에 1권씩 책을 뽑은 손님도 있었다. 심지어 이 손님은 기계가 뽑아준 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고, 블로그에 꼬박꼬박 평을 남겼다. 서점 주인은 이런 일을 벌인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객이 책을 발견하고 책에 경이를 느끼는 경험을 제공하려고 애써요. (…) 책 자판기에 2달러를 넣고 예상하지 못한 책을 받는 것도 원칙은 똑같아요. 합판 만드는 기술을 다루는 책이나 19세기 뉴질랜드 시골 자치단체장의 회고록 같이 책꽂이에서 절대로 꺼내지 않을 책을 손에 들고 열린 마음으로 그 책을 읽는 거예요. 그러면 깊게 생각할 만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죠."(220쪽)

이 서점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도서 분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철학 분야, 사회학 분야, 예술 분야 등으로 책장을 나눠서 두지 않는다. 서로 상반된 내용을 담은 책을 나란히 두거나 주제를 마구 뒤섞어 놓아, 책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판단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작가의 서명이 들어간 책만을 파는 서점 '앨라배마 북스미스'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시도를 벌이는 이색적인 서점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래서 작가는 서문에서 동네 서점이 놓인 상황과 대응에 대해 이렇게 총평한다.

"서점들은 어느 때보다 힘들게 싸우고 있으며,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으로 변하고 있다."(13쪽)

잊고 지낸 동네 서점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책!

동네 서점은 오랫동안 한 지역의 문화 중심지이자 사람들의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힘들 때에는 책에서 힘을 되찾으러 서점에 갔고, 평소에는 책에서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는 기쁨을 찾으러 서점에 갔다. 이 책은 한동안 잊고 지낸 동네 서점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과 같은 헌정 문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점은 타임머신, 우주선, 이야기 제조기, 비밀 보관소, 용 조련사, 꿈 사냥꾼, 진실 탐색기, 그리고 가장 안전한 장소다."(7쪽)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동네 서점들이 다시 생겨나고 있고, 기존 서점들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 지역의 특색을 살려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지역 서점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이 책은 그야말로 '동네 서점 살리기 추천도서'다. 나는 오늘 동네 서점에 가려고 한다. 책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 속에다 미래의 누군가에게 직접 추천사 쪽지를 써서 남겨야겠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책에 있던 "괴짜 동지! 책 고르는 취향이 훌륭하군요!" 하는 식으로,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이의 동지애를 담은 쪽지를.


북숍 스토리 - 취향의 시대, 당신이 찾는 마법 같은 공간에 관한 이야기

젠 캠벨 지음, 조동섭 옮김, 아날로그(글담)(2017)


태그:#북숍 스토리, #젠 캠벨, #동네 서점, #독립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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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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